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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May 23. 2018

둘째 엄마들의 산후조리원

조리원 커뮤니티

 나른한 오후, 조리원 거실로 조용히 나가본다.

 거실을 빙 둘러싼 산모들의 방은 오늘따라 유독 조용하고, 신생아실의 아기들도 조용히 잠을 자는 시간. 간간히 애앵 하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곧 다시 조용해졌다. 흔한 조리원의 오후 풍경이다.

 조리원에 입소한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사실 양수가 터져 병원을 찾은 뒤로는 하루가 이틀인지, 이틀이 사흘인지 날짜 개념 없이 살게 되었다. 해가 뜨고 날이 저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제보다 조금 덜 아팠으면 하고 바라는 것. 힘들게 몸 상태를 추스르고 나니 이미 일주일이 훌쩍 지나있었다.


 조리원을 엉거주춤하고 걸어 다니다 유독 운동에 열심인 엄마 몇몇을 만나게 되었다.

 한 분은 아침저녁 할 것 없이 조리원 복도를 열심히 걸어 다녔다. 우리 조리원에서 산모들 대부분은 손님용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그녀는 심지어 본인 슬리퍼를 집에서 가져와 신고 있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나는 사제 슬리퍼를 야무지게 신고서 복도에서 매일같이 걷기 운동을 하는 그녀. 조리원 복도가 제법 긴 편이니 왕복 몇 번을 하면 그 또한 운동이 될 법도 했다. 처음에는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에 그쳤지만 쉬지 않는 그녀의 열정에 며칠 지나서는 모두들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그녀의 운동은 거북이처럼 지나가는 여느 산모들과 속도면에서부터 차별화가 되었다. 마치 아기를 안 낳은 사람인 양 그렇게 걸음걸이가 가벼울 수 없었다. 나는 두 팔을 번갈아 휘두르며 휘적휘적 걸어가는 모습에 한참을 넋을 잃고 쳐다보기 일쑤였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산모들은 그녀의 근성에 박수를, 무엇보다 대단한 회복 속도에 또 박수를 보냈다. 우리 중 여럿은 아직도 허리춤에 손을 얹고 어그적 거리고 있었으니까. 


 지금 내 옆에 앉아있는 분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저녁이 되면 남편과 나란히 전신 마사지 기계에 앉아 마사지를 받고 오후에는 골반교정기에 앉아 발마사지를 받았다. 끼니때마다 거의 맨 처음으로 식당에 들어서서 식사를 챙겼고, 산후 요가도 잊지 않았다. 슬쩍 어깨너머로 보니 유축 양은 왜 그리도 많은지. 가슴이 얼얼해질 정도로 힘들게 유축을 해서 가져 나가면 항상 그녀의 것은 내 두 세배는 되었다.


첫째 아이 낳으신 거죠?
운동 많이 하셔야 해요. 나가면 정말 실전이랍니다.


 골반교정기에 앉아있는 그녀 옆에 슬쩍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았다. 뾱뾱뾱 기계의 설정을 맞추고 멍하니 벽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저는 첫째 아이를 엄마한테 맡기고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조리원에 오지 말까 고민도 했었는데, 지금 아니면 언제 내 몸을 챙기겠나 싶어서요. 당장 나가면 첫째가 매달리고 안아달라고 난리 칠 텐데. 요즘도 매일 엄마 안 온다고 난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꾹 참고 여기서 잘 회복하고 나가려고요."

 "아. 둘째 엄마 시구나. 병원 문화센터 다닐 적에 보니까 요새 둘째 엄마들 잘 없던데 정말 대단하세요."

 "대단하긴요. 조리원에 계실 때 운동 많이 하세요. 운동이 아니어도 회복 많이 하셔서 나가야 해요. 나가면 정말 실전이랍니다. 처음에는 상상초월로 힘들어요. 저야 두 번째라 익숙하겠지만, 저도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아. 그래요? 근데 아직 몸이 아파서 계속 쉬고만 있어요."

 "당장 나가면 아기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계속 안아주는 것도 힘들고 하니까요. 저기 맨날 걷기 운동하는 엄마도 둘째라고 하던데요. 둘째 엄마들은 딱 보면 열심히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여요. 첫째한테 미안한 것도 있고 그러니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있고요."


 그녀들은 둘째 엄마였다.

 매일매일 엄마가 보고 싶다고 보채는 첫째를 떼어놓고 조리원에 들어와 있는 둘째 엄마들. 그녀들에게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할지 아직 나로서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아픈 몸을 일으켜 운동을 하고 퇴소 후 아기와 함께 할 시간을 준비하게 한 원동력이 거기에 있었던 것일까.

 하루도 빠지지 않는 운동 열정에 고개를 내저으며 나는 저렇게 못한다고 손사래를 쳤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녀들의 절절한 사연을 몰랐던 경솔한 행동이었던 것만 같아 괜히 미안해졌다.


 내가 둘째 엄마가 되면 어떻게 될까.

 아직 한 아이가 내 인생에 들어와 함께하는 것조차 상상이 안 되는 나에게 아이 둘과 함께하는 인생을 상상해 보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날이 현실로 다가오겠지?

 내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히죽히죽 웃고 있는 이 순간에도 둘째 엄마들은 조리원 복도를 걸으며 운동을 하고, 마사지 기계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 더 강해진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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