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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Feb 19. 2018

지금 이 고통을 숫자로라도 보여줘

조리원 커뮤니티

  병원에 입원한지 한 시간 반. 내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양수는 흐르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진통이라는 것이 없었다. 간호사가 와서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곧 진통이 시작될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왠지 내 이야기가 아닌 것만 같았다. 먼 나라 이야기로만 들렸다.

 "어제 소고기를 많이 먹었기에 망정이지. 그래도 너무 배고픈데... 아침에 뭐라도 먹고 병원으로 왔어야 했어."
 "많이 배고파? 이렇게 바로 입원하게 될 줄 누가 알았나 뭐."
 "예정일도 아닌데... 녀석이 급했나 봐. 내가 어제 사준 소고기가 엄청 맛있었나 보다. 나가면 그런 거 많이 먹을 수 있겠구나 싶어가지고."

 남편과 나, 남동생이 분만실에 옹기종이 모여앉아 수다를 떨며 기다리는 수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따금씩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와 내 상태를 체크하고 나갔다. 그렇게 차분히 시간은 흘러갔다.
 볼록하게 솟아오른 내 배에는 태동 검사를 할 때 사용했던 기계가 붙어있었다. 아이의 상태와 자궁의 수축 정도를 보여주는 그래프가 기계의 작은 화면에 그래프로 보이고 있었다.

 열두시쯤 되면서부터 슬슬 진통이 시작되는 듯했다. 배 뭉침이 생기는 것처럼 아랫배가 당겨왔다. 누군가 내 뱃속을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진통이라는 건가. 그저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었다.
 "여보. 나 진통이 시작되는 거 같은데 약간 지릿지릿하고 땡깃땡깃한 느낌이야."
 "그건 어떤 느낌이지? ㅋㅋㅋㅋㅋㅋ"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나를 보며 내가 사랑하는 남자 둘도 같이 웃었다. 표현력이 그게 뭐냐며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 아프지 않은데 너무 오래 가만히 누워있기 민망해서 아픈 거 같다고 장난치는 거 아니냐며 나를 몰아세우기까지 했다.

저 그래프 봐봐.
숫자가 커지면 내 배가 더 많이 조여온다니까.
아픈 거 맞다고!!


 진짜 그랬다. 태동 검사 기계에 보이는 그래프가 솟아오를수록 배가 더 많이 당기고 아팠다. 전혀 진통이 없을 때는 한자리 숫자이다가 갑자기 40~50사이로 높아질 때는 숨을 크게 들이쉬어야 할 만큼 배가 당겼다. 잠시 쉬다가도 그래프가 서서히 올라갈 때면 마음의 준비를 했다. 마치 해수욕장에서 파도를 타는 기분이었다. 저 멀리 오는 큰 파도를 보고 튜브를 꽉 잡고 발을 동동대며 파도를 넘으려고 준비하듯 그래프가 올라설 때 나는 주먹을 꽉 쥐고 배를 내려다봤다.

 몇 번을 그렇게 하고 나니 남편과 남동생도 눈치를 챘는지, 셋은 모두 작은 화면에 보이는 그래프만 뚫어져라 쳐다보게 되었다. 잠시 짬을 내어 수다를 떨다가도 그래프가 올라설 기미가 보이면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준비 경보를 울렸다.
 "어?! 그래프 올라간다 올라간다! 20! 30! 40! 이야~~ 이번에는 많이 올라가는데? 안 아파?"
 "으~~~~~~~~"

 다행인지 아닌지 아기는 세상에 나올 준비를 엄청나게 빨리하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올 때마다 진행 정도가 쑥쑥 올라갔다. 30% 진행되고 있어요. 50% 진행되고 있어요. 그 말에 맞추어 내가 느끼는 진통의 강도도 점점 강해졌다.
 "아. 아침을 먹고 왔어야 했어. 배가 너무 고픈데 배가 당기니까 더 고파져. 힘이 없어서 아기는 낳을... 아~~~~~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여보. 99였어. 많이 아팠지? 어떡해. 배고파? 아파?" 

 그래프의 최고점은 99였다. 진통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그래프는 매번 99를 찍고 있었다. 만약 그래프의 최고점이 99가 아니었다면 아마 200까지도 갔을지 모른다. 같은 방에 있었지만 남편과 남동생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나눠주지 못했다. 아니 느끼지도 못했다. 나는 혼자서 침대에 누워 몸을 비틀며 고통이 지나가기를, 그래프가 얼른 아래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신기한 건 그래프가 아래로 떨어지고 나서는 거짓말같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배실 배실 웃으며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래프가 다시 솟구치면 아무 말도 못하고 괜히 침대에서 혼자 도리질을 쳤다.

