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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n 13. 2018

낳아보고 다시 이야기하기로...

조리원 커뮤니티

 결혼 전에 아이 셋을 낳겠다고 큰 소리를 쳤던 나였다. 친정엄마를 포함한 모든 주변 사람들이 욕심부리지 말라며 나를 말렸다. 신랑조차도 첫째를 낳아보고 다시 이야기 하자며 말을 피했다.

 "낳아보니 생각이 달라지지? 요즘 시대에 무슨 셋째야. 다시 생각해봐."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에 축하 전화를 준 친구들은 하나같이 생각이 바뀌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낳아보니 그렇게 쉽게 생각할 것이 아니지 않더냐며 동의를 구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그들의 눈빛이 간절한 것을 알았지만 불쑥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나는 둘째를, 혹은 셋째를
낳을 생각이 아직도 있는 걸까


 조리원에서도 벌써 둘째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혹시 둘째 생각 있으세요?"

 "네. 생각은 있는데 일도 해야 하고 고민이에요."

 "전 남편이랑 이야기해서 하나만 낳기로 했어요.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만 낳기로 했지요."

 "우리 집은 아직 고민 중이에요. 동생 만들어 주면 좋긴 한데 요즘 둘 키우기가 어디 쉬운 가요."


 아직 첫째가 눈도 못 뜨고 있는 상황에서 엄마들은 벌써 둘째 낳을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 또한 엄청난 모정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아직 제 손가락 움직이는 것도 버거운 아이에게 동생을 만들어줄 걱정을 하고 있다니... 새삼 엄마의 대단한 혜안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둘째를 낳을 생각이 있다고 주변 엄마들에게 이야기는 하였으나 사실 진통이 시작되는 그 순간 이후 출산 계획에 대한 생각이 신기하리만큼 옅어져 버렸다. 둘째를 낳고, 셋째를 낳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 팔에 안겨 있는 이 작은 녀석을 살려내는 일이었다.


 둘째가 아들이었으면, 혹은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내게 기대어 있는 이 녀석이 오늘 하루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온통 머릿속에 들어차서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이 어린것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졸릴 때 푹 자고, 비록 제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팔다리라 할지라도 원할 때 마음껏 허우적거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자야 할 시간에 깨어있었고,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제법 익숙하게 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의 이런 모습들을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포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책임져야 할 어린 생명을 돌보는 일이라고 여겼다. 아직은 '엄마'라는 타이틀을 다는 게 어색했고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내 유전자에 아로새겨져 있는 모성애라고 부르는 것도 싫었다. 그저 내가 지금, 오늘 해야 할 일 정도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가 갔고, 또 하루가 왔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

 불룩 튀어나온 만삭의 배를 만지며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냐고 물어보던 기억은 어느새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일인데 한참 오래전 일인 것만 같았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아직 생기지도 않은 둘째에 대한 고민보다 속싸개에 돌돌 말려 누워있는 우리 아들과 우리 가족이 오늘 하루도 편안히 지내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하루를 살아가는 이 아이에게 내일이 있는 삶이 온다면, 그때쯤엔 나도 둘째 고민을 다시 하게 될까. 낳아보니 이렇더라며 진부한 무용담을 줄줄이 늘어놓을 때가 올까. 그런 날이 가까운 미래에 내게 올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내게 주어진 하루를 이 작은 녀석과 편안하게 살아내는 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싶다.

 지금 이 아이에게 하루하루는 우리의 일주일, 아니 한 달이라는 시간보다 더 귀한 것일 수 있으니 그 시간을 온전히 함께 해주고 싶다. 지금은 그렇게 이 아이 곁을 지키는 일에만 전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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