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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l 02. 2018

무지렁이 엄마와 부지깽이 엄마

조리원 커뮤니티

 조리원에서 알게 된 현이 엄마는 육아에 있어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였다. 육아를 책으로도, 블로그로도, 그 어느 것으로도 배운 적이 없는 나에게는 (앞으로 배울 의지가 없는 나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사막의 오아시스, 아니 무인도의 뱃사공 같은 은인이었다. 마치 육아책을 줄줄 외우고 있는 것처럼 물어보는 것마다 술술, 관련된 링크까지 척척 보내주는 그녀는 내 육아 스승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리원 동기들 없었으면 아기 못 키울 뻔했네."

 "맞아 맞아. 진짜 못 키울 뻔했지 뭐야."

 "백신 이름마다 숫자가 쓰여 있는데, 그게 예방되는 범위라고 보시면 돼요. 그리고~"


 무엇이든 막힘없이 줄줄 읊어대는 그녀를 보며 많이 알지 못하는 엄마라서, 그저 사랑으로 키우면 된다고 고집부리는 엄마라서 미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점점 자신감은 떨어지고 괜히 아기한테 미안한 마음만 커져갔다. 이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우리 조리원 커뮤니티의 미소천사 로니 엄마였다.


 "아휴~ 현이 엄마는 똑똑하네. 난 무지렁이, 조선시대 사람인가 봐."

 "나도 있잖아. 힘을 내시게."

 "현이 엄마는 진짜 전문가네! 언니, 우리 분발합시다!"

 "네가 조선시대 무지렁이면, 나는 부지깽이 수준이야. ㅋㅋㅋ"


 핸드폰 속으로 들어갈 듯 정신이 팔려서 카톡을 주고받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다가왔다. 카톡창을 슬쩍 쳐다보더니 피식하고 웃음을 지었다.


 "조리원 커뮤니티야? 재밌어?"

 "응. 육아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특효약이랄까."

 "그러게. 좋은 사람들 만나서 다행이네. 근데 뭐가 그리 재미있어?"

 "아~ 별건 아니고. 내가 너무 모르니까.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무지렁이랑 부지깽이가 배틀하는 중이야."

 "여보가 무지렁이야?"

 "아니. 부지깽이. 늘 그랬던 것처럼 내가 최약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편은 그 뒤로도 종종 나를 부지깽이라고 불러주었다. 그것도 별명이라고 챙겨서 불러주는 남편에게 고마워해야 할까. 아예 부지깽이 엄마라고 이야기해버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물어보고 배워가며 아기를 키우는 것 또한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가끔 이런저런 시행착오들로 아기가 고생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되었지만, 부족한 만큼 내가 더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야 점점 작아지고 있는 내 자신감의 불씨를 조금이라도 살려둘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지렁이 엄마와 부지깽이 엄마는 오늘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아기를 키운다. 여느 엄마들처럼 매끈하지 않을지도, 어떤 엄마들처럼 화려한 육아 템을 가지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것들이 있는지 조차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익숙하고 잘 하는 사람이 어디 많은가. 우리도 프로가 되어가는 과정이려니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부지깽이는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불이 더 잘 일어나라고 들쑤셔주는 긴 막대기라 했다.

 비록 산야에 자라나는 멋진 나뭇가지가 아니어도, 예쁘게 다듬어진 지팡이가 아니어도 어떠할까. 아궁이에서 불이 더 잘 일어나게 도와주듯 우리 조리원 커뮤니티에 불을 지피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괜찮은 부지깽이가 아닐까. 아기가 매사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주진 못해도 건강하게 자라고, 활기차게 웃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부지깽이 엄마라도 나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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