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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Apr 21. 2018

베스트 육아 서포터는 택배 기사님

조리원 커뮤니티

  조리원 퇴소 날짜가 다가오자 슬슬 마음이 바빠졌다.

 아기가 먹을 것, 입을 것, 목욕용품에 이불까지... 챙길 것 없다며 내버려 뒀다가 늘 여행 당일에는 캐리어가 터져나가도록 짐을 싸대는 것처럼 아기용품도 그랬다. 챙기지 않으려고 하면 별것이 없는 것 같은데 막상 하나하나 짚어보니 끝도 한도 없었다.
 게다가 조리원 식당에서 다른 엄마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 아기는 조리원에서 나가 허허벌판에 내던져질 것만 같은 느낌. 꼼꼼하게 다 챙겨놓고 조리원에 들어온 다른 엄마들과는 달리 우리 집은 여리디여린 신생아가 지내기에는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저 아기만을 기다리며 분홍빛 꿈나라를 헤매고 있던 초보 엄마는 덜컥 마음이 급해졌다.

 "젖병은 조리원에서 주지 않아요? 산부인과에서도 2개 주던데."
 "2개로는 턱도 없어요. 여유분을 더 사셔야 할걸요."
 "물은 끓여서 식히면 된다고 하길래요."
 "요즘은 분유 포트 쓰시는 게 편할 거예요. 끓여서 식힌 물로 다시 온도 맞추기가 어려우실 거예요."
 "손수건 있다고 해도 물티슈는 미리 챙기시는 게 좋고요."
 "목욕용품이랑 로션은 사셨어요?"
 "..."

 조리원 퇴소를 얼마 남기지 않고, 나는 인터넷 쇼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돌아오면 으레 핸드폰을 끼고 침대에 앉아 인터넷 쇼핑을 했다. 모두 육아용품을 사기 위함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육아용품이 어찌 그리 많은지. 그리고 비슷한 상품을 파는 브랜드는 어쩜 그리 많은지. 함부로 아무거나 살 수 없으니 이것저것 비교해 보고 블로그 후기도 찾아보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렇게 주문한 상품들이 속속 우리 집으로 도착하고 있었다.

여보.
우리 집이 물류창고가 된 것만 같아.
택배 박스가 자꾸자꾸 쌓여.


 어느 날, 집에 들렀다 온 남편이 이야기했다. 내가 오면 뜯으려고 거실 한편에 택배 박스를 쌓아두기 시작했는데, 벌써 산을 이루었다고 했다. 내가 사대는 육아용품에 여기저기서 보내주는 선물들까지 더해져 택배 박스가 산을 이루고도 남았으리라.

 문득 인터넷 쇼핑과 택배가 없는 세상에서 육아를 한다는 것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몇 초 되지 않아 금세 도리질을 쳤다. 이 많은 상품과 이 많은 브랜드를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낮과 밤은 물론이거니와 주말도 없이 주문하고 받아쓰는 이 생활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는 예전처럼 아*방이나 압*바 매장에 가서 후루룩 출산준비물을 훑어왔을 것이다. 어떤 것은 없어서 못 쓰고, 또 어떤 것은 몰라서 못 썼을 것.

 그러고 보니 친정엄마, 시댁 어른들, 어느 누구 하나 빠짐없이 마음으로 응원해 주시고 필요한 육아용품 챙겨주시느라 고생하셨지만 사실 우리 아기가 세상에 나와 편하게 지내는데 있어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들은 택배 기사님들이 아닐까 싶다. 기사님들이 없었다면 저 많은 준비물을 언제 어떻게 챙겨놓을 수 있었을까. 무거운 것, 부피가 큰 것, 구하기 힘든 것. 어느 하나 가리지 않고 착착 현관 앞으로 가져다주시는 덕분에 막막한 육아용품 준비가 한결 수월했다.

 늦은 저녁, 띵동 하고 울려대는 택배도착 문자에 감사, 또 감사하게 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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