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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Apr 03. 2018

산후조리원에는 통곡의 골짜기가 있다?!

조리원 커뮤니티

 산후조리원을 계약하러 갔던 날.
 원장 선생님은 내게 눈을 흘기며 핀잔을 주었다. 
 "어쩜 이리도 천하태평이실까. 내가 특별히 예약해 주는 거예요. 다른 산모들은 6개월 전에 와서 다 알아보고 하는데, 우리 엄마는 참 속도 좋네."
 늑장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계약을 받아준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돌아 나오는 길. 얼핏 복도 끝에 '피부관리실'이라고 쓰인 팻말이 눈에 띄었다.

 내가 등록한 산후조리원에서는 출산 전 산모들에게 피부관리 마사지를 제공해 주었다. 말 그대로 피부관리 목적의 얼굴 마사지. 나중에 조리원 동기 엄마들에게 후기를 들어보니 누구는 좋았다 했고 누구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오기에는 가성비가 떨어진다 하였지만, 나는 잠깐씩 다녀가는 길에 조리원에서 지내는 다른 엄마들을 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단체로 식당에서 밥을 먹는 모습, 분홍색 옷을 입고 복도를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모습, 파라핀 찜질을 한다고 앉아있는 모습 등은 곧 내가 경험하게 될 가까운 미래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피부관리실 안에서 출산을 한 엄마들이 마사지를 받는 모습이었다.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마사지를 받는 모습을 곁눈질로 슬쩍슬쩍 보고 있노라면 왠지 안쓰러워서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사실 처음에는 출산으로 인해 부은 몸을 얼른 회복하고자 마사지를 받는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나도 평소 몸무게 보다 10킬로 정도 쪄있었으니 과연 얼마나 빨리 원래의 몸무게를 회복할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전 마사지를 받으러 다니는 동안, 한번 두 번 선배 엄마들을 보다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유독 소리를 크게 지르고 아파하는 엄마들은 대부분 가슴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우리 산모님도 아기 낳고 들어오시면 가슴 마사지 많이 하셔야 돼. 그래야 모유도 잘 나오고 그러지. 원하시면 우리가 언제든 해드리거든. 혼자 방에서도 하시고, 우리한테 받으시기도 하고... 꼭 그렇게 하셔야 돼요."
 마사지를 한답시고 팔다리를 나 아닌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것도 아직 어색한데 가슴을 내어 놓으라니... 나는 도리질을 치며 얼른 피부관리실을 빠져나왔다.

 "여보. 아기 낳으면 가슴 마사지도 받나 봐. 다른 엄마들 보니까 엄청 아파하던데. 그래도 그렇게 해야 모유가 많이 나온데."
 "많이 아픈데 굳이 받아야 해? 안 나오면 그냥 고만 먹이지 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아요."
 "나도 아직 모르겠네. 한번 가서 보지 뭐. 모유량이 많았으면 좋겠다."

 산후조리원 입소 3일째.
 나는 피부관리실 문 앞에서 멈칫거리고 있었다.
 출산 후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초유가 나온다고 했는데, 아직 모유량이 많이 늘지 않은 터였다. 괜히 우리 아기에게 초유를 못 먹일까 싶은 걱정도 되었고, 모자란 양을 분유로 채우고 있는 녀석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 시절, 엄마들에게 모유는 마치 신이 내린 완전식품 같은 느낌. 한 방울이라도 더 먹여야 내 아기가 건강해질 것 같은 믿음 같은 게 있었다.

 "아~~ 아아아아. 아파요."
 피부관리실 안에서 애써 참아넘기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많이 아프겠지. 많이 아프니까 다들 저렇게 소리를 지르겠지. 두어 번을 더 망설이다가 결국 나도 피부관리실로 들어섰다. 어렸을 적부터 아픈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던 나였지만, 나이기 이전에 엄마였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무서움에 부끄러움에 열 번이고 더 발길을 돌렸겠지만, 그 순간 나는 엄마였기에 문을 열고 방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아마 이 방안에 들어온 엄마들이 대부분 그런 생각을 했겠지.

 가슴팍을 훌렁 펼치고는 침대에 누웠다. 유선을 뚫어야 모유가 잘 나온다며 관리사님이 마사지를 시작하셨는데, 나도 모르게 화들짝 이불 킥을 하고 말았다.
 "아~~~~ 아아!! 아아아!!!"
 눈물이 찔끔 나고 온몸이 맥반석 오징어 마냥 베베 돌아가는 것이 가관이었다. 누구라도 그 순간의 나를 보았다면 불쌍하지만 웃긴 엄마라고 했을 것이 뻔하다. 조금만 참아보라는 관리사님의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방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얼얼해진 가슴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이제 모유가 좀 많이 나오려나.
우리 아가가 맛있게 먹으면 좋겠는데.


 참 신기하기도 하지. 철들고 나서 그렇게 크게 소리 질러 본 적이 없는데, 그만큼 아파서 눈물 찔끔 한 적이 없는데... 그 아픔을 고새 잊어버리고는 엄마 젖을 쪽쪽 빨아댈 아기 생각뿐이었다. 다음에 젖을 물릴 때는 이전보다는 좀 더 많이 나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내가 조리원에 있는 동안, 통곡의 골짜기에서는 수시로 비명소리가 났다. 엄마들은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입을 앙 다물어도 보고, 소리를 애써 삼켜보기도 했다. 하지만 감추어지지 않는 비명소리는 간간이 문지방을 넘어 복도로 흘러나오곤 했다. 물론 나 또한 그 후로도 몇 번 더 통곡의 골짜기를 찾았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소리를 지르며 이불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 또한 엄마가 되는 과정이었다고 해야 할까.
 남편 앞에서 가슴을 내어놓고 젖을 먹이고 있는 나를 보면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속상하기도 했다. 연애할 적에는 상상조차 못 할 일이지. 시도 때도 없이 가슴 언저리를 만지며 마사지를 하고 있는 내 모습 또한 아직 어색하고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꿀떡꿀떡 우유를 삼키는 아기를 보고 있으면 그 어색하고 낯설음이 한순간에 잊혀진다. 내가 다시 통곡의 골짜기를 찾게 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다들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는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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