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련화 Jun 27. 2018

초보 엄마들 카톡은 이미 아가들 세상

조리원 커뮤니티

 조리원에서 가까이 지내던 엄마들 네 명이 있었다. 가장 퇴소가 빠른 유안이 엄마가 조리원을 나서던 날 아침, 우리는 부끄럽게 인사를 나누며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매일 아침 인사를 나누고, 매 끼니 같이 밥을 먹던 사이였지만 아직 서로의 이름 하나 교환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분홍 옷을 입고 같이 밥을 먹는 사이. 나와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고 비슷한 시기에 엄마가 되었다는 것 외에 내가 알고 있는 그녀들의 정보는 없었다.


 대충 얼굴로 익히고 눈치껏 말을 섞어왔던 사이, 우리는 만난 지 일주일이 넘어 겨우 서로의 이름을 알았다. 그간 각자의 방 앞에 붙어있는 명찰로, 대화에 등장하는 아기들 이름으로 넘겨짚어 알던 사이에서 비로소 정식으로 통성명을 한 사이가 된 것이다.


 서로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나서도 한동안 다들 말이 없었다. 누가 먼저 단체 창을 열 것인가를 두고 다들 눈치를 보고 있는 듯했다. 말을 걸어도 될지 망설이게 되는 사이. 인생 처음 엄마가 되고 난 뒤, 처음 알게 된 귀한 인연이었지만 우리는 아직 조심스러웠다.

 다행일까. 제일 퇴소가 빨랐던 유안이 엄마가 용기를 냈다. 단체 창을 열고 인사를 건넸다.


 "짜잔~~ 집에 왔는데 집에 온 것만 천국이지 헬입니다요. ㅋㅋㅋ"

 "잘 갔어요? 정신 하나도 없겠다."

 "다들 프로필이 아기 사진이네요. 이런 날이 올 줄이야. ㅠㅠ"

 "아기들이 다 예뻐요!"

 "그러게요. 우리 다들 엄마들 맞네. ㅋㅋㅋ"


 정말이지 하나같이 프로필에는 아기들 사진이 올라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이 눈도 못 뜬 채 사진 속에서 오물거리고 있었다. 엄마들이 한 마디씩 말을 하자 마치 아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아들들에게 친구들이 생겼다.


 한줄한줄 올라가는 대화창을 보면서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내게도 정말 이런 날이 오는구나. 프로필에 흔한 풍경사진 하나 걸어놓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웨딩사진을 걸어놓더니 이젠 아기 사진이라니.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고 부모가 되어가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별 것 아닌 프로필 사진 한 장에 눈물이 글썽, 마음이 두근두근거렸다.


 하긴 엄마들 사이의 대화창은 그나마 덜하지. 남편과의 대화창은 더 가관이다. 똑같이 생긴 아기가 주거니 받거니 말을 나눈다. 혼잣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할아버지 할머니 대화창이라고 다를까. 얼마 전 엄마 친구들 대화창을 보니 꼬물꼬물 한 아기들끼리 수다를 나누고 있었다. 언제 한번 술 한잔 해야지, 언제 사우나 갈래... 분명 어른들의 대화였는데 동그란 창으로 보이는 프로필 사진에는 젖살이 포동포동한 아이들이 방긋하고 웃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잊혀 가는 것은 아니었다. 세월의 무게를 가진 시간이 잊혀 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게 보물 같은 존재가 새로 생겼다는 의미였다. 나를 나타내는 한 장의 사진을 고르라고 했을 때, 주저 없이 골라들 수 있는 귀한 존재가 생겼다는 의미. 내 얼굴을 내밀지 않아도 충분해지는 그런 때가 온 것이다.


 나 아닌 누군가의 사진이 나를 표현해 준다는 것은 생각해 볼수록 그저 감사한 일이고 가슴 뛰는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개월 인생의 첫 고비가 찾아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