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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Mar 20. 2018

엄마가 괜한 욕심부려서 미안해

조리원 커뮤니티

여보. 오늘 우리 아가
사진 찍는 날이에요.


 조리원에서 진행되는 많은 프로그램들 중에 신생아 사진촬영이 있다. 조리원과 연계된 사진관에서 무료로 사진촬영을 해주는 것인데 물론 이 또한 장사 속이라 50일 촬영까지 무료로 해주고 100일, 돌 촬영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상업적인 노림수가 있든 없든 사랑스러운 아가의 사진촬영이라는 말에 초보 엄마는 괜히 아침부터 설렘 설렘. 우리 아기가 예쁘게 나왔으면 하는 바람 가득한 마음으로 간밤에 잠도 설쳤다는...

 드디어 대망의 그날.
 아침부터 사진관 아저씨들은 조리원 거실에 작은 요람을 설치하고 알록달록 머리띠도 챙겨오시고, 준비가 바쁘다. 분홍색 옷을 입은 엄마 군단 또한 어슬렁어슬렁 지나며 준비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옆방 아기는 이쁜가, 뒤 방 아기는 잘 웃는가... 무료한 조리원 생활에 작은 활력소가 되어준다.

 우리 아기는 한참 태지가 벗겨지는 중이라 포동포동 예쁨이 묻어있는 날이 아니었다. 컨디션에 따라 빨간 날도 있고, 까만 날도 있고, 유독 하얗고 뽀얀 날도 있었는데... 아침에 보니 오늘은 빨간 날과 까만 날 어디쯤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첫 촬영이니 뽀얀 날이었으면 더더욱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을 감추며 나도 사진촬영 타이밍을 살피고 있었다.

107호 아기 좀 데려다주세요.
사진 찍으려고요.


 어쩜 태어난 지 일주일 갓 넘은 아기들이 프로 모델처럼 카메라를 보고 방긋방긋 웃어댄다. 엄마들은 눈사람 녹아내리듯 스르르 녹아버릴 지경. 조리원 거실이 밝은 웃음소리로 가득 차있다. 이렇게 분위기 좋은 때에 얼른 사진을 찍고 들어갈 참이었다. 먼저 촬영하는 사람들을 보니 촬영 시간은 길어야 2~3분. 금방 찍고 방에 가서 둥가 둥가 아기랑 놀아줘야지 하는 생각에 서둘러 신생아실에 연락을 넣었다.

 그런데 웬걸.
 겉싸개에 고이 쌓여서 나온 우리 아기는 입을 삐죽삐죽, 눈을 떴다 감았다 하더니 그만 와앙~ 하고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얼마나 크게 울어대는지 난 아기를 감싸 안은 채로 거실 한가운데 돌처럼 굳어서 얼어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머리가 하얘지고 나 또한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신생아실에서도 놀랐는지 얼른 우유를 타서 젖병을 내게 건넸다.
 "마침 아기가 밥 먹을 시간이었는데, 금방 사진 찍을 것 같아서 데리고 나왔지요. 우선 밥부터 먹여봐요. 울어서 어쩐데."
 여사님은 남의 이야기하듯 젖병만 건네고는 후다닥 신생아 실로 들어가 버리셨다. 그렇지. 남의 아기가 맞지. 요 녀석은 내 아들이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방으로 안고 들어와 천천히 달래면서 밥을 먹이면 되었을 텐데, 당시 초보 엄마였던 나는 우는 아이를 안고 한 발자국 떼는 것도 어려워 조리원 소파에 걸터앉아 꾸역꾸역 우유를 먹였다. 배가 고파서 잔뜩 성질이 난 녀석은 젖병도 싫다 하며 한참을 소리 지르다 지쳤는지 젖꼭지를 물고 잠이 들었다. 온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하도 용을 쓰며 울어서 온몸은 땀범벅. 내 멘탈은 이미 몸을 빠져나간지 오래였다. 울다 지쳐 잠든 이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어머니. 아기 잠들었어요? 그럼 금방 몇 컷만 찍을게요. 오히려 잠든 게 더 나아요."
 내가 정신을 챙겨들기도 전에 직업정신이 투철한 사진사 아저씨가 아기를 덜렁 가지고 갔다. 요람 위에서 애벌레처럼 생긴 니트에 쌓여 울다 지친 내 아들이 사진을 찍히고 있었다. 머리띠를 올렸더니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또다시 삐죽거리는 입을 보며 아저씨는 연신 얼른 끝내겠다는 소리만 내게 했다. 그렇게 우리 아가의 첫 사진촬영이 끝났다. 나는 애벌레 니트에서 빠져나온 조그만 생명을 안아들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미안해.


 방에 들어와 아이를 안은 채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난로처럼 따끈해진 아기는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숨소리는 들릴락 말락, 아직도 배가 고픈지 입술은 오물짝오물짝. 꿈을 꾸는 건지 눈썹에 힘을 주었다 뺐다. 나는 한참을 말없이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뱃속에 아기를 품고 있는 열 달 동안 멋진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수십 번 아니 수백 번도 더 마음먹었다. 좋은 엄마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척! 하고 바로 답해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아이가 하고 싶은 걸 해주고 엄마 욕심대로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 지 일주일 남짓. 나는 욕심을 부렸던 것일까. 괜히 예쁜 사진 한 장이 탐 나서 이 어린 생명을 힘들게 한 것일까. 작은 후회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 물론 그 뒤로 50일 촬영도 하고, 100일 촬영도 했다는 후문. 아기도 포기했는지 방긋방긋 최대 리액션으로 30분 만에 촬영을 마치고 집에 와서 우유 원샷하고 주무셨다는. 뭐... 촬영이 일찍 끝난 것은 엄마에게도 아기에게도 좋은 걸로. ㅠㅠ 결국 엄마의 욕심은 어쩔 수 없는 건가... ;;;; 아직도 엄마는 반성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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