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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n 17. 2018

오늘부터 1일, 엄마의 실전 육아 시작!

조리원 커뮤니티

 드디어 조리원 퇴소 날 아침!

 마치 안 올 것만 같던 그 날 아침이 밝아오고야 말았다. 양수가 터진 것 같다며 진통도 오지 않는 배를 문지르며 뒤뚱뒤뚱 산부인과로 향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 사이 나와 남편은 엄마와 아빠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고, 예쁜 아가를 품에 안게 되었다. 눈도 못 뜨고 잠만 자던 녀석은 이제 제법 눈동자도 동글동글 굴리고, 얼굴을 찡그리고, 배가 고프면 칭얼댈 줄도 알만큼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내게 일어난 일이라니...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조리원에 들어올 때, 산부인과에서 출산선물로 준 가방과 작은 기저귀 가방 하나가 우리의 짐 전부였다. 인터넷을 뒤져 출산 준비물을 챙겼다고는 했지만, 작은 기저귀 가방 하나에 들어갈만한 양이었다. 정말 이 것만 있으면 아기를 키울 수 있는 거냐며 남편과 우스개를 했었다. 역시 뭔가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었나. 조리원에 있는 동안 남편은 끊임없이 집에서 무엇인가를 들어다 날랐다. 분명 꼼꼼하게 챙긴다고 챙겼는데 하루하루 필요한 것이 계속 늘어났다.


 작은 것은 온도계에 넣을 건전지 하나부터 먹을 것, 입을 것... 산모패드나 수유패드처럼 쓰고 버리는 것들도 많았음에도 조리원에서의 짐은 계속 늘어만 갔다. 퇴소를 며칠 앞두고 불안한 마음에 집으로 짐을 일부 옮겼으나 퇴소 날 아침에 보니 들고 갈 짐이 한가득 이었다. 이 또한 살림이라고 여기다 이렇게 짐을 만들었구나 싶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아기용품이며 수유용품을 다 챙겨주는 조리원에서도 이런데 이제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챙겨야 하는 집으로 가면 아기 짐이 얼마나 늘어날까 싶어 조금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총알이 든든한 병사는 무서울 게 없다고 하였나. 새벽에 온 힘을 다해 유축한 모유를 마지막으로 가방에 챙겨 넣고 나니 그래도 조금은 든든한 생각이 들었다. 속싸개에 겉싸개까지 돌돌 싸맨 아기를 안고서 조리원 문을 나서는 길.

 이제 진짜 현실 육아의 시작인가. 콩닥콩닥 거리는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몇 번 칭얼대다 금세 잠이 들었다.


 조리원에서 나가면 친정엄마가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냐고 하는 사람들. 혹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시어머니가 계시니 한시름 놓았다는 사람들. 아니면 보건소에서 보내주는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계시니 우선 육아비법을 전수받아 보겠다고 하는 사람들. 모두들 내게는 그저 부러운 소리였다.

 친정엄마는 몸이 편찮으셔서 아기를 돌봐주실 상황이 아니었고, 시어머니는 계시지 않으니 애초에 기댈 곳이 없었다. 더구나 남편 직장 문제로 일주일 후에 이사를 해야 할 상황이어서 산후도우미 이모님은커녕 사무실로 쓰던 원룸 오피스텔을 일주일간 임시거처로 써야 할 상황. 무엇보다 갓난쟁이에게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 유축기 빌려야 하거든. 잠깐 보건소 들렀다 가줄래?"

 남편 대신 조리원 퇴소를 도와주겠다고 한 남동생에게 근처에 있는 보건소에 들렀다 가주길 부탁했다. 차로 채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 잠시 들러서 유축기만 받아 가면 된다는 생각에 퇴소하면서 보건소에 들리기로 했던 것이다.


 "아기 좀 안고 있어. 금방 다녀올게."

 종종걸음으로 올라간 보건소 건물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무슨 일인지 유축기 대여를 담당하는 공무원도 자리를 비우고, 그나마 자리에 오신 뒤에도 앞선 일을 처리하느라 내 차례가 오기는 한참이 걸렸다. 겨우겨우 유축기를 빌려 후다닥 차에 타서 아기를 받아 들었는데...


 아기는 다행히 잠을 자고 있었지만, 온몸과 얼굴이 땀범벅이 되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니, 창문을 좀 열어주던지 겉싸개를 풀어주지. 아기가 더워서 땀을 이렇게나 흘리는데..."

 "아. 괜히 벗기면 추울까 봐. 금방 올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그래도 이렇게나 땀을... 하아... 얼른 가자."


 오는 길에 급한 마음에 겉싸개를 풀자 이미 배냇저고리는 땀에 흥건하게 다 젖어있고 속싸개에도 축축한 땀의 기운이 묻어 있었다. 아기의 몇 올 안 되는 머리카락도 땀에 젖어 군데군데 뭉쳐있었다. 순간 괜한 엄마 욕심이었나 싶은 생각에 눈물이 왈칵 났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의 탓도 아닌데... 그저 엄마라서 미안한 기분. 괜히 속상하고 야속하고 서운했다. 대상도 없이 막연히 야속하고 서운했다. 그저 아기를 안고 울먹울먹 거릴 뿐이었다.


 집에 와서 부랴부랴 아기를 시원하게 해 주고 옷을 갈아입혔더니 벌써 얼굴 곳곳에 땀띠 같은 발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젖병을 정리하고 유축한 것을 챙겨두고 아기가 편히 누울 수 있는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모든 게 서툴러서 허둥대느라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다.


 얼굴 곳곳이 울긋불긋한 채로 잠든 녀석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는가 봐. 오늘부터 우리는 1일이구나. 아가야, 앞으로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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