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을 구분하게 된다. 그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 또한 많이 만나게 된다.
하지만 사소한 것이 정말 사소한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확답을 내기가 쉽지 않다. 사소하다고 하여 가볍게 여기고 간과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무실을 청소해 주시는 여사님들이 계시다. 화장실부터 회의실 구석구석까지 그 분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1층의 보안데스크 근무원 분들이나 백오피스에서 근무하시는 전산/설비 담당 직원분들도 마찬가지다. 그 분들께 전하는 인사는 사소하고 사장님이나 임원들께 전하는 인사는 중요한가.
까칠하기로 소문이 나 있는 시설 담당직원이 있었다. 회사에 1명 밖에 없는 자리라 대체 불가인력. 많은 사람들이 그 직원분에 대한 불만사항을 사무실에서 쏟아내었다.
"아니, 그냥 해주면 될것 같은데... 맨날 안된다는 거예요."
"제가 분명히 요청했거든요. 근데 늦게 해주셔가지고 교육 운영하는데 애를 먹었지 뭐예요."
나는 자리에서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그 분의 성향을 익히 알고 있기에 웃을 수 있었다.
"미리미리 요청해야지. 그 분 혼자 일하시는데 수십개 강의장을 어떻게 매번 챙겨줄 수 있겠어. 어떤 행사인지 미리 설명은 드렸고? 다음에는 미리 올라가서 필요사항 한번 점검해 보고 교육 들어가면 좋을 것 같은데."
그 분은 협력회사 파견직 분이었다.
회사 인트라넷에서 찾아보려해도 그저 '시설담당' 으로만 검색되는 어쩌면 사소한 우리회사의 일부분. 하지만 강의장에서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우리 회사의 입장에서는 사실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이었다. 당장 프로젝터가 나오지 않는다거나 대회의실에 스크린이 먹통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겠거니, 항상 별탈없이 잘 되어야만 하는 일이겠거니 라고 생각하며 그 분의 일을, 그리고 그 분을 사소하게 여기기 일쑤였다.
사실 그 분은 매우 합리적인 분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우리 회사의 경영상황에도 밝았다.
나는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대회의실 뒤편에 있는 방송실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덕분에 그 분과 꽤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업무의 특성상 그 분은 대회의실에서 진행되는 모든 중요한 행사에 대한 내용을 다 꿰고 있었다. 임원들의 사소한 몸짓과 습관, 실무자들의 업무 스타일까지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그 분 하나 뿐이라는 생각조차 들 정도로.
그리고 그 분의 엄격한 업무 철학 중에 하나는 "받은 만큼 돌려주기" 였다. 본인이 대우 받은 만큼만 해준다는 직장 내 '합리성'을 주장하고 있었다.
"본인이 개발한 교육과정인데, 본인이 제일 정성들여 챙기고 신경쓰는게 맞지 않아요? 퇴근하는데 헐레벌떡 와서, 아니면 전화 한 통으로 내일 오전에 오픈하니까 이거이거 챙겨주세요~ 하면 나도 딱 그만큼만 해주는 거지. 내가 마음 급한가, 몇 달동안 개발한 그 사람이 급하지. 리허설 하는거, 운영자가 와서 사전점검하는 것만 봐도 이 행사는 되겠구나~ 안 되겠구나~ 감이 딱 온다니까요!"
"이런 이야기를 운영자들한테 좀 해주시지 그래요. 그럼 다들 앞으로 더 잘 챙길텐데..."
"이야기 해서 뭐해요. 협력회사 직원이 오지랖 넓다는 소리나 듣지. 다~ 자기 알아서 사는 세상인데요."
그 분은 나즈막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새로 오신 임원분 어때요? 별로죠? 내 생각에는 오래 못 갈거 같아서."
"왜요? 오신지 얼마 안되서 잘 모르겠는데요."
음... 직원들한테는 모르겠는데
협력회사 사람들 인사는 안받으시고
못 본 척 매번 그냥 지나가더라고.
다들 싫어해요.
그래서 나도 인사 안하지 머.
그 분의 예언(?)대로 정말 해당 임원은 임기를 연장하지 못했고, 그 해 집으로 돌아가셨다. 1년 남짓, '상무' 소리 들으면서 대접받았으나 집으로 돌아가는 임원을 두고 아쉬워하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임원 발표가 나기 훨씬 전부터 임원 재계약은 물건너 간 것이 아니냐며, 성과도 좋지 않고 자질도 별로라며 수군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사소한 것에 집중하고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중요한 것보다 사소한 것이 훨씬 더 가치있다는 이야기는 더더욱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소한 것에도 조금의 정성을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은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살다보면 사소한 것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닌 순간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혹시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면 기다려 보라. 충분히 많은 경험을 앞으로 하게 될 것이니까.
당장 하루만에 졸업식을 준비해야 하는 때가 있었다. 갑작스런 의사결정이라 당황스러운 것은 둘째치고 참석인원이 고작 20명 남짓인데 남아있는 강의장이라곤 대회의실 하나 밖에 없었다. 200명은 족히 들어갈 공간에서 20명을 데리고 졸업식을 해야하다니... 앞이 막막했다.
졸업식 당일, 헐레벌떡 뛰어올라간 대회의실에는 가지런히 실크를 씌운 테이블과 고급스러운 임원의자, 인원에 어울리는 작은 사회자 연단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회의실 뒷편 조명도 이미 조정이 된 뒤였고, 잔잔한 음악이 회의실을 감싸고 있었다.
"과장님이 필요하실 것 같아서요. 어제 엄청 걱정하셨잖아요. 졸업식이 너무 휑~하면 안되니까 지하에 가서 자재를 좀 뒤져봤지요. 안쓰던 연단같은게 있길래 가져와봤어요. 실크는 여사님들이 다려주셨고요."
우리 회사 지하실에 있는지도 몰랐기에 설비요청목록에 넣지도 못했을 것들이 시간에 맞춰 대회의실에 모두 올라와 셋팅되어 있었다. 새 출발을 하는 신입사원들의 교육과정 졸업식은 그렇게 무사히 치뤄질 수 있었다.
사소한 것은 가끔 전혀 사소하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다.
사소하다 생각할 사람 또한 어디에도 없다. 그 존재가 내게 전혀 사소하지 않은, 진심으로 중요한 사람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꼭 있기 마련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게 아쉽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정성을 다해야 하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