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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Feb 13. 2018

우리의 '그날'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조리원 커뮤니티

나보다 당신이 더 힘내야 할지도 몰라.
이번 주말에는 회사 근처에서 쉬어요.
당장 다음 주에 아빠가 될지도 모르잖아.


 예정일을 3일 앞둔 주말. 남편은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출퇴근 시간엔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 남편은 불평 한마디 없이 매일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고, 저녁에 집에 와서 만삭인 나를 챙겨주었다.
 대부분의 서울 사람들이 그리 산다고 하지만, 남편은 서울 생활 새내기인 뼛속까지 지방 사람. 입사해서 지금까지 회사 기숙사에 살며 걸어서 출퇴근을 하다가 하루 서너 시간을 차 안에서 혼자 보내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으리라. 나는 남편에게 주말에는 하루쯤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주말에는 나들이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차도 더 밀릴뿐더러 곧 아이가 태어나면 이제 그마저도 쉬지 못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 9시. 느지막이 눈을 떴다.
 남편이 있었다면 같이 일어나서 일찌감치 아침을 챙겼을 텐데. 혼자 있으니 늦잠도 잘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상쾌하게 몸을 일으켰다. 너무 사랑하지만 가끔은 빈자리가 반갑기도 한 법이다. 이제 슬슬 배도 고파지고, 뭘 먹을까 냉장고를 스윽 열어보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주르륵. 물이 흘렀다. 분명 소변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었다. 핏기가 있었지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이슬이라 하기엔 양이 많은 듯했다. 뭐지.
 주르륵. 또 물이 흘렀다. 이번에는 내 다리를 타고 내렸다. 뭐지.

 당장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산부인과 의사선생님은 아기가 평균보다 작은 편이라 40주가 넘어도 소식이 없으면 유도 분만을 하자고 했다. 아이가 나오고 싶을 때 낳는 게 좋지 않냐고 반문했으나 너무 오랫동안 배에 품고 있어도 좋지 않다는 소리에 그러겠노라고 했다. 만약 40주까지 소식이 없다면 말이다.
 아기를 품고 있는 내내 의사선생님은 아기가 작다고 했다. 허벅지 길이는 평균인데 머리는 작은 편이라 낳을 때 수월하게 낳을 거라고 했다. 대신 너무 늦어질 수 있으니 분만 시기를 잘 보고 정하자고 했다. 아마 태어나는 아기는 아무리 많이 나가더라도 3킬로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남편과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면 된다고 우스개를 했지만 내심 남자아이라서 너무 작게 태어나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그게 바로 며칠 전인데, 오늘 아침 이 상황은 뭐지.

 혹시 양수가 먼저 터질 경우, 샤워를 하지 말고 병원으로 바로 오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무심하게 흘려들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간단한 옷만 걸치고 집을 나섰다. 손에는 손지갑 하나. 다행히 병원이 가까워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바깥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큼 햇살이 반짝이고 하늘이 파아란, 너무나 예쁜 가을 날이었다. 거리엔 사람들이 분주했고, 바람은 상쾌했다. 나는 만삭인 몸에 어울리지 않게 종종 걸어서 병원에 도착했다. 화장실에서는 좀 당황했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가볍고 상쾌했다. 날씨 탓인가.

 "저... 제가 아직 예정일이 이틀 남았는데요. 아침에 양수가 터진 것 같아요."
 "아~ 그러세요? 양수 맞아요? 양이 많고요?"
 "네. 양수가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처음이라..."
 "^^ 그럼 바로 입원하시면 되지요. 저 따라서 올라오세요!"

 그렇게 덜컥 침대에 누웠다.
 그때엔 그곳이 내가 엄마가 되는 분만실이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냥 어리둥절했다.

 출근했던 남편은 서울로 차를 몰고, 강원도로 단풍놀이를 떠났던 엄마는 서둘러 서울로 오는 고속도로에 올랐다. 시아버님은 서울 오는 기차표를 예매하시고. 민족대이동이 따로 없었다. 병원에 제일 먼저 도착한 건 의외로 동네에 사는 남동생이었다.
 "야. 내가 어제 너 힘내라고 소고기 사 먹였더니. 바로 이렇게 힘을 주냐. 아직 예정일 전 이지 않아?"
 "시끄러. 나 화장실 다녀올게. 관장약 넣어가지고 이 누님이 일을 보러 가셔야 하거든."
 "아오. 저게 엄마가 된다고."

 열 달동안 기다렸던 날이었다. 
 만삭이 되고 나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에 그려보던 날이었다. 벌써 꿈속에서는 아이를 대여섯은 낳아본 것 같았다. 오늘이 바로 그렇게 고대하던 엄마가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출산 가방을 싸놓고 입원할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들 말하는 그 무시무시한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낼 마음의 준비가 아직 되어있지 않았다. 그저 반짝거리는 가을 햇살 받으며 혹시나 해서 병원에 들른 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 모금, 쌀 한 톨 먹지 못한 상태였다. 

그냥 이렇게 아이를 낳는 건가요?


 내 몸은 이미 아이를 만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애써 나는 마음을 추스르며 펑퍼짐한 산모복을 입고 침대에 누웠다.
 조용한 분만실에 초침이 찰칵찰칵, 방 밖에서 간호사들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소리. 나는 침대 왼쪽에 놓인 몇몇 기계들을 보았고, 오른 편에 앉아있는 남동생에게 눈을 찡긋거렸다. 그리고 새하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한 번, 두 번. 조용히 눈을 껌뻑거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아니 뭘 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냥 멍했다.
 그렇게 내겐 너무나도 특별한 일요일 오전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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