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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Mar 05. 2018

진분홍 체크 원피스를 입은 그녀

조리원 커뮤니티

 왜 조리원에서는 다들 분홍색 옷을 입을까.
 펑퍼짐한 상의와 하의, 잔 무늬가 있긴 하지만 죄다 연분홍색 일색이다. 차이가 있다면 색이 바랜 정도에 따라 조금 진한 분홍색과 조금 연한 분홍색만 있을 뿐. 엄마들의 옷은 모두 분홍색이다.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들어가다가 흠칫 놀랐다.
 분홍색 사람들이 네다섯씩 뭉쳐 있었다. 모두들 머리를 한가운데로 올려 묶은 비슷한 헤어스타일.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에 몇몇은 분홍색 회음부 방석을 들고 오거나 깔고 앉아 있었다. 철이 들고나서 이렇게 많은 분홍색을 본 적이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조리원 산모복은 반드시 분홍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내어놓으면 빨아주시고 보송하게 말려주시는 여사님들께 분홍색 운운하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내심 분홍색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오늘도 나는 공용 옷장에서 조용히 분홍색 산모복을 꺼내어 방으로 들고 왔다.

그래. 다들 똑같은 분홍색이면 어때.
빨아주시는 것만도 감사하지.


 그러고 보니 옆방 론이 엄마는 조리원 입소 첫날부터 원피스 산모복을 입었다. 그녀만의 확고한 패션 스타일이라고 할까. 다들 상의와 바지로 된 산모복을 입었는데, 유독 혼자만 체크 원피스를 챙겨 입고 나왔다. 조금 진한 분홍색과 다른 여러 가지 색깔이 섞여 있는 그 옷은 나름 조리원 내에서 한정판. 몇 벌 없어서 입는 사람이 적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론이 엄마에게 그 원피스가 참 잘 어울렸다. 동글동글한 론이 엄마의 이미지와 원피스는 퍽이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나는 매번 론이 엄마를 보면서 원피스가 참 잘 어울리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 원피스는 몇 개 없던데. 어떻게 매번 그걸 입어요?"
 "그래요? 내가 봤을 때는 옷장에 항상 있던데? ㅎㅎ 내 거인가 봐."
 "론이 엄마는 그 원피스가 어울려요. 바지 입으면 이상할 거 같아."
 "바지 입는 거 답답해서 그냥 원피스 안에 레깅스 입는 게 더 나은 거 같아요. 쉿! 더울 때는 레깅스 안 입고 원피스만 입고 나오는 건 비밀! ㅋㅋㅋ"

 며칠 뒤, 나는 식당에서 론이 엄마를 찾고 있었다.
 이쯤 되면 밥 먹으러 올 시간인데 아직 안 왔나? 나름 옆방 엄마를 챙기는 마음으로 열심히 두리번거리다 우리의 지정석으로 발길을 옮겼다. 누군가 우리 자리에 일찌감치 와서 밥을 뜨고 있었다.
 '아. 새로 오신 분인가 보네.'
 첫인사를 건넬 요량으로 슬쩍 말을 걸며 자리로 앉았다.
 "안녕하세요."
 "어머. 오셨어요? 제가 오늘 좀 일찍 나왔죠?"

 이런. 론이 엄마였다.
 진분홍 체크 원피스를 공수하지 못한 탓에 우리와 똑같은 분홍색 산모복 한 벌을 입고 밥을 먹고 있었다. 그녀의 원피스 패션에 익숙했던 나는 그녀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 몰라봤잖아요. 원피스는 어쨌데?!"
 "아. 오늘 보니까 옷장에 원피스가 없더라고요. 저도 불편하네요. 언제 원피스 입고되는지 매의 눈으로 지켜봐야겠어요. ㅋㅋㅋ"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리원에서 나가 우리가 분홍색 산모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하루 종일 유축기에 붙어사는 초보 엄마가 아닌 원래의 우리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원피스 하나 바꿔 입었을 뿐인데 코앞에 있는 서로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황 앞에서 나는 왠지 후일 우리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더불어 원피스를 입기 전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분홍색 산모복을 입기 전에 우리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차마 그녀에게 묻지 못했다. 왠지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원피스 안 입으니까 딴 사람 같다! 웬일이야~"
 애꿎은 원피스 타령만 하면서 나는 조용히 미역국을 떠먹었다.

 분홍색 산모복을 입기 전, 우리는 다들 어떤 모습들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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