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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l 13. 2018

인생이 한 번쯤 섞어주는 맛도 있어야지.

조리원 커뮤니티

 여자에게는, 아니 엄마에게는 출산과 함께 또 하나의 나이가 생긴다. 바로 아기의 나이.

 아무리 나이가 많은 엄마라도 상관없다. 물론 아무리 나이가 어린 엄마라도 상관없다. 아기가 같은 또래이면, 아이끼리 친구이면 엄마들은 같이 어울리게 된다. 아기 나이에 맞추어 엄마로서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 선배들 사이에서 이런 인사가 오가는 것을 자주 보았다.

 "혹시 결혼하셨어요? 애기는..."

 "아~ 첫 째는 올해 학교 갔고요. 둘째는 다섯 살이요."

 "어머~ 우리 첫 째 아이랑 동갑이네요. 학교 보내고 나니 챙길게 많지요?"

 여자들 사이에서 아이의 나이를 이야기하며 공통점을 찾는 인사는 어쩌면 통성명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물론 요즘엔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아이가 있는지 물어보는 것도 조금 조심스러운 분위기 이긴 하다. 그렇기에 그 사람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 이야기로 첫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조금 주의해야 할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서로 아이가 있음을 알고 있는 상황하에서는 이보다 더 매끄러운 대화의 시작은 없을 터였다.


 조리원 커뮤니티의 대화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로 이름도 몰랐고, 나이도 몰랐지만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이유에는 우리의 아들들이 있었다. 엄마들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지 못했지만, 우리 아들들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신생아실에 쪼르르 누워있는 녀석들을 같이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동질감을 느꼈고,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동료애가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함께 이야기할 것들이 넘쳐났다.


 이제 겨우 2살, 살아온 인생이 채 6개월도 되지 않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우리 시윤이가 그중 제일 어린 녀석이었다. 내가 조리원에 론이 엄마랑 같이 입소했을 때, 이미 현이 엄마와 유안이 엄마는 조리원에서 며칠을 지낸 후였다. 게다가 론이 엄마는 산부인과에서 나보다 며칠 더 있다가 온 것이어서 굳이 따져 보자면 그중 우리 시윤이의 생일이 가장 늦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엄마 나이로 따져보자면 내가 그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노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우리 모임에서는 내가 왕언니 노릇을 하게 되었다. 가장 어린 현이 엄마와는 무려 7살 차이. 회사 다닐 적에 '과장님~ 과장님~' 하면서 나를 따르던 신입사원이 나와 7살 차이였었나. 지금 내게 현이 엄마는 없어서는 안 될 육아 고수였다. 작은 것 하나도 현이 엄마의 가이드를 등대 삼아 육아용품도 사고, 예방접종도 하고 있는 내 모습에 풉 하고 웃음이 터졌다. 엄마들의 세계에서 어쩌면 나이는 이만큼 쓸모없는 것이구나.


 인생을 살면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몇몇 있다. 그중 나이도 하나이다. 한 번 태어나면 날짜와 시간을 바꿀 수는 없으니 나이는 내가 평생 가져가야 할 나의 신상정보 중 하나에 속한다.

 아이를 낳고서 그 인생의 나이가 한 번 바뀐다. 물론 둘째를 낳으면서 또 한 번 더 바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엄마의 인생에 있어 좋은 것인지, 싫은 것인지를 따져 물을 필요는 없다. 좋고 싫음을 따질 문제이기보다 엄마가 되면서 겪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이와 함께 맞이하는 새로운 시간, 새로운 인생.

 보드게임을 하다 내 차례가 되어 뽑아야 할 막대기가 든 통을 한 번쯤 찰랑찰랑 섞어주는 것처럼 그렇게 인생의 나이도 한 번쯤 찰랑찰랑 섞어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엄마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고, 엄마들의 세계에서 통하는 재미있는 룰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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