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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n 28. 2018

아들 분유 퍼먹는 엄마

조리원 커뮤니티

 정확히 내가 몇 살 때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 집에 분유가 있었다. 아마 세 살 터울나는 남동생이 먹던 분유였겠지. 그런데 남동생이 젖병을 물고있는 모습은 기억나지 않고 아빠랑 내가 하얀 숟가락에 한가득 분유를 퍼서 한 숟가락씩 나눠먹는 장면만 기억이 난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달하다고 박수를 쳤었다. 한 숟가락만 더 달라고 조르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 분유는 남동생이 먹던 것이 아니라 아빠와 나의 간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조리원에서 나와 처음으로 분유통을 개봉하던 순간. 단단히 포장된 속뚜껑을 여니 내 기억 속의 그 노르스름한 가루가 한 가득 담겨져 있었다. 달달한 분유냄새. 나는 두 숟가락을 퍼서 작은 젖병에 담아 물을 맞추었다. 손바닥으로 젖병을 굴려가며 가루가 뭉치지 않게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나를 위한 작은 보상, 분유 한 숟가락을 입에 털어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 기억이 온전한 것일까. 30년 전에 아빠와 나눠먹었던 분유맛과는 조금 다른 요즘의 분유. 이런저런 좋은 것들이 많이 들어가느라 맛 또한 바뀌었을 것이다. 아기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한 어른들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일 것이다. 하지만 오래전 달달하기만 했던 그 때의 분유가 그리운 것은 왜일까. 누가 봐도 아기들의 전유물인 것만 같았던 그 달콤한 맛. 한 숟가락의 분유를 혓바닥으로 녹여먹으며 나는 옛 추억에 잠겼다.


 신생아의 수유텀은 대략 2시간, 물론 우리집 상전이 원하시면 1시간 간격이라 할지라도 모유가 되었든, 분유가 되었든 바로 대령해야 하는 것이 옳았다. 직수를 하거나 유축해 놓은 모유를 줄때에는 상관없었지만 분유를 줄 때엔 어김없이 엄마도 달콤한 분유의 맛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서투른 것이 많아 허둥거리기가 일쑤인데도 용케 분유 한 숟가락을 챙기는 것은 매번 잊지 않았다. 초보 엄마의 고된 육아에 대한 사소한 보상같은 것이었다.


 "우리 시윤이는 벌써 분유 한 통 다 먹었어요!"

 "우리도 처음 개봉한 건 3주 다 되어서 조금 남았는데 버리고, 오늘 새로 개봉!"

 "난 첫 통 개봉한지 열흘만인데 내가 자꾸 퍼먹어서 다 먹었어. 맛나든데... 이런 엄마라서 미안해"

 "헉!! 그걸 왜 퍼먹.... ㅋㅋㅋ"

 "분유 남으면 연유랑 섞어서 동글동글하게 만들면 사탕같이 맛나다던데요."

 "남질 않아. 퍼먹기 바빠."

 "아이고~ 어머니! 내 밥을... ㅋㅋㅋ"


 빈 분유통이 하나하나 늘어갈수록 작디 작은 아기 몸에도 살집이 오른다. 팔다리는 꼬챙이 같고 몸통은 얇은 가죽만 하나 둘러놓은 것 같더니 하루하루 포동포동하니 살이 오르는 모습에 미소가 빙그레 지어진다. 우리 집안에 없던 길쭉이 롱다리가 태어났다며 환호하던 나와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통통해지는 녀석을 보며 눈을 찡긋했다.


 "그럼 그렇지. 피가 어디가는가. 우리 집안 다리길이가 맞구만. 살이 좀 오르니까 알겠네."

 "그러게. 살이 붙어서 하루가 다르게 예뻐지긴 하는데, 하루가 다르게 다리가 짧아지고 있구만."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분유가 줄어들수록 아기는 쑥쑥 자랐다.

 마법의 가루는 그렇게 매일매일 아기를 키워냈다. 그리고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더해질수록 엄마도 같이 키워내고 있었다. 믿겨지지 않는 마법의 순간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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