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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Feb 19. 2018

난 그런거 딱 질색이야

조리원 커뮤니티

조리원 커뮤니티?!
모르는 아줌마들끼리 모여서 수다떠는거
난 딱 질색이야. 그런거 싫어해.


 산부인과에서 퇴원해 산후조리원으로 가는 길.
 남편은 내게 넌지시 조리원 커뮤니티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아이를 가지고 있는 집에서, 아니 아이가 있는 남편들이 가장 경계한다는 그 것, 조리원 커뮤니티. 남편 또한 내가 임신해 있는 동안 조리원 커뮤니티를 조심하라는 조언을 숱하게 들어왔던 터였다.
 "끈끈하기는 몇 십 년된 친구같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다 하는 엄청난 조직이래. 서로들 남편 흉도 엄청 보고. 조리원 커뮤니티랑 카톡만 하고나면 뭘 하나씩 사들인다고 친구들이 완전 조심하라던데. 여보도 조리원 커뮤니티 만들거야?"
 "에이~ 뭘 그런걸 만들어. 그냥 조용히 쉬다가 나오려고. 모르는 사람들이랑 친해봤자 얼마나 친해지겠어. 걱정마."

 우리 아들이 바깥 세상의 첫 빛을 보는 날.
 나는 남편이 이야기하는 조리원 커뮤니티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행여나 햇빛에 눈이 부실까, 행여나 겉싸개가 불편하지는 않을지. 작고 보드라운 우리 아들을 안고 있는 것에 온 정신이 팔려 조리원 커뮤니티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조리원에 도착해서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고보니 휴우 한숨이 내쉬어졌다. 아무리 산후조리가 중요하다고는 하나 이 좁은 방에서 3주간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남편이 출근한 낮시간 동안 좁은 방안에 혼자 있을 생각을 하니 괜히 막막해져 왔다. 남들 다 간다고 하니 산후조리원으로 들어왔는데 과연 잘한 일일까. 마치 학생 때 낯선 야영장에 짐을 푸는 느낌으로 방을 두리번 거렸다.

 내가 선택한 산후조리원은 남편과 아내가 같이 식사를 못하게 되어있었다. 산모들이 먼저 식사를 하고나면 남편들이 식사를 하는 방식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밥을 할 수 있을지 괜히 걱정이 되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남편을 방에 두고 나 혼자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두근두근 이제 말로만 듣던 산후조리원 생활의 시작인가.
 "여보. 내가 얼른 먹고 올게요! 잠깐만 혼자 있어!"

 식당에는 온통 분홍이들이었다. 
 분홍색 상의에 분홍색 바지. 다들 머리를 대충 올려 묶고 밥이랑 반찬을 덜어먹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커다란 대접에 미역국 한그릇씩. 순간 풉 하고 웃음이 날뻔 하기도 했지만, 앞으로 3주 동안 내가 저 속에 섞여서 같이 생활을 해야하는구나 생각에 금새 평정심을 되찾았다. 아직 자연분만한 상처가 아물지 않아 어기적거리는 걸음을 끌고 식당을 한번 휘~ 돌아봤다.

 음... 왠지 저 테이블은 이미 한껏 친해진 사람들끼리 앉아 있는 것 같군. 패쓰.
 저 테이블은 베테랑 둘째 엄마들인 것 같은데... 육아이야기가 한창이구만. 패쓰.
 저 테이블은 이미 자리가 다 찼고... 아! 저 끝 테이블이 좋겠다.
 왠지 나랑 비슷한 나이 또래 엄마들 같기도 하고 다행히 자리도 비어있으니 얼른 먹고 방으로 가야지.

 "안녕하세요."
 괜히 어색함에 인사를 하며 식탁에 앉았다.
 "아. 네. 안녕하세요."
 식탁 위에는 적막이 흘렀다.
 남편이 보고 싶었다. 신생아실에 맡긴 우리 아들도 보고 싶었다. 괜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밥만 쳐다보며 몇 숟가락을 더 뜨다가 누군가 입을 뗐다. 그 사람이 나였는지 누구였는지는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 들어오셨어요? 저는 며칠 전에 들어왔는데."
 "아. 네. 지금 막 들어와서 밥 먹으러 왔어요."
 "자연분만... 하신거예요?"
 "아. 네. 요 옆에 산부인과에서 자연분만 하고 이리로 왔어요. 자연분만 하셨어요?"
 "네네. 저도 그 산부인과에서 자연분만 했어요."
 "저는 그 앞에 있는 병원에서 재왕절개 했어요."
 "아. 그러셨구나."

