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련화 Jul 01. 2018

인생 갑질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조리원 커뮤니티

 아이가 태어나고 우리 집에 상하관계라는 것이 생겼다. 소위 말하는 갑을관계가 생긴 것이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며 우리 부부는 모든 것을 동등한 입장에서 생각하고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가급적 함께 고민했고,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왜 지금 불편한지, 남편은 왜 그때 기분이 언짢았는지 사소한 것 하나도 함께 나누려고 노력했다. 모든 커플들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이렇게 저렇게 부딪히는 부분이 많았다. 30년 넘게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았던 남녀가 만나자마다 찰떡처럼 서로를 이해하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연애기간까지 합하여 이제 남편을 만나고 마음을 나눈 지 햇수로 5년. 이제는 서로 눈빛만 보아도 어떤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어떤 기분인지 알아차리는 수준이 되었다. 예전처럼 남편은 하늘이라느니, 아내는 땅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는 우리를 두고 하는 소리는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란하고 오손도손 한 세 가족. 남편과 나는 아이를 낳기 전, 아름답고 행복한 그림 속의 가족 이미지를 떠올렸다. 훈훈하고 듬직한 아빠와 날씬하고 생기 넘치는 엄마, 그리고 포동포동 귀여운 인형 같은 아기. 아기가 태어나면 우리의 로망이 이루어진다며 출산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현실은 정말 우리의 기대와 같았을까.

 천만의 말씀. 우리 부부는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갑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굶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 아기 우유부터 챙겨야 했다. 노트에 수유 텀과 배변 텀을 열심히 적어 내려갔지만, 배고프다고 울어대면 수유 텀이 무슨 소용이랴. 부리나케 젖을 물리던, 젖병을 준비해야 했다. 한 번에 40ml를 먹을 건지, 80ml를 먹을 건지 정하는 건 내가 아니었다. 어떨 때는 10ml만 먹고 젖꼭지를 퉤하고 뱉어내는가 하면, 어떨 때는 80ml를 다 먹고도 입을 오물거리며 우유를 더 찾기도 한다. 젖병 속의 우유가 쑥쑥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대견하고 기특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지만, 혹여 부족하지는 않을지 마음 졸여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부족하다 싶으면 남편이 옆에서 대기했다가 쏜살같이 새로 분유를 타서 대령했다. 마치 마라톤의 바통 터치처럼 새로운 젖병의 젖꼭지를 입에 물려주었는데, 고개를 돌리면 그만이었다.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데 어쩔 수 있는가. 오물거리던 앵두입술은 나만의 착각이었던가. 그렇게 버려진 우유가 적지 않았다.


 언제 소변을 보고, 언제 대변을 볼지도 우리가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24시간 대기하고 있다가 기저귀에 파란 줄이 생기면 얼른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했다. (소변으로 기저귀가 젖으면 파랗게 색깔이 변했다. 좋은 세상이다.) 아기가 하루하루 커갈수록 기저귀를 채우는 것도 왜 그리 힘이 드는지, 요리조리 움직이는 아기에게 통사정을 하며 기저귀를 갈아주는 날이 하루하루 늘어났다.


 갑질 횡포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었으니 깜깜한 새벽녘이라도 배가 고프다 울어대면 얼른 젖을 물려야 하고, 그러다 아기가 잠에 들면 얼른 젖을 빼서 편히 잘 수 있도록 아기를 눕혀야 했다. 간혹 잘 눕혀 보려고 끙끙 거리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조금이라도 크게 움직이게 되면 눈을 반짝하고 뜨기 일쑤였다. 반질거리는 새까만 눈동자와 무장해제되어버리는 예쁜 미소를 보았다면 어쩔 수 없이 최소 30분의 불침범을 서야 했다. 어르고 달래며 불 꺼진 방 안에서 둥가 둥가를 해주다 보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아기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비몽사몽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목욕할 때도 혹여 갑님이 불편하지 않으실까 전전긍긍이었다. 아기가 깨끗하게 목욕을 하는 동안, 나와 남편은 진땀을 흘리며 땀으로 목욕을 했다. 때에 맞춰 트림은 잘 하시는지, 혹시 속이 불편하시지는 않는지 하루 종일 밀착 관리를 하다 보면 내 머리는 헝클어지고 면 티셔츠의 목은 늘어나고 다크서클은 길어진다. 아기 침대 옆에서 쪽잠을 자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똑같은 하루의 시작. 갑질이 또 시작된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고된 육아에 시달리다 보면 저녁에 퇴근하는 남편에게 사소한 일로 짜증을 내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게 아니어도 나보다 육아에 서투른 남편이 무언가를 도와주려고 하면 내게 하나하나 내게 물어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져 의도치 않게 우리 사이에도 미묘한 상하관계가 생기곤 했다. 물론 그 상하관계는 자주 뒤바뀌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 집의 절대권력인 그분께서 갑의 위치에 있다면, 나와 남편은 사이좋게 을과 병을 나누어 가지는 사이라고나 할까. 누가 을이든, 누가 병이든 별로 중요하지는 않다. 우리는 모두 절대권력에 복종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둘이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아기의 헛기침 하나에도 쪼르르 아기침대 앞에 붙어서는 날이 늘어났다. 우리의 모든 시계가 아기에게 맞추어지고, 우리의 모든 행동 또한 아기의 일거수일투족에 맞추어졌다.


 출산 전, 우리가 꿈꾸었던 단란한 세 가족의 모습은 당분간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남편은 퀭한 눈으로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임신기간 동안 찐 살로 몸이 불어있었고, 예상치 못한 고된 육아에 푸석푸석해져 있었다. 세상에 처음 태어나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녀석 또한 힘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태열이 올라와서 울긋불긋한 피부에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녀석도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한창 갑질의 횡포를 부리다 잠든 우리 집 상전을 내려다보면서 우리 부부는 서로의 어깨를 토닥였다.


 "여보, 힘내. 그래도 우리 시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거 여보 덕분이야."

 "아냐. 내가 더 고맙지. 그래도 벌써 이만큼이나 키워냈네. 시간이 정말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어."

 "시윤이 잘 때 우리도 얼른 자자.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지. 곧 깰 텐데."

 내게 불면증이라는 것이 있었냐 싶을 정도로, 잠들기 전 뒤척임이라는 게 무어냐고 물을 정도로 우리 부부는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잠이 들었다.


 분명 내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인생 갑질의 현장.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을 못하게 할 만큼의 고강도 갑질이 신기하게도 그저 힘들지 만은 않았다. 흔희들 말하는 모성애와 부성애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소리일까.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인생 갑질이 달갑게 받아들여지는 신기한 경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생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저 엄마이기만 했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