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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l 01. 2018

그저 엄마이기만 했던 시간

조리원 커뮤니티

 산후조리원에서 나온지도 어느덧 한 달쯤. 불과 며칠 전에 둥그런 배를 부여잡고 산부인과에 들어간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계절이 바뀌어 가고 있다.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었구나. 지금까지 정신없이 시간이 흐른다며 투정했던 모든 기억들은 자연스레 뒷방으로 밀려났다. 태어나서 지난 두어 달만큼 바쁘고 새로웠던 시간이 또 있었던가. 이미 지나온 시간이지만 어찌 지나왔는지,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그저 어리둥절 하기만 했다.


 그 정신없는 시간 한 중간에 바로 '조리원 커뮤니티' 엄마들이 있었다. 그 엄마들이 없었다면 많이 힘들고,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 조리원에서 나온 뒤에 아직 한 번도 만나지는 못했지만 카톡으로 주고받는 인사만으로도 든든해지는 나의 육아 지원군들이다. 그녀들과의 인사로 하루를 열고, 그녀들과의 짧은 수다로 하루가 닫힌다.

 지금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을 꼽는다면 제일 먼저 손에 꼽힐 사람들. (물론 남편은 0순위로 해둔다.) 만난 시간이 짧다고, 속속들이 그 사람을 알고 있지 않다고 해서 마음조차 기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 한편을 내어줄 수 있고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은 시간을 떠나, 공간을 떠나 그저 감사한 인연이다.


아니, 근데 나 너무 궁금해요.
우리들 나이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유안이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나이들이 어떻게 되는지... 단체 카톡방 생긴지는 한참 되었는데..."

 "그러게. 내가 조리원에서 나가기 전에 민증 까자고 했었는데.. ㅋㅋ"

 "왠지 제가 제일 어릴 것 같은 느낌?!"

 "나는 서른 짤."

 "역시 서른 짤(?)이라 귀엽고만요~ 난 서른둘."

 "전 91년생이요."

 "시윤이 엄마는 어디 갔어요? 시윤이 깼나?"

 "난 서른넷이야. 내가 너무 늦게 낳았어? 그래서 체력이 후달리나 봐. ㅋㅋㅋㅋㅋㅋㅋ"

 "우와! 왕언니다~~ 이제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름이 무언지, 나이는 어느 정도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제일 먼저 묻게 된다. 내가 먼저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고, 상대방이 물어오는 경우도 있다. 부담스레 캐묻지만 않는다면 기본적인 통성명에 포함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엄마들이라고 부르는 그녀들은 조금 달랐다. 내가 요즘 들어 제일 많이 기대고 의지하는 그녀들인데, 이름과 나이를 알기까지 한 달도 넘게 걸리다니. 물론 이름과 나이 말고도 궁금한 것들은 아직도 너무 많다. 궁금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까. 뭔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리라는 게 있었다. 아직 가깝지 않아서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애매한 그런 거리감이었다.

 세세한 호구조사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녀들에 대해서 궁금했고 더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나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그녀들은 더 이상 가까워지길 원하지 않을 수도 있는가 걱정도 되었다. 회사생활 10년 동안 숱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소질이 있다며 너스레를 떨던 나였지만 자꾸 주저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말들을 메시지 창에 몇 번이나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차마 전송하지 못했다. 혹시 그녀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곧 우리의 단체 창은 아들들 이야기로 가득 찼고, 오늘의 육아는 힘들었는지 예방접종은 언제쯤 가면 좋을지 고민하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렇게 우리에 대한 이야기는 빠진 채 오늘도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다 하루가 저물었다.


 우리가 그렇게 보내온 시간이 한 달.

 오늘에서야 겨우 수줍게 서로의 나이를 묻는 우리들.


 엄마가 되어 처음 만난 인연들이었다.

 여자와 엄마가 같은 게 아니냐고 반문을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엄마가 된 내가 처음으로 사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쉽게도 한 달 동안 엄마이기만 했던 것이 아닐까.

 오늘도 나이만 묻고 그렇게 끝나버린 우리의 대화를 다시 읽어본다. 엄마가 된 뒤, 처음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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