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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Feb 26. 2018

조리원에서의 팔 할은 그것이었지

조리원 커뮤니티

다들 모유는 좀 나오세요?

 

 엄마는 어린 나에게 말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안되는 건 없단다. 원하는 게 있으면 열심히 노력해봐. 넌 할 수 있을 거야."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엄마의 주문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노력해서 안되는 건 없었다. 웬만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었다. 뭔가 부족하다 느껴질 때엔 내 노력이 부족했음을 반성했다. 다음엔 더 일찍부터 준비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으면 될 일이었다. 내가 운동을 했거나 음악이나 미술처럼 천부적인 소질과 재능, 신체조건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 몸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예체능 분야라 할지라도 노력으로 극복해 낸 감동의 스토리들이 많지 않은가. 세상은 노력한 사람에게 달콤한 과실을 주는 곳이라고 믿었다.

 나의 그러한 믿음은 산후조리원에 입소하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아기를 내려다보며 모유를 먹이고 있는 엄마의 모습. '엄마'라는 단어가 가지는 여러 가지 이미지 중 반드시 속해있는 그 아름다운 모습이 실제로 내겐 쉽지 않은 일임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산후조리원 내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 밥을 먹여서 회사 출근을 시키고 (다른 조리원에서도 그렇겠지만 산모들 아침식사 이전에 남편 아침식사를 제공해 준다.) 샤워를 한다. 여유로운 하루의 시작이다.
 아침을 먹고 나면 자유시간. 내가 있었던 조리원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신생아실 소독이 있어 소독이 진행되는 동안 아기들이 각자의 방으로 와야만 했다. 엄마와 아기가 함께 있는 시간. 서툰 초보 엄마의 손놀림으로 우유도 먹이고 안아주고 기저귀도 갈아주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신생아 실로 아기를 보내고 나서 밥을 먹고 나면 또 자유시간. 신생아실에 연락해서 다시 아기를 방으로 보내달라고 해도 되지만, 방에서 멍하니 쉬거나 마사지를 받는 등 오후 시간을 쓰는 방법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저녁시간. 저녁을 먹고 나면 또 자유시간이다. 퇴근한 남편에게 쪼르르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저녁 소독시간이라 아기가 방으로 온다. 남편이랑 둘이서 아기 구경을 원 없이 하고 나서 잠자리에 든다. 그러고 나면 다시 또 아침.

 그렇게 초보 엄마들은 2주 동안 산후조리원에서 몸을 회복한다. 예전에 우리 할머니 세대는 아침에 아이를 낳고, 오후에 밭에 나가서 김을 맸다고 하시는데... 요즘 같아서는 턱도 없는 소리다. 2주 동안 그렇게 쉬어도 온몸 구석구석 성한 곳이 없다. 조리원 방에서 식당까지 걸어가는 짧은 복도에서도 뒤뚱뒤뚱. 분홍이 산모들의 뒷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절대적인 휴식이 필요해 보이는 그녀들에게 조리원에서의 2주는 꿀맛 같은 휴식인 동시에 마지막 휴식이기도 하다.
 집으로 가면 밥도 직접 해 먹고, 이것저것 청소할 거리도 눈에 거슬릴 테니 걱정 말고 2주 동안 쉬고 나오라는 가족들의 배려로 요즘 산모들은 조리원을 많이들 이용한다. 나는 명절 기간까지 겹쳐있어 3주 동안의 조리원 생활을 허락받았다. 아~ 나 결혼 잘한 건가요? 새삼 남편을 보는 내 눈에 하트가 샘솟아 오른다.

 조리원에서 산모들이 사용하는 방은 넓어야 3평 남짓. 그 안에 화장실까지 들어있으니 사실상 침대 하나와 수유의자 정도 놓을 공간을 빼고 나면 그리 넓지도 않다. 산후조리를 하라고 내어준 공간이기는 하지만, 막상 하루 종일 그 방안에 있다 보면 오히려 우울증에 걸려버릴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울컥하는 마음에 아기를 방으로 보내달라고 해서 꼬옥 껴안아 본다. 아기의 존재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감동의 순간은 오래가지 못한다. 우는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신생아실에 SOS를 치게 된다. ㅠㅠ 초보 엄마는 다시 시무룩...

 뭘 좀 해볼까 두리번거리다가 초보 엄마의 모성애 가득한 손짓으로 유축기를 들고 앉는다. 마사지를 해주면 모유량이 좀 늘어나기도 하고, 젖몸살도 오지 않는다는 소리에 주물주물 가슴 마사지도 해보고 서툰 손짓으로 유축기를 가슴에 댄다.
 조용한 방안,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유축기의 펌프 소리를 듣고 있다. 혹시 조금 압력을 높이면 유축량이 늘어날까 하는 기대에 뾱뾱뾱 강도를 높인다. 가슴을 쥐어짜내는 듯한 느낌.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뾱뾱뾱 강도를 조금 낮추게 된다. 유축기 펌프 소리가 온 방안에 울려 퍼진다.