 매끄럽지는 않았으나 대화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졌다. 이름도 성도 나이도 사는 곳도 몰랐지만, 우리는 모두 엄마였기에 가능한 대화들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름을 묻지 않았고, 나이를 따지지 않았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언제 아이를 낳았는지, 자연분만을 했는지, 진통은 얼마나 했는지, 그리고 조리원에 언제 들어왔는지를 가지고 서로를 가늠했다. 그렇게 통성명도 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다 드셨어요? 그럼 같이 일어나실까요?"
 "네네. 저녁에 또 뵈요. ㅎㅎ"
 "아~ 네. 그렇게 되네요. 저녁에 또 뵈요!"
 식당에서 돌아나오는 길. 왠지 나는 뒤통수가 화끈거려 방으로 종종 걸음을 쳤다. 혼밥을 하게 될 줄 알았더니 혼밥이 아니었구만.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랑 이렇게 술술 이야기를 하다니. 진짜 나도 아이를 낳고 철면피 아줌마가 되어가는건가.

 방으로 돌아왔더니 남편이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배정받은 방 천장에 있는 스프링쿨러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침대시트를 적셔서 남편이 황급히 쓰레기통을 받쳐둔 상태였다.
 "여보. 방에 물이 새. 말씀은 드렸는데 빈방이 없다고 하셔서 걱정이네."
 잠시 쉴 겨를도 없이 수리기사님이 우리 방으로 들어닥치고 짐들을 다시 싸고 사무실을 왔다갔다 하기여러번. 결국 우리는 산후조리원 계약을 위해 사람들이 둘러보는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쉽게 말하자면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입주하게 된 셈이었다. 다행히 먼저 배정받았던 방보다 깨끗했고 햇빛이 드는 창문도 있었다. 한바탕 소동이 있었지만, 오히려 우리에게는 더 잘 된 일이었다.
 임신해 있었던 내내 좋은 일들만 생기더니 결국 이 녀석이 자기가 편하게 지낼 방으로 옮겨온 느낌이 들었다. 요녀석. 기가 막히게 자기 편한 것은 잘 챙긴단 말이지.

 새로운 방에 다시 짐을 풀고 정리를 한 뒤. 침대에 남편이랑 나란히 앉았다.
 "여보. 그래도 조리원에서는 아기를 봐주니까 몸조리 잘 하고 푹 쉬고 나와야해."
 "응. 병원에서는 정신없었는데 아까 아기 안고 바깥에 나오니까 진짜 엄마된 느낌이 들더라."
 "그러게. 우리 이제 진짜 부모가 된거네. 고생했어요."
 "고생은 무슨."
 "조리원이 천국이라고는 하지만, 여보가 외로울까 걱정이야. 답답해 하지 않고 잘 지내면 좋겠는데."
 "아. 아까 밥먹는데 보니까 사람들 좋더라. 같은 산부인과 사람들도 많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고 재밌었어. 잘 지내고 나갈테니 걱정말아요."
 어깨를 토닥토닥 해주던 남편이 몸을 휙 일으켜 나를 쳐다봤다.

ㅋㅋㅋㅋㅋㅋ 
결국 만들었노. 조리원 커뮤니티!

 
 "아냐~ 밥만 같이 먹은거야. 혼자 밥 먹기 그렇잖아. 밥 먹다가 그냥 이야기 몇 마디 나눈거야. 진짜야."
 "그렇게~~ 조리원 커뮤니티 싫다더만. 내가 봐서는 벌써 만들었네 만들었어."
 "아니라니까! 나 그런거 싫어한다고!"
 "알았어. 두고봄세."

 이제와 이야기지만, 나의 조리원 커뮤니티는 남편의 예상대로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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