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련화 May 22. 2018

젖과 꿀이 흐르는 조리원 천국

조리원 커뮤니티

내가 누누이 말하는데
여긴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이 틀림없어.


 "그거야 알죠. 아는데..."

 "천국인지는 알겠는데, 나는 왜 맨날 나가고 싶은 거지?"

 "난 그래서 오늘도 요 앞에 나갔다 왔잖아요. 콧바람 쐬고 들어왔더니 속이 다 후련하더라고요."

 "그래? 난 많이 답답한지 모르겠던데. 여기서 나가면 나는 완전 독박 육아니까, 조리원에 있는 동안은 푹 쉬기만 할래."


 조리원에 있는 내내 같이 밥을 먹는 엄마들에게 나는 똑같은 말을 했다. 조리원은 천국임에 틀림없다. 조리원에서 나가는 동시에 조리원 생활이 그리워질 것이 분명하다. 이 곳에 있는 동안 천국에서의 생활을 마음껏 누려야만 한다. 당분간은 이런 여유를 찾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엄마들은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조리원 천국에 반기를 든다기보다 지금 조리원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답답하고 갑갑한 하루하루. 그녀들은 짧은 외출로 마음을 달랬다. 그녀들이 외출을 다녀오는 동안, 나는 조리원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있었지만 말이다.

 

 엄마들은 조리원 식당에 모여 앉기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고 투정했다. 하기야 화장실까지 달려있는 조그마한 방 안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그나마 햇빛이 드는 작은 창문이라도 있는 방이라면 다행이었다. 갓난아이 때문에 마음대로 창문을 열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거라도 있어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 조리원에는 창문이 없는 방도 더러 있었다. 달콤한 햇빛에 대한 작은 보상으로 방이 좀 더 넓거나 방안에 전신안마기가 놓여있기도 했지만, 결국 답답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 끼니 식탁에 올려지는 미역국의 존재도 그녀들의 답답함에 일조를 한 것임에 틀림없다.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입소하는 것이 언제부터 유행이 되었을까. 유행이라고 이야기하면 조금 가벼워 보이려나. 언제부터 산모들 사이에 조리원에 입소할지 고민하는 것이 당연한 옵션이 되었을까. 인터넷 블로그에는 조리원에 입소하지 않고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산모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귀하게 회자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조리원에서 만나는 산모들 중에는 조리원에 있는 2주가 답답하고 불편하다고 하는 산모가 적지 않았다.


 출산을 앞두고, 남편은 내게 진지하게 말을 건넸다.

 "여보. 아기 예정일이 추석 연휴 직전이잖아. 나는 여보가 조리원에 3주 있었으면 하는데..."


 조리원에서의 3주라니...

 하지만 남편의 말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서 서울에서 차를 몰아 지방에 있는 시댁에 간다는 것도 어려운 일. 그렇다고 친정 엄마가 산후조리를 도와줄 상황도 아니었다. 종손인 남편은 어찌 되었든 시댁에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연휴 동안 혼자서 갓난쟁이를 데리고 집에 와서 미역국을 끓여 먹느니 조리원에서 일주일 더 있는 것이 어떻겠냐는 남편의 배려였다. 나는 얼떨결에 3주 동안의 조리원 생활을 수락해 버렸다.


 남들은 2주도 힘들다고 하는 조리원 생활을 3주 동안 묵묵히 해낼 수 있다는 베짱이나 확신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조리원 생활이 끝나고 나면 곧바로 엄마라는 이름이 내게 주어진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조리원에서 나가면 이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저 작은 아기를 혼자 먹이고, 재우고, 씻겨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물론 남편이 옆에서 도와주겠지만,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난 낮시간 동안 오롯이 육아는 내 몫이었다. 원더우먼 엄마의 탄생. 조리원에서 나가는 날이 바로 내 속에 잠재되어 있겠지만 (그렇다고 믿고 싶은) 아직은 나 조차도 만나보지 못한 그 원더우먼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날이 될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조리원 생활에 나름 만족하고 있었다. 영원하길 바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사실은 아직 세상에 나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내 아기를 온전히 보듬을 자신이 없었다. 나 조차도 불안하고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조리원 생활이 답답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보다 걱정되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외출을 나가고, 여유를 부릴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미처 준비해 두지 못한 육아용품들이 하루에도 몇 개씩 생각났다. 혹여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걱정이 앞섰다. 물론 내가 조리원 안에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았다. 많이 쉬고 조금씩 운동을 하며 잘 먹고 잘 자는 것뿐이었다. 바닥을 치고 올라온 저질 체력을 조금이라도 회복시켜 나가야 한다는 얕은 의무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체력이 있어야 아기를 키운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하루에도 몇 번씩 되새기면서 말이다.


 엄마가 되어 만나게 될 바깥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식구가 하나 늘어난 우리 집은 어떤 모습일까. 매일 걷던 거리, 매일 가던 마트, 좀처럼 변하지 않았던 나의 일상은 이 작은 아기가 하나 생김으로써 어떻게 변하게 될까.

 그때에도 조리원 생활이 천국이라고 말하게 될까.

 아니면 작은 아기를 품에 안고서 내가 몰랐던 천국이 바로 여기에 있었노라고 말하게 될까.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에서의 하루가 또 이렇게 저물어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국민육아템의 노예가 된 초보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