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에세이.

by 수련화

나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좋다.

소설이 만들어진 이야기라면, 에세이는 작가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에 대한 설명이다. 몇 가지 꾸밈말로 덧댈 수는 있겠으나 새로이 창조해 낼 수는 없는 작가만의 이야기라 좋다. 당장 나도 경험할 수 있는 현실감 있는 이야기라 더 좋다.

소설은 긴박하고 흥미진진하다. 반대로 에세이는 밋밋하고 멋이 없어 보일 수 있다.
에세이에는 소설에서 누차 강조하는 기. 승. 전. 결이 없다. 무미건조한 시작만 있다가 끝날 수도 있고, 갑자기 결론이 나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우리 삶이 아닌가 싶다. 어찌 모든 일에 처음과 끝이 있을까. 시작한지도 몰랐는데 끝나버릴 때도 있고, 끝난 줄 알았는데 언젠가 다시 시작되는 일도 있지 않은가. 특히 우리의 사람 관계는,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마음속은 더더욱 그렇지 않은가.

나는 그래서 에세이가 좋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생각만 남기지 않고, 자꾸 내 이야기를 넣게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내 생각의 시작과 끝이 내 경험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퇴사를 하면서 나는 내 경험이 소설이기를 바랐었나 보다.
문득 거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둡고 슬픈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 소설이 싫다 했던 나인데, 정작 나는 내 이야기가 소설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간 나는 내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다닌 회사는 그 어느 회사보다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고, 내가 겪은 일들은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기가 막힌 것이었다. 내가 모신 상사는 앞으로 보나 뒤 로보나 이상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고개를 내저을 만큼 특이한 동료들도 여럿이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조금이나마 나의 퇴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정당화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퇴사라는 것이, 직업을 가지지 않고 일 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뭐 그리 특별한 일일까 싶기도 하다. 하루에도 수 백, 수 천 명이 퇴사를 하고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새로운 직업을 구한다. 그중 누군가는 눈물을, 또 누군가는 미소를 지을 것이다. 우리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그렇다.

사람 관계라는 것도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한 상황이었는데, 막상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내 상사가 그러했을까. 내 동료도 그러했을까. 퇴사를 하고 나서 철이 든 건지 괜한 이해심이 넘쳐흐른다. 그 들에겐 분명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으리라. 망측한 소설 속의 캐릭터라고 믿었던 사람들도 나름 그 들만의 에세이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고 믿어본다.

내 지나간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지는 않으련다.
살을 붙이고 색지를 덧대어 흥미진진하고 혀를 차게 하는 이야기로 꾸미지는 않으련다. 그저 사람 냄새나는 에세이로 기억되도록 하고 싶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블로그를 시작할 즈음, 나는 날이 서 있었다.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들이 내 지난날을 기억하게 했고, 드러내고 싶은 동시에 감추고 싶은 이야기들이 머리 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날이 무뎌지고, 기억들도 뭉툭해졌다. 아니 철이 든 건가 싶기도 하다. 그 사이 나이가 들고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날이 선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를 써 내려갈 준비가 되었나 보다.
나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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