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여행자(히말라야 도서관에서 유럽 헌책방까지), 김미라 지음
책이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더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책이 한번 세상에 나오고 나면 앞으로 어디로 흐르고 또 어떤 영향을 불러일으킬지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그러니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어쩌면 한낱 환상이 아닐까?
'전쟁의 기술'이라는 책이 있다. 64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다 양장 커버까지 더해져 여느 단행본에 비해 압도적인 자태를 자랑하는 녀석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그 책을 만나고 나서 내내 탐을 냈었다. 왠지 그 책을 완독 하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의 기술을 모두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때는 한창 사회생활에 지쳐 있었던 시기였고,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여 몸과 마음이 많이 상해있었다.
사람도 그렇듯 책이랑도 묘한 인연이 있어 너무 읽고 싶은 책을 못 읽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안 읽게 된 경우라고 해야 할까. 내가 가진 독서의 능력이, 혹은 근성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전쟁의 기술'을 읽기 위해 여러 번 시도했지만 여러 번 실패하기를 반복했다. 흐름이 끊겼고, 점점 지루해져 갔다. 자꾸만 슥슥 넘어가는 소설책에 눈이 갔다. 판형은 또 왜 그리 큰지... 열심히 읽어 내려가도 한 페이지 넘기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면서 남자는 서로에게 책을 선물해 주자는 제안을 했다. 내가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서 뭔가 공통점을 만들어 보려는 생각에서였을까.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전쟁의 기술'을 추천했다. 곤욕을 치뤄보라는 심보는 아니었다. 내가 못 읽은 책이지만 왠지 그 속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을 것만 같았다. 책을 추천함에 있어 그보다 더 좋은 이유가 있을까. 읽어낸다면 분명 도움이 될 책이긴 했다.
남자는 매일 아침 출근해서 '전쟁의 기술'을 펴 들었다. 주위 사람들이 하나같이 네가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었냐며 신기해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남자는 그 두꺼운 책을 결국 다 읽어냈다. 나와의 약속을 지켜냈고, 나만큼이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 때문이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결혼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 여러 가지 계기 중 하나는 분명 '전쟁의 기술'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책을 쓴 저자는 알고 있었을까. 전쟁에서 이기는 기술을 써 내려간 그 책으로 말미암아 어느 청춘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연애를 해서 결혼까지 하게 될 줄이야. 저자의 손을 떠난 책은 후에 어떠한 영향력을 가지게 될지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난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책이 가지고 있는 단단한 물성도, 그 책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다. 그 모든 것이 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