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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n 26. 2018

2개월 인생의 첫 고비가 찾아오다.

조리원 커뮤니티

 조리원에 있을 적엔 아기가 방에 와서 똥을 눌까 봐 조마조마하더니 이젠 매일 아침 똥 소식을 기다리는 엄마가 되었다. 똥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쯤은 이제 식은 죽 먹기. 내가 해야 할 많은 일들 중에 똥기저귀 갈아주는 일은 낮은 레벨에 속했다. 오히려 목욕을 시키는 일이나 트림을 시키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웠다.


 어려서부터 변비로 고생한 나는 임신 중에도 변비에 신경을 많이 썼다. 대여섯 살쯤이었나.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한 장면은 내가 딱딱해진 배를 부여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고, 엄마가 신문지를 펴놓고 좀 더 힘을 줘보라며 응원을 하는 모습. 신문지 위에는 염소똥 같은 콩알이 몇 개 떨어져 있었다. 나에게 변비는 평생 나와 함께 한 오래된 친구 같은 존재였지만 적어도 임신 중에는 변비 때문에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채소도 매 끼니 챙겨 먹고, 운동도 하며 변비에 걸리지 않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그 덕분인지 다행히 나는 열 달 내내 화장실 문제로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내 뱃속에서 나온 이 작은 녀석이었는데 집에 온 이후, 도무지 소식이 없었다. 배는 점점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는데 소식이 없으니 엄마 마음은 정말이지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저 작은 배에 담을 곳이 어디 있다고 며칠째 똥을 누지 않는 건지. 나는 매일 아침 빵빵해진 배를 어루만져 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우리 아가, 변비인가 봐요."

 "엄청 용쓰지 않아요? 우리 유안이는 엄청 용써요."

 "배 마사지 좀 해주세요. 우리 현이는 1일 1 똥 중이랍니다!"

 "계속 못 누다가 며칠 전에 기저귀가 터질 듯이 한번 누더니 어제오늘 또 소식이 없네요. 걱정돼요."

 "결국 유안이는 관장 한 번 했어요. 3일째 못 누고 새벽에 너무 용쓰면서 힘들어하길래..."

 "어머. 힘들어했겠어요."

 2개월 인생의 첫 고비였죠.

 변비의 고통을 익히 알고 있는 엄마였기에 아기의 변비에 유독 예민한 것일 수도 있다. 말 못 하는 아기라 하더라도 아랫배가 묵직한 느낌이 들겠거니 싶어 마음 한편이 짠해졌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배 마사지며 하늘 자전거를 틈틈이 해주었으나 여전히 감감무소식. 속절없는 시간만 흘러갔다.


 3일째 되는 날.

 어김없이 하늘 자전거와 배 마사지로 시작하는 하루. 푹 잤는지 방실거리며 웃는 아기를 보며 나는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아가야. 오늘이 3일째야. 오늘도 우리 아가가 똥을 안 누면 정말 배가 풍선만 해 질지도 몰라. 아가도 힘들지?"

 아는지 모르는지 시윤이는 연신 미소를 내게 날렸다.

 "유안이라고 알지? 아마 신생아실에서 지나면서 봤을 수도 있어. 그 친구는 글쎄... 계속 똥 안 누고 그래 가지고 병원 가서 관장이라는 걸 했데. 엄마가 유안이 엄마한테 들었어. 우리 시윤이도 계속 똥 안 누면 병원 갈 거야. 아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엄마랑 같이 열심히 힘줘보자!"


 내 이야기를 알아들은 것일까. 아니면 진지한 목소리에 아기도 자연스레 집중을 하게 된 것일까. 눈썹까지 찡그려가며 내 이야기를 유심히 듣던 아기가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배가 꿀렁거리고 아기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3일 동안 묵혀 두었던 소식은 기저귀를 가득 채웠고, 어김없이 통목욕으로 이어졌지만 어쨌든 미션 클리어. 말을 떨어지기가 무섭게 녀석이 힘을 주었던 터라 신기하기까지 했다. 타이밍이 맞았던 것일까. 정말 병원 가기가 싫었던 것일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왠지 녀석과 말이 통하는 것 같아 뿌듯한 하루의 시작.

 예전에는 나 아닌 누군가의 똥 소식을 이렇게 손꼽아 기다리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엄마가 되어갈 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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