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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n 20. 2018

정녕 제 아들이 맞습니까?

조리원 커뮤니티

 나 좀 살려줘요.
정말 조리원이 천국이었어요.

 

 조리원에서 내내 같이 밥을 먹고 가까이 지내던 엄마가 퇴소 후 연락이 통 없었다. 새삼스레 연락을 하긴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며칠이 지나고 카톡이 온 것이다. 그녀의 첫마디에는 이미 촉촉하게 눈물이 배어있었다. 이모티콘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퇴소해서 집에는 잘 갔어요? 카톡 하는 거 처음 보는 거 같아요."

 "나 처음으로 알아버린 사실이 하나 있어요."

 "???"

 "아기가 너무 보채서 조리원에 전화를 해봤더니 우리 아들이 밤에 많이 보채는 아기 Top 2 였다고."

 "아... 그럼 그 밤마다 울던 아이가..."

 "방에 올 때마다 자니까 나는 몰랐죠. 밤에 못 자서 내 방에 왔을 때 잔다는 사실을."

 "어떡해요. 힘들어서."

 "원장님이 진짜 몰랐냐고... 하아... 밤엔 완전 다른 아기였다는."


 조리원에 있을 때, 그녀는 아기가 참 순하다고 했다. 밥도 잘 먹고 방에 와서는 내내 잠만 잔다고 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아기가 저래야 한다며 감탄을 연발했다. 녀석들도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느껴보려고 태어난 것이겠지만 아기들은 하루가 달리 지나치게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했다. 눈도 아직 못 뜬 녀석들이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왼쪽 오른쪽으로 몸을 비틀며 온몸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덥다고 칭얼댔고, 배고프다고 칭얼댔다. 졸릴 때는 하품을 하며 연신 눈을 찡긋거렸다. 몸짓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신기했지만, 아직 몸이 성치 않은 산모들에게 아기를 보는 일은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방에 와서 내내 잔다는 그녀의 아기는 우리에게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부러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유 한 방울이 아쉽던 시절, 그녀는 모유량도 많아 유축에 대한 걱정 또한 없었다. 초유가 좋다느니 모유가 좋다느니 말들이 많았지만 젖이 나와야 먹일 것이 아닌가. 유축기 깔때기에 묻은 한 방울 조차 아깝다고 탈탈 털어 넣어 먹이고는 나머지는 분유로 채워 넣는 나에 비해 그녀는 하루 종일 모유를 먹이고도 남아 여분을 저장팩에 넣어 냉동시켜두는 수준이었다.

 힘들여 유축을 해도 늘 젖병의 밑바닥 깔기 수준밖에 되지 않는 내게 그녀는 대단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부러움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소리 었나 싶었다.


 조리원에는 저녁 내내 우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모두들 산모 이름까지 외울 정도로 대단한 아기였는데 7~8시쯤부터 울기 시작하면 아기가 신생아실로 돌아가는 그 시간까지 끊임없이 울어댔다. 엄마랑 아빠는 그야말로 진이 빠지는 상황. 아기를 그저 울게 내버려 두는 것도 아니었다. 동요를 틀어주고 어르고 달래고 안아주고 토닥여도 계속 우는 아기는 조리원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아침이면 조리원 원장님이 쾡한 얼굴로 나와 정말 대단한 아기라며 고개를 가로젓는 녀석이었다. 우리는 어쩌냐며 말로는 걱정했으나 사실 남일이라도 되는 양 흘려들었다. 


 그런데 그 아기와 거의 동급으로 울어대는 아기가 그녀의 아들이었다니.

 연락이 없었던 며칠 동안 그녀는 얼마나 놀라고 힘들었을까. 밤새 우는 아이를 달래며 얼마나 지쳤을까. 그 품에 안겨있는 아기 또한 얼마나 힘들었을까. 괜히 마음이 짠해왔다. 조리원 퇴소와 함께 연락도 한 통 없는 것으로 보아 스치는 인연이라 쉽게 여겼나 보다고 생각한 내가 괜히 부끄러웠다. 그 시간 동안 그녀가 홀로, 아니 밤새 울어대는 아들과 견뎌야 했을 시간을 떠올리니 너무 미안해졌다.


 그 뒤로도 몇 번 연락을 더했으나 결국 그녀와는 연락이 끊어졌다. 연락이 닿는 동안은 내내 아기가 잠을 못 자고 힘들어한다고 했다. 육아 스트레스에 모유량도 급격히 줄어버린 그녀는 결국 혼합수유를 선택했다. 연락이 닿을 때마다 힘들어서 어쩌냐고, 아기도 곧 적응하고 점점 나아질 거라고 이야기하던 내 말도 몇 번 똑같이 반복되자 허공에 흩어졌다. 그녀와 아기, 오롯이 둘이서 견뎌내야 할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그녀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녀와 그녀의 아들이 좀 더 편한 밤을 보내고 있기를 바라본다. 같은 시간, 말 못 하는 아기와 밤을 지새우고 있는 또 다른 엄마로서의 작은 바람이다. 오늘도 우리의 밤이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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