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버스 운전기사

by 수련화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이게 뭐라고 띠딕! 하는 버스카드 소리도 경쾌했다.
아이를 가지고 나서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입덧이 심했고, 그 뒤로는 멀리 이동하는 것을 삼갔다. 꼭 필요할 때엔 남편과 자동차로 이동했으니 버스를 타는 것은 진짜 오랜만이었다. 마치 여행을 가는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오랜만에 탄 버스는 뭔가 어색했다. 버스를 탈 때마다 느꼈던 묵직한 느낌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못 본 사이 버스가 가벼워졌을 리는 없을 텐데... 조용히 뭐가 달라졌는지를 찾았다. 내 눈동자는 버스 안 구석구석을 훑고 있었다.

버스기사 아저씨였다. 아니 나이 어린 청년이었다.
버스기사 아저씨라고 부르기엔 미안한 젊은 청년이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해맑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아직 얼굴에 앳된 기운이 가득한 20대의 청년이었다. 유니폼인 듯 교복인 듯 사복인 듯... 단정하게 차려입고 하얀 장갑을 낀 모습을 뒤에서 내내 지켜보았다. 생소한 버스기사 아저씨였다. 아니 청년이었다.

버스기사 아저씨, 택시기사 아저씨... 아저씨로 대표되는 몇몇 직업들이 있다. 어디 그뿐이랴. 으레 그래야만 한다는 상황도 있고, 말하지 않아도 그려지는 풍경들도 있다. 우리의 선입견이다. 아니 나의 선입견이었다.

만약 50대의 아저씨가 운전석에 앉아있었더라면 내가 이상하다 느꼈을까.
만약 오랜만의 외출이 아닌 반복되는 일상이었다면 내가 이상하다 느꼈을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10분 남짓의 시간 동안 나는 내 선입견과 편견에 대해 반성했다.
"어머~ 여자분이 택시운전하시는 건 처음 봐요."
그러고 보니 연초엔 택시기사 아저씨에 대한 선입견을 들춰내기도 했었구나.

50대의 아저씨가 버스를 몰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왠지 그 청년에겐 사연을 묻고 싶었다. 왜 버스기사가 되었냐고. 운전은 남녀노소가 다 하는데, 왜 버스운전은 아저씨만 해야 하는가. 물으면 안 될 질문이었기에 그저 마음에 품었다. 그리고는 얼른 버스에서 내렸다.




얼마 전,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 거린 적이 있다.
작가는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글감을 모았다고 했다. 버스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책에 담겨 있었다. 할머니와 손자와의 대화는 물론 각막 이식 수술을 받은 날, 세상의 아름다운 빛깔을 처음 보는 아저씨의 탄성까지.

거짓인 것만 같았다.
내가 10년 동안 타고 다닌 출퇴근길의 지하철에선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없었는데. 하필 작가의 눈에만 보였다는 그 신기한 에피소드들이 마치 거짓인 것만 같았다. 현실이 아닌 작가의 책 속에서만 살아 움직이는 좋은 글감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20대의 버스기사를 만나고 온 날.
얄팍한 선입견으로 인해 내가 눈치채지 못하고 흘려보냈을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훨씬 더 깊을 수 있다. 단지 내가 모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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