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울보가 되어버린 나.

by 수련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으로 연신 닦아냈지만,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더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보여주기 위한 눈물도 아니었고, 소리 내어 엉엉 울어버리는 속 시원한 눈물도 아니었다. 그저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 눈물이...

남편은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안방에서 잠투정하느라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와 아이를 달라고 손을 내밀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는 거다. 황당할 만도 하겠지. 남편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자그마한 소리로 왜 그러냐고, 무엇 때문에 우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뚝뚝 눈물만 흘리고 앉아있었다. 둘이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칭얼대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서.


오빠. 나 오늘부터 좀 늦게 잘게.
어차피 새벽에 시윤이 밥 먹으니까
한두 시간만 더 있다가
우유 먹이고 잘게.


갓난쟁이랑 보내는 하루는 정신이 없다. 내가 지금 아침을 살고 있는지, 밤을 살고 있는지도 가끔 헷갈린다. 당연히 요일 개념은 내다 버린 지 오래. 출근하면서 오늘이 불금이라는 남편의 말도 어디론가 들어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회사 다닐 때는 그렇게도 가지 않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우유 타서 먹이고 트림시키면 금세 한 시간이 후딱이다. 직수를 하겠다고 아이를 들고 앉으면 한 시간으로는 턱도 없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다시 배고프다고 울어댄다. 그렇게 몇 번을 하다 보면 점심도 챙겨 먹지 못했는데 남편의 퇴근시간이다. 반짝이는 10월의 가을날 하루가 또 그렇게 저물어 간다.

낮에는 하루 종일 아이의 패턴에 맞추느라, 밤에는 다음날 출근을 위한 남편의 패턴에 맞추느라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하루하루 우유 먹이는 것 챙기느라 허덕대다가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있었다. 부쩍 커버린 녀석에게 고맙기도 했지만, 9월 중순 이후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없는데 어느새 창밖에는 단풍이 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까지 머리로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오로지 머리로만 살아왔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 가슴이 시키는 것보다 머리가 시키는 것을 따르려고 노력해 왔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더욱더 그랬다. 머리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런 나의 믿음으로 살아온 시간들이 꽤 오랫동안 내게 편안함을 선물해 주었다.
이해되는 범위 내에서 이해되는 행동을 하면서 사는 생활. 나는 그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출산하기 전, 남편은 내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여보. 아이가 태어나면 당분간은 아이가 먹는 거랑 여보가 먹는 것, 두 가지만 신경 써요.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집안일은 당분간 신경 쓰지 말고 여보 몸을 챙겨요."
조리원에 있는 동안부터 남편은 최선을 다해 나를 배려해 주었다. 원래 몸이 재빠른 사람이긴 했으나 평소의 2~3배를 움직이며 청소며 빨래며 집안 정리를 도맡아 해주었다. 새벽 수유를 도와주는 것도 물론이었다.

그런데 그런 남편 앞에서 내가 지금,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복잡한 감정 때문에 가슴이 울고 있었다.

머리는 너무나 고마워하고 있었고, 동시에 가슴은 서운해하고 있었다.
육아에 지친 나를 위한 배려에 고마웠고, 하루 종일 누군가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누어주지 않음에 서운했다. 분명 머리로는 백번이고 천 번이고, 내일 출근인 남편이 얼른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안방으로 들어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가슴은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말았다.

결혼하기 전, 엄마랑 남동생이 나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독종이라고 흉을 보았다. 우리 집안에 저런 독종은 없다고 눈을 흘기며 핀잔을 주었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인지 눈물이 부쩍 늘었다. 그런 내 모습에 엄마는 오히려 속상해했다. 괜히 결혼을 하면서 딸내미가 약해진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맙소사! 아이를 낳고 나서 나는 그만, 울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누구에게 기대다 못해, 약해지다 못해, 물러 터진 감홍시처럼 울보가 되고 말았다.
더 잘해주지 못하는 초보 엄마라서, 더 잘 해내지 못하는 초보 와이프라서.
머리가 아닌 가슴이 시키는 대로, 눈물이 나면 나는 대로... 나는 그렇게 울보가 되어가고 있었다.


손대면 톡! 하고 터져버리는
봉선화도 아니고... 이러기 있어?!
여보, 우리 내일부터는 저녁마다 티타임 하자!


강한 엄마가 되어달라는 남편의 부탁에 응하기엔 아직 한참 모자라겠지만, 이렇게 또 한 고비를 넘기고 있다. 이렇게 오늘도 나의 바스락 거리는 멘탈이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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