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 커뮤니티
하루하루 퇴소 날이 가까워오자 엄마들은 식사시간마다 목욕 걱정뿐이었다. 재우고 먹이는 것이야 지금 조리원에서도 하고 있지만, 통목욕은 그 누구도 경험이 없었다. 물론 재우고 먹이는 것조차도 각자의 방안에서 끙끙대며 할 뿐이라 능숙하다 할 수는 없었다. 그저 하는 것일 뿐 잘 하고 있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곧 있으면 유안이 엄마는 퇴소네요. 목욕 교육받았어요?"
"같이 퇴소하는 사람이 많아서 다른 방 엄마 할 때 같이 보고 왔어요. 그런데 우리 유안이는 아들인데, 딸을 보고 왔어. 어떡하지? 나 나가서 잘할 수 있겠죠?"
"아. 많이 다른가? 나가서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다른 거보다 목욕이 진짜 제일 걱정돼요. 안 미끄러지게 잘 잡을 수 있겠죠?"
누군가를 씻겨준 적이 언제였던가. 집에서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 이상 나 아닌 누군가를 씻겨준 기억은 아무리 더듬어 봐도 내 기억 속에 없었다. 어렴풋이 수건을 목에 감고 오만상을 찌푸리던 나와 세수를 시켜주던 엄마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었다. 엄마는 연신 내게 말했었지.
"흥 해봐, 흥! 콧물이 줄줄 나오는데 왜 흥을 안 해! 흥!"
저 어린것은 얼굴이라고 해봤자 내 손바닥보다도 작으니 흥~ 할 것도 없는데 어떻게 씻기지. 막막한 걱정은 끝이 없었다. 결국 이 걱정이라는 것도 정작 내가 조리원에서 퇴소를 하고 목욕통에 물을 받아 아이를 들춰안고 쪼그리고 앉아야 끝날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손에 잡히지도 않는 그 고민들은 살포시 마음속에 접어놓기로 했으나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녀석들이 솟아오를 때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게 되었다. 나 정말 잘할 수 있겠지.
드디어 퇴소 전날.
신생아실에서는 산모들을 위해 목욕 교육을 해주는데, 사실 이 것이 교육이라고 이야기할 것도 없는 것이긴 했다. 관리사님이 내 아이를 데리고 통 목욕을 시키는 현장을 지켜보는 것일 뿐. 손을 이렇게 잡으시고요, 팔은 이렇게 하시고요 하는 디테일한 1:1 교육이 아니기에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다가 교육이 끝나기 일쑤였다. 핸드폰 영상으로 목욕하는 장면을 촬영한다는 엄마들도 있었으나 그렇다고 처음부터 목욕을 잘 시킬리는 만무했다.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라는 어느 광고 카피처럼 통목욕을 동영상으로 배웠어요 라고 할 것이 뻔했다.
나는 우선 남편이 통목욕의 현장을 한 번이라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한 명이 보는 것보다는 두 명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였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기억하고 있으면 그나마 비슷하게라도 씻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마치 007 작전처럼 목욕 교육 시간을 미루고 미뤄 겨우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그래. 안 보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신생아실에서 만난 우리 아기는 새하얀 배냇저고리에 쌓여 있었다. 잠이 오는 건지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마치 큰 스님 한 분을 모신 느낌이었다. 목욕을 하는 내내 어찌나 얌전하신지 빙그레 미소까지 지어주며 목욕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고~ 귀여워라. 어머 예뻐라! 어머어머 웃는 것 좀 봐!"
연신 감탄을 연발하며 귀여운 내 새끼를 구경하느라 그만 목욕 교육이 끝나 버렸다. 조그만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물에 빠질까 관리사님 손을 꼭 잡고 있는 녀석이 너무 예뻐서 빙구 웃음을 짓고 있는 동안 이미 내 아이는 수건에 쌓여 욕조 밖으로 나와있었다.
머리는 새하얘지고 남편과 내 얼굴의 웃음기는 금세 사라졌다.
"오빠 기억나?"
"아니."
"벌써 끝난 건가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간단해요. 머리 먼저 씻기고 난 뒤에 몸을 씻기세요. 체온이 뺏기니까 최대한 빨리 끝내 시구요."
"아... 네..."
초보 엄마 아빠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녀석이 이 비상사태를 알아차렸는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 순간! 귀여운 오줌줄기가 쪼르르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머! 우리 왕자님이 목욕하고 기분이 좋았는지 쉬도 하시네~ 엄마 아빠랑 같이 있어서 좋은 가봐요."
"하아... 우리 아기... 쉬하네..."
"이제 애기 다 닦였으니까 방으로 데리고 가셔서 수유하시면 돼요. 교육받느라 고생하셨어요!"
아기를 받아 들고 방으로 돌아오는 길.
'벌써 조리원에서의 3주가 끝나고 내일이면 이 곳과도 안녕이구나.
아직 엄마 아빠는 우리 아기를 보고 예쁘다, 귀엽다는 소리밖에 할 줄 모르는데 어떡하지.'
몇 걸음 되지 않는 그 복도가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남편과 나는 조용히 아기를 내려다보며 방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