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띠띠띠.
남편이 퇴근했다.
현관문 번호키 소리에 수면양말 바람으로 종종종 거실을 가로질러 남편을 마중한다. 매일 아침, 그리고 저녁에 반복되는 우리 부부의 이별과 만남.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고, 또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간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어쩌면 그때 우리는 가장 남편스럽고 또 가장 아내스러운지도 모르겠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하루 동안 평안하기를, 몸 조심히 지내다 우리의 이 아늑한 공간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한다.
주말부부여서 몰랐는지.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일에 치여서 몰랐는지.
아이가 없는 신혼이라 몰랐는지.
무엇 때문인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아주 작고 소소한 행복들이 얼마 전부터 내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꽤 많은 것들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한 때에 나는 이전에는 모르고 지나쳤을 것들을 새로이 얻고 있었다.
현관문으로 들어서는 남편의 손에 꽃 한 다발이 들려있었다.
오늘이 무슨 기념일이었던가.
오늘 밖에서 좋은 일이 있었나.
순간 머릿속에는 몇 가지 생각들이 스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늘은 별일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그저 고기가 먹고 싶다는 남편 말을 듣고 퇴근길에 삼겹살을 사 오라 주문한 정도밖에.
꽃다발이 후줄근해서 미안하다는 남편의 말은 뒷전.
나도 여자인지라 선명한 색깔의 국화 한 다발에 금세 마음을 주고 말았다.
"오늘 무슨 날이야? 이 꽃은 뭐야? 응응?"
연신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남편 뒤를 졸졸졸 따라 들어오는데 남편이 무심히 툭.
"오늘 회사에서 행사를 했는데 네덜란드에서 가져온 거라면서 화병을 하나 주더라고. 그래서 거기 꽂으려고 꽃을 한 다발 사 왔어. 바로 화병에 꽂을 거라고 해서 포장이 좀 허술하지?"
작은 구멍구멍마다 튤립을 꽂아두는 화병이라는데 튤립이 나는 철이 아니라 국화를 사 왔다는 남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좌우 다섯 개씩의 구멍에 중간에 있는 하나의 구멍까지 생각해서 꼬박 열 줄기의 국화와 한 송이의 하얀 카네이션을 사 온 센스.
역시 내가 결혼을 잘했다며 엄지를 척! 치켜세워줬더니 내 남편의 어깨도 척! 하고 올라선다.
별것 없는 일상이지만,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그저 즐겁다.
낑낑 거리며 목을 못 가누는 우리 아이를 함께 목욕시키고, 새벽에 일어나 칭얼대는 녀석을 달래는 시간도 즐겁다.
오늘처럼 예상치 못한 선물에 감동하고, 아파트 상가에서 사 온 삼겹살 두 뭉텅이의 예상치 못한 꿀맛에 연신 감탄사를 연발한다.
우리는 그냥 이렇게 산다. 그래서 요즘 소소하게 행복하고, 따끈하게 즐겁다.
회사를 다닐 때, 누구보다 잘나고 싶었고 멋있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서 내 시간을 내어 놓아야 한다고 믿었고, 그런 믿음 때문에 주말부부가 힘들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하는 저녁시간보다 나를 위해 쓰는 시간에 더 고팠고, 매일 저녁 사람들을 만나야 할 시간들에 치여 주중엔 언제나 바빴던 나였다.
퇴사를 하고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쩌면 나는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긴 이르다. 아마 평생이 지나도 그 답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는 이제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직도 문득문득 내가 퇴사한 것이 아니라 육아휴직 중이었다면 더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면 훨씬 더 마음이 편했을까. 통장이 되었든, 내 마음이 되었든... 그랬다면 훨씬 더 넉넉했을까. 아니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더 든든했을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일 년간의 숨 고르기가 없었더라면 스쳐 지나가는 이 소소한 행복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설사 내가 지금 느끼는 행복이 착각이라 해도 어떻겠는가.
행복이라는 것은 온전히 개인이 느끼는 것.
일상의 소소한 것들로 인해 조금이나마 내 일상에 살이 오르고, 좀 더 따끈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으로 그저 만족이다.
예쁘게 팩을 바르고 잠이 든 남편과 오늘따라 일찌감치 꿈나라로 떠나 준 50일 배기 아이.
덕분에 오랜만에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저녁도, 내겐 소소한 행복이다.
그래서 오늘도 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