 유축을 하지 않고 직수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직수는 직접 아기가 엄마의 젖을 물게 하는 방법) 엄마에게도 아기에게도 아직 젖을 물리고 젖을 빠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에 한바탕 씨름을 한다. 자세도 불편하거니와 아직 아기가 빠는 힘이 세지 않기에 둘 다 땀을 뻘뻘 흘린다. 배고픈 아기는 입만 벙긋벙긋 벌려 들이대고 제대로 빨아대지를 못한다. 몇 번 물다가 힘이 빠져 고새 잠들어 버리기 일쑤이다. 엄마는 아기가 좀 더 편하게 젖을 먹을 수 있도록 몸을 숙이다 몸을 숙이다 몸을 숙이다... 등이 굽어버릴 것 같다. 직수를 하고 나면 허리에서 우두둑 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은 물론, 계속 이렇게 직수를 하다가 가재가 되어버릴 것 같은 공포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가 된다는 것은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대단한 일인가.
 조리원에 있는 내내 엄마들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이 먹일 수 있을지만 고민하고 걱정한다. 내 아기에게 건강한 초유를 먹일 방법만, 좀 더 많은 모유를 먹일 수 있는 방법만 생각한다. 모두에게 아기를 건강하게 키우겠다는 모성애가 폭발한다. 그래서 엄마들은 다들 각자의 방에서 유축기와 하루 종일 외로운 싸움을 한다. 산후조리원이 절간처럼 조용한 이유는 모두들 각자의 방에서 유축기 펌프 소리만 듣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방에서 직수를 하면 제일 좋겠지만, 조리원에서는 수유 텀을 매번 맞출 수 없으니 유축한 모유를 젖병에 담아 신생아실에 전달한다. 아기가 배고파할 때 분유가 아닌 유축된 모유를 먹일 수 있는 것이다. 엄마들은 수시로 유축을 해서 미리 정해진 박스를 이용해 모유를 전달하게 된다.
 짧게는 10~20분, 길게는 30분 이상 유축을 하느라 기운이 쏘옥 빠진 몸을 이끌고 젖병을 전달하러 갈 때는 왠지 숙제검사를 맡으러 가는 어린 학생이 된 느낌이 든다. 첫날엔 고작 10ml 내외, 날이 거듭해 가도 도무지 늘어나지 않는 유축량 때문에 가볍기 그지없는 나의 젖병 옆에는 뽀얀 모유가 그득한 다른 방 엄마들의 젖병이 놓여있었다. 나는 고작 30ml 간당거리는 젖병 하나인데, 140ml 가득 채운 젖병 2개를 들고 걸어오는 어느 엄마를 보고 있노라면 흡사 개선장군의 위엄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유축이라는 것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긴 시간을 유축한다고 양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니까.
 비루한 젖병을 내어주고 돌아와 식당에서 밥을 펐다. 미역국도 많이 먹는데 왜 양이 늘지 않지. 괜히 부족한 엄마 때문에 우리 아기가 배가 고프지는 않을지, 모유 수유는커녕 분유나 제대로 타먹일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모유가 안 나와서 걱정이에요. 다른 분들은 좀 나오시나요? 저만 그런가 싶어서요."
 "아기 낳은 지 며칠 되셨는데요?"
 "이제 3~4일? 아직 일주일 안되었죠."
 "에이~ 걱정 마세요. 저도 진짜 안 나왔는데, 금방 양 늘어요. 마사지 꾸준히 하시고 물 많이 드시면 돼요."
 "맞아요. 저도 처음에는 걱정했는데, 금방 양 늘어요.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다들 그래요. 걱정 마세요.


 그 순간, 걱정 말라는 한마디가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눈물이 핑 돌았다.
 힘들면 고만하라고, 그냥 분유먹이면 된다고 했던 남편의 위로도. 갖은 약재와 산모한테 좋다는 잉어까지 넣어 만든 한약을 한 보따리 챙겨온 친정엄마의 위로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모유 한 방울 더 짜내기 위해 고생하고 있는 엄마들의 말 한마디에는 못 미쳤다. 잠시나마 가슴에 훅 하고 훈훈한 바람이 지났다. 

 물론 그 뒤로도 나는 한참 동안 양이 늘지 않아 꽤나 고생을 했다. 코를 골며 잠든 남편을 두고 새벽에 일어나 조용히 유축기를 켜고 앉아있노라면 아예 우유가 많이 나오는 소가 되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유축기 펌프 소리에 맞춰 눈물을 흘린 적도 있고, 괜히 조금이라도 더 짜내보겠다고 깔때기를 요리조리 돌려대다가 상처가 난적도 있다.
 107호 테이프가 붙어있는 젖병을 들고 얼마나 동동 거렸는지. 깔때기 끝에 묻은 한 방울이 아까워 그것까지 젖병에 담으려고 탈탈 털어내는 나를 보고 혼자 피식 웃음 지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닫힌 문안에서 초보 엄마들은 그렇게 유축기와 싸우고 있었겠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산후조리원에서 엄마들은 마음 편히 쉰 것만은 아니었다. 각자의 공간에서 진짜 엄마가 되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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