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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Mar 01. 2018

엄마에게 또 하나의 이름이 생겼습니다.

조리원 커뮤니티

 내 이름은 기가 막히게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 엄마와 아빠는 꼬물거리는 어린 나를 내려다보며 정성껏 이름을 지어주셨다.

여자아이니까
예쁘고 착하게 자랐으면 좋겠어.


 하지만 우리 엄마 아빠는 알고 계셨을까. 모든 딸아이의 부모들이 비슷한 바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예쁘고 착한 딸을 가지고 싶어하는 수많은 부모들의 바람이 모이고 모여 내 이름은 흔하디 흔한 이름이 되고 말았다.

 회사를 다닐 적, 인트라넷에 임직원 검색 기능이 있었다. 이름을 입력하면 각 계열사에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연락처를 확인할 수도 업무상 바로 메신저를 할 수도 있게 만든 것이었는데, 나랑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회사에 수백명이나 있었다. 동명이인이 무려 17페이지나 되었다. 하필이면 성씨도 흔하디 흔한 '김 씨' 일 필요까지야.

 학창시절, 내 이름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똑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다는 소리가 뒤이어 온다.
 "넌 김씨구나, 내가 원래 알던 친구는 박씨인데..."
 한 번은 교내 백일장을 치뤘는데 수상자 3명의 이름이 모두 같았던 적도 있다. 최우수상은 3학년, 우수상은 2학년, 장려상은 1학년. 이름은 다 같은 "김 ㅇ ㅇ" . 우리나라에 예쁘고 착한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사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이지만, 내 이름을 엄마 아빠가 짓게 된 이유는 조금 슬픈 뒷이야기가 있었다. 장남의 첫째 아이가 여자 아이라는 소식에 할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지도, 아이를 보러오지도 않으셨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엄마 아빠가 베갯머리에서 지은 이름이 내 이름이 되었다.
 3년 뒤에 태어난 내 남동생의 이름은 할아버지께서 한 달 동안 고심하셔서 지어주셨다는 후문.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름에 얽힌 경험을 풀어내고 나니 내 아이의 이름 하나는 정말 기가막히게 지어줘야지 하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다들 출생신고는 하셨어요?"
 "아뇨. 아직 이름을 못 정해서요."
 "저도 시어른들이 원하시는 이름이랑 저희가 원하는 이름이 달라서 고민이예요."
 "저는 한글이름으로 지으려고요."

 조리원에서도 아기이름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이름을 지어야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데, 이름이 아직 없으니 엄마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출생신고를 빨리하려고 이름을 아무렇게나 지을 수도 없고, 한 번 지으면 바꾸기도 쉽지 않으니 엄마 아빠들의 결정장애가 폭발하는 순간이다.
 게다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의견과 엄마 아빠의 의견이 엇갈리는 집이라면 고민은 두 배 세 배가 된다. 아기가 말을 할 수만 있다면 직접 물어보면 제일 좋겠지만, 엄마는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기들은 이런 부모들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꼬옥 감고 하루종일 잠만 잔다. 저 평온해 보이는 얼굴.

네 이름이 정해지는 중이란다.
너는 어떤 이름이 마음에 드니?


 아침 점심 저녁. 엄마들은 만날 때마다 아기 이름 이야기에 심취해 있다.
 하루종일 들은 정보를 수집해서 저녁에 남편에게 종알거리며 의논을 해본다.
 "여보, 옆 방 애기는 한글 이름 짓는데. 이쁘겠지?"
 "한글 이름도 좋지."
 "앞 방 애기는 유안이라고 이름 지었데. 세련된거 같지 않아?"
 "우리 애기도 유안이라고 이름 지을까?"
 "아이참. 그게 아니라. 우리 애기는 뭐라고 이름 지을까. 아~ 고민되네."

 불꽃같은 며칠이 지나고 최종 선택된 이름들이 식탁 위에 올랐다.
 "저 아기 이름 지었어요. 론이"
 "어머~ 예쁘다. 론이!"
 "저도 이름 지었어요. 혀니."
 "저도 정했어요. 시윤이로!"

 옆 방 엄마는 론이 엄마가 되었고, 20호 엄마는 혀니 엄마가 되었다. 앞 방 엄마는 일찌감치 이름을 정해서 유안이 엄마가 된지 오래였다. 나도 7호 엄마라는 딱지를 떼고 시윤이 엄마가 되었다.

 우리는 그 때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이름이 아기들의 이름인 동시에 우리의 두번째 이름이 될 줄이야.
 우리 이름보다 아기들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려지게 될 줄이야.
 새로 지어진 아기이름을 하루에도 수백번 불러주며 좋아할 적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우리의 이름이 조금씩 흐려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넷, 모두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 흔한 이름을 짓기 싫다고 몸부림치던 나는 아기 이름을 '시윤이'라고 지었다.
 아기를 품고 있을 때에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이름이었지만, 태어난 날과 시에 맞추어 짓게 된 아기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우리 부부는 아기 이름을 마음에 들어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름에 대해 드는 생각 하나.
 사실 시윤이라는 이름은 약간 도회적인 느낌이 없지 않다. 세련되고 매끈한 이미지. 하지만 우리 아들은 자꾸 후덕해지고 순박해지고 있다는 것이 내심 안타깝다. 지금 아들의 얼굴만 보자면 '흰둥이' 정도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통실통실한 모습에 그만 풉! 하고 웃음이 터진다.
 시윤아. 너 이름이랑 매칭율이 너무 떨어지는거 아니니. 어떡할꺼야.

 이름에 대해 드는 생각 두울.
 흔한 이름이 싫다 했다. 특이한 이름,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막상 아기 이름을 시윤이라고 짓고 보니 주변에 온통 시윤이 아빠들이 넘쳐난다. 이를 어째. 남편과 같이 일하는 대리님의 아들도 시윤이, 남편 동기의 아들도 시윤이. 이미 무를수도 없으니 '시윤이 아빠 모임'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남편이 너스레를 떤다.
 게다가 그 시윤이들 중에서 우리 시윤이가 제일 꼬맹이라는 사실.
 시윤아. 나중에 시윤이 형아들이랑 재미있게 놀아보자. ;;;; 시윤이라는 이름 좋은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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