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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Mar 27. 2018

100일 동안 미역국을 먹으면?

조리원 커뮤니티

식사시간이 되면 조리원 식당에 있는 식탁 위에는 가지런히 미역국들이 세팅된다. 집에서 흔히 먹는 국그릇도 아닌 큼지막한 대접에 넉넉하게 담긴 미역국을 보고 있노라면 일종의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내가 바로 '엄마'의 음식이다!


 삼시 세끼 미역국을 먹어대는 산모들의 고통을 아시는지 주방을 책임지고 계시는 마스터 셰프 여사님께서는 미역국의 다양화에 많은 고민을 하신다. 소고기도 넣었다가 북어도 넣었다가 조개도 넣었다가... 나름 많은 변화들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산모들에겐 그저 미역국일 뿐. 퇴소 날이 다가오면 미역국이 먹기 싫어서 남편을 졸라 외출을 하고 왔다는 산모들의 볼멘소리도 여기저기서 제법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미역국을 참 좋아했었다.
 우리 엄마가 자칭타칭 미역국 장인이었기에 맛있는 미역국을 먹을 수 있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들깨가루 듬뿍 들어간 그 탁한 국물이 웬일인지 그렇게 좋았다. 걸핏하면 엄마한테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졸랐던 나였다. 사람들은 아기를 낳고 미역국만 내내 먹으면 지겨워서 어쩌냐고 걱정했지만, 오히려 나는 미역국을 원 없이 먹을 수 있어 좋겠다며 쾌재를 불렀다. 미역국은 나에게 소울푸드 였다고 해야 할까.

 물론 미역국이 내게 즐거운 기억만을 선사한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고 처음 맞이한 시아버님의 생신. 나는 미역국을 끓여드리겠다며 호언장담을 하고 시댁의 부엌에 섰다. 낯선 주방이었지만 다른 음식도 아니고 미역국이지 않은가. 요리에 젬병인 나였지만, 다른 음식도 아니고 미역국이기에 시아버님께 큰소리를 탕탕 쳐댔다.
 "아버님, 제가 미역국 맛있게 끓여드릴게요. 제가 딴 건 몰라도 미역국은 잘 해요."

 소고기와 미역을 준비해서 불을 올리며 국간장을 찾았는데,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아버님, 국간장 어디 있어요?"
 "국간장 떨어졌는데, 그냥 진간장 써라."
 "아. 미역국은 국간장으로..."
 "뭐 간장이 다 같지. 진간장으로 해도 된다. 상관없다~"
  나는 안 괜찮은데, 우리 시아버님은 괜찮다 하시니 울며 겨자 먹기로 진간장을 쪼르륵 넣고 열심히 미역국을 끓였다. 내가 매번 먹던 그 맛이 나올 리가 없었다. 당황한 김에 소금으로라도 간을 맞춰보려고 눈앞에 있는 소금통을 탈탈 털어 넣고 간을 보았다. 그런데 이를 어쩔까. 맛이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었다.

 "아버님, 이거 소금 아니에요?"
 "그거? 미원이지~~~. 미역국 아직 다 안됐나. 슬슬 배고픈데."
 "아.. 네.... 거의 다 됐어요. 드... 시면... 되지... 요..."
 미역국을 드신 아버님은 소리 없이 빙그레 웃으셨다. 한 숟가락을 더 뜨시고는 또 웃으셨다.

우리 며느리, 회사 열심히 댕기느라
요리를 아직 못 하는구먼.
앞으로는 아버지가 밥 해주꾸마.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 시댁에 가면 아버님이 밥을 해주신다. 갈치도 굽고 갈비찜도 해주시고... 아버님의 밥상은 MSG가 가득하지만 맛 하나는 끝내준다. 장난기 많으신 우리 시아버님은 '미역국 사건' 이후로 무슨 이야기만 나오면 나를 놀려대신다.
"아이고. 우리 며느리가 미역국을 하~~도 잘 끓여줘가지고... 그지? 우리 며느리 대표 메뉴가 미역국 아이가."

 아기를 낳고 내내 미역국을 끓여먹어야 한다는 소리에 아버님은 또 피식하고 웃음을 지으셨다. 결혼하고 요리가 제법 늘었다고 남편이 거들었지만, 시아버님은 도리질을 치셨다. 먹어보기 전까지는, 아니 먹어보고 난 이후에도 믿지 않겠다며 농담을 하셨다.

 지나고 보니 아버님이 걱정해 마다않는 그 미역국을 꼬박 100일 동안 끓여먹었다. 커다란 미역국용 냄비를 따로 사서 고기도 듬뿍, 미역도 듬뿍, 들기름에 들깨가루까지 듬뿍 넣고 온 집안이 미역국 냄새로 가득해질 만큼 푹푹 끓여댔다. 미역국은 동화 속에 나오는 마법의 수프처럼 보글보글... 그 녀석을 삼시 세끼 100일 동안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이기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100일이 넘은 어느 날, 이제 막 뒤집기를 시작한 아기 옆에 꼭 붙어서 보내는 하루.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커다란 냄비를 보며 이제 당분간은 미역국을 먹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 100일 동안이나 먹었으면 되었겠지?! 아... 이제 고만 좀 먹자.'
 그렇게 내 소울푸드 미역국에게 짧은 이별을 고했다. 우리 당분간은 만나지 말아요.

 끈질기게 이어진 미역국과의 인연, 100일.
 지금 생각해보면 그 100일 동안 나는 한 사람의 여자에서 한 아이의 엄마로 성장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훌쩍...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마법의 수프 같다며 끓여대던 그 미역국이 나를 100일 만에 엄마로 만들어 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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