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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n 24. 2018

독박 육아,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조리원 커뮤니티

 연휴가 끝나가는 마지막 날을, 주말이 끝나가는 일요일 저녁을 직장인들이 제일 싫어한다고 했었나. 엄마들도 똑같이 끝나가는 연휴와 밝아오는 월요일이 너무도 싫다. 아빠들이 없는 하루의 시작. 독박 육아가 시작된다는 시그널에 초보 엄마들은 긴장하고 있었다.


 "주말이 끝나가요. ㅠㅠ 내일부터 남편 없이 낮에 홀로 아기를 봐야 하는데... 우리 잘할 수 있을까요?"

 "저는 남편이 주말 내내 회사 출근하는 바람에 어제부터 홀로 아기 봐요. 아침밥은 그냥 프리패스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에휴. 밥을 잘 먹어야 그 힘으로 애도 보는데."


 아기도 낳기 전, 사람들은 내게 독박 육아가 시작되면 헬게이트가 열릴 것이라고 겁을 주었다. 온몸 어디 하나 안 아픈 구석이 없는 데다 애는 보채고 집안일은 산더미에 잠도 못 자고 씻지도 못하니 거지꼴이 따로 없다고 했다. 화장실이라도 제때 가면 다행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육아는 그렇게 힘든 것일까. 아직 낳아보고 길러보지 않아 대꾸할 수 없었던 나는 막연한 궁금증만을 가지고 내가 직접 육아라는 것을 경험해 볼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 힘든 육아라는 것,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사실 체력적인 부분만 두고 말하자면 나만큼 부족한 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리 가족들은 물론 남편까지 인정해준 최약체 저질 체력! 언젠가부터 몸이 찌뿌드드하고 어깨가 결리면 비가 내리는 것으로 보아 이미 나의 몸 상태는 30대를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기껏해야 집에서 스트레칭 몇 번 쭉쭉하고는 몸이 개운하다며 만족의 미소를 지었던 나였다.


 큰 마음을 먹고 헬스장에 가서 PT를 끊었다. 이렇게 운동을 안 하고 살다가는 몸이 부서져 내릴 거라고 겁을 주는 남편 성화에 몇 번을 미루다 동네 헬스장을 찾은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운동은 나와 맞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운동을 시작해서 온몸 혈액순환이 좋아져 기쁜 소식이 온 것일까. 트레이너에게서 악마의 얼굴을 발견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덜컥 임신이 되었다. 트레이너는 절대 이 몸상태로는 출산은 어렵다며 고개를 숙였고, 나는 방긋 웃으며 스치듯 안녕을 고했다.

 그나마 임신하고 나서 5개월쯤부터 임산부 요가를 매일 1시간씩 한 것이 내 생애 가장 열심히 운동했던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몸상태로 육아를 시작하게 되면 헬게이트가 열리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헬로 빠져버리는 것 아닐까 싶은 불안감이 밀려왔지만, 이미 돌이킬 수는 없었다.


 사실 육아와 관련된 그런 말들에 반감이 있다기보다는 괜히 속상한 기분이 들었다. 열 달 동안 기다리고 바라왔던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 초음파 사진 한 장에도 우리는 얼마나 행복해했던가. 그런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 그것도 내 옆에 누워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데, 거기다 독박을 썼다느니 헬게이트가 열렸다느니 하는 것이 괜히 아기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엄마들이라고 그런 말을 쓰고 싶겠는가. 조용히 새근새근 잠만 자면 좋으련만 울고 보채고 떼쓰는 통에 엄마 멘탈이 너덜너덜 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들 한다. 나도 곧 그렇게 되겠지?!


 벌써부터 바스락 거리는 멘탈을 부여잡고 다시 한번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사랑하는 사람과 꾸린 내 가정에 우리 세 식구가 함께하는 시간. 이 감사한 시간을 지옥 불구덩이라고 이야기 하지는 말자. 지레 겁먹고 손사래부터 치지는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 견뎌보고 그 뒤에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까.


 친정엄마는 아프시고, 시댁은 지방. 남편은 이제 막 새로운 일을 시작해 휴일도 없는 하루하루의 연속. 산후조리원 퇴소 일주일 뒤에 이사를 하는 바람에 동네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의 육아 시작. 그렇게 이사온 새 집에 오롯이 갇혀 독박 육아의 표본이 되어버린 나.

 그래도 잘 해낼 수 있겠지?! 콩닥거리는 가슴에 조용히 손을 얹고 잘할 수 있다는 주문을 수도 없이 외워본다.

 잘 할 수 있을거야. 해낼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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