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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Feb 28. 2018

초보 엄마가 비 오는 날 거리를 걷는다는 건...

조리원 커뮤니티

 비가 내린다.

 톡톡톡... 빗방울이 우산을 가볍게 스쳐 떨어진다. 바닥에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귀엽기만 하다. 동네 아이들은 조그만 우산을 받쳐 들고 종종거리며 뛰어가고, 할머니는 우산을 깊숙하니 눌러 쓰고 걸음을 재촉하신다.

 얼마 만이지. 이런 비 오는 풍경.
 그러고 보니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밖에 나온 게 족히 6개월은 더 된 것 같다. 만삭일 때는 위험하다고 조심조심, 아기를 낳고 나서는 비 오는 날 아기를 들춰 메고 우산까지 들 엄두를 못 냈다. 초보 엄마에게는 손이 여섯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럭저럭 6개월이 지나버렸네.

 베란다에서 비 오는 풍경을 내려다보는 것과 나와서 직접 비를 맞으며 걷는다는 것은 이렇게 다르구나. 새삼 비 오는 것 하나에도 감사해 하게 되는 오늘이다.

 오늘은 남편의 휴가 날.
 사실 하루 종일 아기를 본다는 것은 행복하면서도 꽤 지치는 일이다. 아기와 씨름을 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어느새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만큼 방전이 되어버리고 만다. 힘이 많이 들어 힘들다기 보다 어찌해 줄 수 없는 상황들에 진이 빠져 버리는 것이다. 녀석과 잘 통하는 날에는 힘들 것이 없다. 같이 놀아주고, 배고프면 밥을 먹이고, 졸리면 재워주면 되니까. 하지만 뭔가 어긋나는 날이 꼭 하루씩은 있는 법. 이제 제법 힘이 생겨 고집도 부리고, 온몸을 비틀어 대며 투정 부리는 녀석을 달래고 있노라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엄마라서 미안하고, 이런 마음을 몰라주는 녀석이라서 괜히 서운해진다.

 남편은 아기를 낳기 전부터 육아에도 휴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마들에게 육아가 힘든 이유는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라고. 힘든 육아라도 휴일이 있고, 중간중간 쉬어가는 마침표가 있다면 좀 수월하지 않겠냐고 했다. 물론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남편이 꼬박꼬박 내게 휴일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마음만은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육아가 무턱대고 힘들다는 투정은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비 내리는 오후 3시, 남편은 내게 잠시라도 나갔다 오라고 했다. 바깥바람 좀 쐬고 오라고.
 엄마가 나갈 준비를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방실거리며 웃는 녀석을 뒤로하고 노트북을 챙겨 현관을 나서려는데 남편이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밖에 비 와. 우산 챙겨서 나가야 해."

 아파트 1층 현관에서 우산을 펴면서 하늘을 쳐다보는데, 훅 하고 물 비린내가 코를 자극했다.
 "맞아. 이게 비 냄새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온전히 나만을 바라보는 어린 것을 보살피는 일.
 그 어린 것은 나 없이는 먹지도 못하고, 어디 움직이지도 못한다. 하루 종일 껌딱지처럼 붙어서 돌봐주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아기를 낳고 나서 나 또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구나. 비 오는 거리를 걷고,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맞는 일. 새벽안개를 가르고, 늦은 밤 조용한 골목길을 걷는 일. 계절이 가고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을 마주 한지 어느새 6개월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이제는 녀석이 제법 자라서 아기 띠를 메고 가까운 곳에는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정말이지 거실에 앉아 아침과 저녁, 비 오는 오후와 눈 내리는 밤을 맞이해야 했다. 혹여 소아과라도 한번 나가려고 하면 녀석을 겹겹이 돌돌 말아 준비했다. 누군가 나를 보았다면 마치 커다란 담요 뭉치를 안고 가는 것인 줄 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기를 낳기 전에 운전을 배우지 않은 것을 정말이지 수백 번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리고 운전을 능숙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 어린아이를 카시트에 태워서 외출을 자주 했을 리는 없을 것 같다. 결국 운전을 못해서 그렇다는 건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하나의 핑계일 뿐이었다.

 한 여자가 엄마가 되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힘든 육아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유리알 같던 작은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이제 제법 옹알이도 하고 혼자서 손도 뻗고 버둥댈 수 있을 때까지의 시간. 그 시간 동안 여자가 잃어야만 하는 시원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 차분히 내리는 빗소리와 소복하게 쌓이는 하얀 눈꽃 송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아기만은 아니다. 초보 엄마도 그 시간 동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결국 둘은 서로에게 기대서 자라는 것이 아닐까. 그 시간을 온전히 견뎌내고 나면 엄마와 아기, 그렇게 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끈으로 엮어지게 된다.
 그때가 되면 초보 엄마에게도 제법 '엄마' 티가 나려나.

 남편이 선물해준 비 내리는 오후 3시는 생각보다 더 근사한 순간을 내게 선사하고 있었다.
 아가야. 엄마 곧 들어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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