 나를 보고 있는 남자 둘과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거라곤 작은 화면 속에 보이는 커다란 숫자와 그래프뿐이었다. 그래프가 가파르게 솟구쳐 99를 가리키고 있을 때, 우리 방은 조용해졌다. 어서 저 숫자가 작아지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도 뭔가 그렇게라도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고통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내가 얼마만큼 아픈지, 우리 아가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지금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통로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 이제 거의 진행이 다 되어서요. 분만 들어가실게요. 빠르면 30분 안에 아기가 태어날 거예요."
 "네? 분만이요?"
 병원에 온 지 채 5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진통이 시작된 지 2시간 남짓. 간호사 선생님들이 내 배에서 기계를 떼어내고 분만 준비를 시작했다. 잠시 준비를 할 동안 남편과 남동생은 방에서 나가 있으라고 했다. 차가운 기기들이 내 몸에 닿는 것이 싫었다기 보다, 남편이 방에서 나간 것이 싫었다기 보다 이젠 내가 아파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잣대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났다. 그래프가 올라가면 곧 아파지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했었는데, 이젠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고통이 전해지는 내 감각에만 기대는 수밖에. 그리고 내가 아픈지 아닌지를 다른 사람은 알 길이 없었다. 온전히 나와 아기가 견뎌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오로지 우리 둘만의 시간. 

 진통이 시작되고 꼬박 3시간.
 남들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짧은 진통을 겪고 나는 생전 처음 엄마가 되었다. 물론 무통주사도 들지 않았고 아기도 산도를 찾아 내려오는데 고생을 했다고는 했지만 짧은 진통시간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이 주신 선물과도 같았다. 당장 아침에 부스스하게 일어나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던 기억이 스쳤다. 그때는 내가 오늘 오후에 엄마가 될 거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기분 좋은 어느 하루였을 뿐인데. 이미 오늘은 내 생애 가장 감사하고 귀한 날이 되어 있었다.

 내 품에 안긴 아기는 너무나 작고... 파랗고 양수에 불어서 이상해 보였다. ;;; 사랑스러운 것과 예쁜 것은 엄연히 다른 말. 너무나 귀하고 사랑스러웠지만 너무 못 생겼... ;; (나중에 알고 보니 녀석도 세상에 나오느라 엄청 고생을 했었나 보다. 새파랗게 질려 있었던 것이었다. 부모님들도 첫 사진을 받아보시고는 애가 파래서 걱정을 하셨다고... ;; 병실에서 안아본 우리 아기는 세상 귀엽고 예뻤다.)

 후처치를 하고 병실로 올라가기 위해 휠체어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로 가면서 간호사 선생님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산모님. 출산하시면서 얼굴에 힘을 많이 주셨어요. 혈관이 터져서 반점이 생겼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면 없어지니까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아. 네. 제 얼굴에 혈관이 많이 터졌나요?"
 "네네. 혹시 놀라실까 봐서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서 나는 간호사 선생님이 왜 내게 그 말을 해줬는지 이해가 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있는 거울엔 내가 모르는 여자가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머리는 온통 헝클어지고, 얼굴부터 목까지는 빨간 반점이 가득했다. 빨간 주근깨를 한 바가지 들이부어 놓은 듯했다. 눈은 퉁퉁 부어있었고, 입술은 창백했다. 이제 막 엄마가 된 내 모습이었다.

 30분 뒤에 저녁식사가 나온다는 소리에 남편은 내게 초코바 하나를 내밀었다. 내가 진통하는 내내 먹고 싶다고 찾았던 초코바. 장장 20시간 만에 무언가를 먹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좀 들었다. 병실로 들어오는 간호사 선생님들마다 이제 뭘 좀 챙겨 먹었냐며 물어봐 주었다. 먹은 것이 없어 힘이 안 들어간다며 마지막 분만할 때도 고생을 했던 터라 온 병원에 소문이 났나 보다. 이거 참 부끄럽군. 

 병실에서 안아본 우리 아기는 너무나도 작고 가냘펐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녀석. 파란 아이인 줄 알았더니 병실에 올 때는 빨간 아이가 되어서 왔다. 파란색이면 어떻고, 빨간색이면 어떠랴.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운데. 부서질까 봐 조심스러워 제대로 안지도 못하면서도 남편과 나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리의 숨소리조차 아기한테는 너무 크게 들릴까 봐 숨죽여 쳐다보았다. 행여나 닳아없어질까 만지지도 못했다.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한없이 미소 지었다.

 그래, 우리 세 가족은 오늘부터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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