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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n 25. 2018

30년 전의 엄마와 오늘의 엄마

조리원 커뮤니티

나는 조리원에서 나가서 친정으로 가는데
우리 엄마가 아기 볼 줄을 몰라요.


 조리원 커뮤니티 카톡방에 눈물 섞인 메시지 하나가 올라왔다. 다들 피식하고 웃음을 지었다.

 "ㅋㅋㅋㅋ 까먹으셨지 ㅋㅋㅋㅋ"

 "우리 키울 때랑 또 다르니까요."


 지금까지 살면서 '엄마'라는 존재가 이렇게 든든했던 적이 있었나. 항상 내게 한없이 내어주던 엄마였지만 나이를 먹고 철이 들어가면서 엄마한테 기대기보다는 엄마가 내게 의지했던 날이 점점 늘어났던 것 같다. 아니 엄마가 나를 든든한 딸이라 여겨주기를 내가 먼저 바라왔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엄마 앞에서 만은 당차고 걱정할 것 없는 딸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은 왜 그런지 결혼 이후에 더해졌다.


 우리 엄마는 내게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딸내미'라는 말을 잘 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집안일 하나 못하고, 요리실력 변변치 않은 나였지만 우리 엄마는 나를 시집보내는 어느 순간에도 내게 살림은 어찌할 거냐는 걱정 어린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부담되는 말을 했다면 모를까.

 "우리 딸은 뭐든 잘 하니까. 알아서 잘할 수 있을 거야. 엄마도 시집올 때 아무것도 못했는데, 금세 뚝딱뚝딱하게 되더라고. 엄마는 걱정 안 해."

 나에 대한 엄마의 믿음은 철벽 같았고, 어떤 방해공작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예전부터 육아에 있어 친정엄마에 기대하는 바가 적었다. 집안 살림 하나 못하지만, 아기를 낳으면 육아도 어찌어찌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 말처럼 그냥 시간이 해결해 주는 데로 곧 익숙해지고 나름의 기술을 터득하게 되겠지. 막연한 안도감이 있었다. 더욱이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작은 신념이 있었다. 유명한 논문에서 그리 말해서도 아니었고, 어느 전문가가 조언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내 아이는 내가 키우고 싶었다. 우리 엄마가 나를 그렇게 키워주었던 것처럼.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지. 막상 아기를 낳고 나니 이따금씩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아기를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까지는 아니었지만, 홀로 집에서 아기를 볼 생각을 하니 괜히 겁이 났다. 아기를 키우는 것에 대해 잘 몰랐고, 조심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에 누군가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에 엄마가 떠올랐다. 나와 남동생을 훌륭하게 키워내신 우리 엄마. 우리 엄마라면 육아와 관련된 것은 척척박사처럼 뭐든 다 잘 알고 계시지 않을까. 두 명이나 키워내신 베테랑인데 뭔들 모르실까. 조리원에서는 괜히 작은 것 하나 물어보기도 눈치 보이고 조심스러웠는데, 엄마한테는 마음 편하게 물어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것도 물어봐야지, 저것도 물어봐야지... 머리 속에는 이미 질문 상자가 가득 차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사를 가기 전 일주일 동안 지내고 있는 오피스텔로 엄마가 찾아오셨다. 엄마는 늘 그랬던 것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정리할 것이 없나 주변을 쓱 둘러보셨다.

 "어머. 이게 뭐야? 요즘은 이렇게 모유를 짜서 먹이니? 우리 때는 저런 것 없었는데, 게다가 나는 젖이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아서 저런 게 필요 없었지."

 "아. 그래? 유축기라고 미리 모유 짜뒀다가 먹이면 돼."

 "어머. 이게 뭐야? 요즘에는 젖병 말리는 것도 이렇게 나와? 신기하네. 어머. 애기 침대도 있네."

 "응. 조리원에 같이 있었던 엄마들이 많이 알려줘서 이것저것 좀 샀어. 필요하다고 해서."

 "어머. 이건 뭐야? 어머. 신기하네. 어머."


 팔을 걷어붙이고 육아용품을 정리하겠다고 했던 엄마는 새로운 물건들 구경에 푹 빠져버리셨다. 이 것은 뭐에 쓰는 것이냐, 이건 왜 필요하다냐 이런저런 질문공세에 오히려 대답하는 쪽은 엄마가 아니라 내가 되어버렸다. 내가 했던 몇몇 질문들에는 엄마의 풀 죽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글쎄. 너무 오래전이라 잘 기억이 안 나네. 그랬었나?!"


 엄마가 제일 먼저 찾은 것은 아기의 보송보송한 엉덩이를 책임져 준다는 '딱분'이었다.

 "엄마, 요즘 그거 아무도 안 쓰거든. 기저귀 발진 생기면 연고나 전용 로션 있데, 그거 발라주면 돼요."

 "얘가 얘가 모르는 소리 하네. 딱분 그거 엉덩이에다가 팡팡 치면 바로 보송보송 해지고 얼마나 좋은데."

 "그거 안 좋은 성분이 나와서 이제 판매도 안 한데."

 "무슨 소리야. 너랑 네 동생이랑 다 그걸로 키웠는데, 안 좋기는..."

 하기야 나도 기억나는 그 하얀 분가루는 내가 제법 클 때까지도 우리 집에 있었다. 구멍이 송송 뚫린 윗 뚜껑을 살짝 돌리고 통을 거꾸로 뒤집으면 눈처럼 하얀 분가루가 솔솔 흘러나왔었지. 우리 엄마의 애정 육아 템은 30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산모들이 외면하고 있었으나, 적어도 엄마의 기억과 내 추억 속에서는 가히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너 키울 때는 요렇게 눕혀놓고 부엌에 가서 시부모님 드릴 저녁 준비 다하고 집안일 다하고 들어오고 그랬었지. 한번 찡찡대지 않고 잘 누워있었다니까."

 "설마. 너무 멀어서 아기 울음소리가 안 들렸던 거 아닐까."

 "아니야~ 진짜 순둥이도 그런 순둥이가 없었어. 가만히 누워서 눈만 깜빡깜빡하는 게 얼마나 이뻤다고. 그런데 얘는 신생아가 왜 이렇게 바당 거리면서 움직이는 거니. 신기하네."


 아쉽게도 육아 박사 엄마를 기대했던 내게 엄마의 방문은 생각만큼 힘이 되진 못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 우리 남매가 옹알이를 할 적 기억이 수도 없이 소환되어져 왔다. 훈훈한 이야기 꽃이 피었다.

 "너랑 네 동생은 그러지 않았는데, 얘는 참 이상하네. 이거 봐 이 거봐. 너네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때는 말이지~"


 30년 전의 엄마와 오늘의 엄마.

 이 작은 아기가 단번에 3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엄마와 나의 추억들을 소환해 주고 있다. 비록 든든한 육아 지원군을 얻지는 못했으나 마르지 않는 재미난 이야기보따리를 선물 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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