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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Feb 02. 2018

남겨놓지 않으면 잊히니까.

조리원 커뮤니티

 오늘이 또 그날이다.

 밤은 깊어 시계는 자정을 넘겼는데, 잠은 오지 않고 눈은 오히려 더 말똥 해진다.
 내가 사랑하는 두 남자는 이미 깊은 꿈나라 속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큰 남자는 이미 코를 드르렁 거리며 골아대고, 작은 남자는 한쪽 발을 내게 기댄 채 입을 벌리고 잠들었다. 찰지게 빨던 손가락이 입속에서 빠져나오고 양손을 어깨 높이로 나란히 올렸다는 것은 깊은 잠에 들었다는 표시. 결국 두 남자 모두 오늘 밤 안에 다시 만날 수는 없단 소리다. 내일 아침을 기약하며 짧은 안녕.

 이제 내가 잠들 시간. 하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낮에 아이가 잘 때 같이 잠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깨어서 뭔가를 했어야 했다. 그래야 이 시간에 나도 편히 잠들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다짐은 번번이 실패다. 잠깐 아이만 재우고 일어나야지 하는 다짐은 매번 낮잠을 다 자고 일어나는 아이와 함께 눈을 뜨는 나를 발견하는 것으로 끝난다. 언제 잠들었던 거지. 난 분명히 토닥토닥만 했을 뿐이데.

 조용히 카톡을 열어 '조리원 커뮤니티'라고 쓰인 창을 열어본다.
 카톡 방에서는 이유식 논쟁이 한창이다. 이유식 준비를 위해 칼을 새로 사고, 도마를 새로 사야 한단다. 깔끔 지게 예쁜 도마의 쇼핑정보가 올라오고 이유식 책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우리 집은 한밤중인데 아직 그녀들은 한창이다.
 나의 조리원 동기들. 아니 우리 작은 남자의 산후조리원 동기 엄마들.

 우리 아들이 태어난 지도 백일 하고도 한 달여가 더 지났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였다. 지나는 말로 초보 엄마가 아니라 진심으로 아무 준비가 안 되어있는 초보였다.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기에 준비가 되어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몰랐기에 당당했던 그때. 나는 그저 행복한 마음으로 출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일찌감치 결혼해서 이미 훌쩍 커버린 아이를 데리고 있거나 미혼이거나.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친구들은 무슨 말만 하면 내게 그때가 좋을 때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누워있을 때가 좋은 거야. 그래도 걷지 않을 때가 좋은 거야."
 육아정보는 다 잊어버렸거나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자꾸 잘못된 것들만 알려줬다. 앉다가 기는지, 기다가 앉는지는 여전히 헷갈려했다. 결국 모두 다 서서 걷게 될 테니 별 상관이 없다고 했다. 내게는 언제 뒤집고 어떤 자세로 뒤집는지도 중요한 하루하루였는데, 내 친구들에게는 그저 귀여운 투정으로만 들렸다. 녀석들에게는 어떤 유치원이 좋고, 아이에게 무엇을 더 가르쳐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영어를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는지가 더 화두였다. 나는 당장 모유를 더 먹여야 할지, 분유를 얼마나 먹여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우리들의 고민은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미혼인 친구들은 이보다 더 했다. 아이의 사진을 보고 귀엽다는 소리를 연신 해댔지만, 그뿐이었다. 속싸개가 무엇인지 몰랐고, 내가 하루 종일 끼고 사는 국민 모빌의 정체는 상상조차 못 하였다. 역시 우리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강이 흐르고 있었다.

 조리원 커뮤니티는 달랐다.
 척하면 착하고 알아듣는 속 시원함이 있었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을, 같은 하늘 아래 그녀들도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의 모습이 그 집 아들에게서도 보였다. 좋은 것은 같이 공유하고, 나쁜 것도 서로 공유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우선 조리원 커뮤니티에 물었다. 다른 아이들도 그렇다고 하면 괜히 안심이 되었다. 조바심 내지 말고, 날이 밝으면 소아과에 가서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우리 아이만 이상한 게 아니었으니까.

우리 아들이 어제부터 이래.
다른 아가들도 그래?


 초보 엄마에게는 모든 것이 다 서툴고 걱정거리이다. 혹여나 내 잘못으로 아이가 잘못될까 전전긍긍이다. 하지만 하루 종일 소아과 문 앞에 붙어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을 쪼개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답답한 마음을 어디 풀만한 데가 없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낮에 이런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소연을 하면 열에 아홉은 괜찮을 거란 소리가 돌아온다.
 "원래 애들은 다 그렇게 크는 거야. 남자 녀석이니까 강하게 커야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녀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내게 큰 힘이 된다. 그녀들 덕분에 초보 엄마 딱지를 슬슬 떼고 있는 것 같아 든든하기까지 하다.

 우리들의 카톡은 쉼 없이 이어졌다.
 다들 아이를 재우고 잠시 짬을 내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부터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수다는 육아에 지친 어깨에 날개를 달아준다. 짧게나마 내게 힐링을 선사하는 보석과도 같은 시간이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우리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아가들이 자라는 이야기.
 네 명의 초보 엄마가 하루하루 베테랑 프로 엄마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
 우리들의 고민과 두려움, 그리고 내일에 대한 걱정까지도.

 아이를 낳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확연히 다르듯, 시간이 지나고 저 작은 아이가 아장아장 걷고 종알종알 말을 하기 시작할 때쯤이면 나는 또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녀들 또한 그럴 것이고, 그녀들의 아가들도 그렇게 되겠지.
 되돌아보면 지금의 이 시간들이 얼마나 재미난 추억으로 남을까.
 나는 이 시간을 기록하기로 했다.

내가 한번 우리 이야기를 써볼게.
남겨놓지 않으면 잊히니까.


 우리들 이야기의 처음은 어디서부터 시작일까.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입소하기 전까지 서로에 대해 전혀 몰랐던 우리 네 사람의 이야기는 어쩌면 예정일을 앞두고 볼록하게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출산 가방을 싸고 있었던 그때로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르겠다. 그 가방을 싸면서 내가 언제 아이를 낳을지, 언제 조리원에 들어올지, 그곳에서 어떤 인연을 만나게 될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네 명의 아가들과 네 명의 엄마들.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남겨놓지 않으면 잊힐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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