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맛이 궁금할 때 가만히 삼켜보는) 차의 기분, 김인 지음
가만히 있는 시간이 는다.
찻잔이 비었다고 성급히, 찻잔에 차를 다시 채워서는 안 된다. 비 갠 후 꽃의 향이 진해지듯 차향도 차를 삼킨 후에야 진해진다. 빈 찻잔을 보며, 가만히 있는 시간이 는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커피를 마시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일이다.
정확히 어느 부분이 얼마나 다른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아주 조금 가끔은 꽤나 많이 다르다.
커피를 마시는 일은 더 달리기 위함일 경우가 많다.
내 부족한 에너지를 쥐어 짜내 젖 먹던 힘까지 다해야 할 때, 나는 커피를 찾았다. 그 한 잔이 내게 얼마나 힘이 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습관적으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큰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 다시 한번 해보자!"
나를 막다른 곳까지 다그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커피라는 조그만 위안이라도 있어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 커다란 머그컵을 들었다. 커피는 야근을 하던 나의 친구였고, 밤샘을 하던 나의 동료였다.
차를 우리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잠시라도 쉬어가자는 신호였다.
차를 내오는 사람을 보면 미소가 빙그레 지어졌고, 팽팽하던 줄이 조금 느슨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정신없이 몰아치다가도 차 한잔을 마시면 잠시라도 창 밖 하늘을 쳐다볼 여유가 생겼다.
예상치 못한 보슬비가 내리고 귓불이 뜨끈해지는 날. 뜨거운 콧김이 내쉬어지는 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차를 찾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은 날이다. 다 괜찮다고, 지금 잘 하고 있다고... 오늘은 내려놓고 조금 쉬어도 괜찮지 않겠냐며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그리운 날. 나는 어김없이 차를 마셨다.
적어도 나에겐, 커피와 차는 이렇게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