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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n 18. 2018

엄마라고 잠귀가 밝아야 하나요?

조리원 커뮤니티

 조리원에서 나온 첫날. 마치 누군가 내게 어려운 숙제를 던져준 것 같은 기분마저 들만큼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남편이 퇴근을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딱히 서러울 것도 없었는데, 이제 누군가 나와 함께 해준다는 사실이 반가웠나 보다. 그 존재만으로도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져 왔나 보다.


 오피스텔을 한번 스윽 둘러본 남편은 피식하고 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남편과 나, 그리고 우리 아기가 있는 공간은 사무실로 쓰던 곳이라 큰 짐 하나 없던 곳이었다. 불과 3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작디작은 아기 하나가 왔을 뿐인데 이렇게 짐이 늘어날 줄이야. 열탕 소독을 하겠다고 꺼내놓은 냄비는 조그만 싱크대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랗기만 하고, 소독을 끝낸 젖병들은 책상 위에 줄지어 서있었다. 의자 위에는 유축기가 호스를 칭칭 감고 쉬고 있고, 기저귀며 아기용품들은 아기침대와 함께 방 한편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중 제일은 우리 아기. 벌겋게 태열이 올라온 얼굴로 연신 팔을 휘젓고 있는 아기는 속싸개도 싫다며 남다른 운동신경으로 온갖 탈춤을 선보이고 있었다. 아기용품들에 이 자리, 저 자리를 내어주다 보니 이불 하나 깔만한 공간이 중간에 동그랗게 남았다. 이사 가기 전까지 일주일간의 소꿉놀이. 아기 짐들이 올망졸망해서 정말 어렸을 적 소꿉놀이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출산을 하기 전, 새벽 수유를 걱정하며 남편이랑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오빠. 새벽 수유가 힘들다잖아. 나 잘할 수 있을까?"

 "여보는 밤잠이 없으니까 1시, 3시에 일어나고, 나는 새벽잠이 없으니까 5시에 일어날까?"

 "어차피 모유수유하니까 나는 다 일어나야지 뭐."

 "에이~ 무슨 소리야. 육아는 장기전이야. 몸을 아껴야지. 5시에는 유축해 놓은 거 먹이면 되지 머."

 멋진 아빠가 될 수 있다며 육아 또한 같이 하자고 이야기해주는 남편이 그저 든든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나눌 적엔 새벽 수유의 압박이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우리에게 닥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아득한 먼 훗날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처음 해보는 아기 통 목욕에, 수유까지... 둘 다 진땀을 빼고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아기에게는 아직 낮과 밤의 구분이 없으니 그저 우리가 피곤해서 일찍 누웠다고 해야 할까.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새벽에 아기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불을 펴고 누웠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계속 깊은 잠에 못 들고 뒤척였던 나였지만, 긴장이 풀려서 인지 금세 잠에 빠져 들었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난 뒤에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그대로 곯아떨어진 것이 분명하다.


 새벽 3~4시쯤 되었을까. 눈을 떠 옆을 보니 오빠가 아기를 안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지. 수유는 어떻게 된 거지. 오빠가 일어나기로 했던 시간도 아닌데...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가운데 어둑어둑한 조명 사이로 눈이 퀭한 내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오빠. 아기가 울었어? 오빠가 먼저 일어난 거야?"

 "애기 우는 게 안 들렸어? 진짜? 하아... 얼마나 울었다고. 내가 일어나서 우유도 다 먹이고 토닥여 재우기까지 했는데 여보가 안 깨더라고. 진짜 하나도 못 들은 거야?"

 "아... 응. 하나도 안 들렸어. 미안해."

 "미안할 건 아닌데, 어떻게 하나도 안 들렸을까. 처음에는 일부러 안 일어나나 싶은 거야. 장난치는 것처럼. 애기가 엄청 크게 울었거든. 근데 계속 자길래 진짜 곤히 자나 싶어서 깨우지 않았어. 여보 푹 잤으면 됐지 머."

 "진짜? 그 정도였어? 미안해. 정말 하나도 못 들었어..."


 문득 친구 여동생 생각이 났다. 잠들고 나면 아기 울음소리를 하나도 못 들어서 친정식구가 모두 고생이라며 한탄을 했었다. 친정에 와서 마음 놓고 잠들고 나면 아기가 일어날 때마다 친정엄마, 친정아빠, 친오빠가 돌아가면서 일어나서 아기를 먹이고 재운다고 했다. 그동안 여동생은 편안한 숙면의 시간을...

 어쩜 엄마가 그럴 수 있냐며 신기해하면서도 내심 흉을 봤었는데, 그 사람이 나였다니. 너무 황당했지만, 진짜 개미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잠에 들었으니 더는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도 없는 일. 


 괜히 잠든 아기를 안고서 아빠한테 해야 할 사과를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기한테 했다.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긴장이 풀렸었나? 왜 그랬지? 아가 울음소리 듣고서 모른 척한 게 아니라 정말 엄마가 못 들어서 그랬어. 미안해. 다음부터는 아빠보다 엄마가 먼저 일어나서 안아줄게. 엄마가 우리 아가 많이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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