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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l 12. 2018

육아 고수의 비법은 결국 타이밍

조리원 커뮤니티

 아기를 키우면서 매일 확신하게 되는 것이 하나 있다. 육아도 결국 타이밍 싸움이라는 것이다. 아기가 원하는 타이밍에 엄마가 바로 답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 하지만 대부분의 초보 엄마들은 그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하루 종일 배가 고픈지, 잠이 오는지, 어디가 불편한지 아기 눈치를 살피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엄마는 매일 저녁, 잠든 아기를 내려다보며 혹시 엄마를 부르는 울음에 제때 대답해 주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을 쓸어내린다.


 나 또한 초보 중에 초보 엄마. 아기의 울음소리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턱이 없었다. 남편 또한 비슷했다.

 "아기가 울면 배고프거나 졸리거나 똥 싼 거 아닐까?"

 "그러게... 그거 말고 더 있나?"

 "내가 조리원에서 잘 배워왔지! 아기가 응애! 하면 배고픈 거고, 에에! 하면 트림이 나오는 거고, 아앙! 하면 졸린 거래."

 "응?????!!!"


 마침 시윤이가 입을 씰룩씰룩하더니 눈물을 그렁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응~~ 애! 응~애! 응~~ 아앙~~! 에엥~!"

 한참을 듣고 있었지만 울음소리가 묘하게 섞여있어서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응애! 하는 울음소리를 듣고 남편이 우유를 준비했으나, 곧 시윤이는 하품을 하며 더 크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배가 고픈데 졸리기까지 하고, 잠을 자려니 아까 안 했던 트림이 생각나서 속까지 불편한가?! 뭐지?!"


 타이밍 싸움에서 고난도 과제를 하나 더 꼽으라면 단연 딸꾹질이었다. 처음에는 조그만 녀석이 딸꾹질도 하냐며 신기하게 쳐다보았는데, 딸꾹질이 멈추지 않으니 아기도 고역이고 지켜보는 엄마도 가시방석이었다. 나는 줄 몰라 딸꾹질하는 아기를 안고 같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한참 동안 방 안을 돌아다녔다. 어른이면 잠깐 동안만이라도 숨을 참아보라고 할 텐데, 신생아에게 그런 주문을 할 순 없으니 자연스레 멈춰질 때까지 녀석을 안아주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딸꾹질에는 젖 물리는 게 상책이야. 물리기만 하면 딱 그친다니까. 애들도 딸꾹질을 얼마나 자주 한다고!"

 다행히 친정엄마가 가르쳐 준 비법으로 딸꾹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지만, 젖을 물려 딸꾹질을 멈추는 타이밍을 찾는 것 또한 초보 엄마에게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딸꾹질 타이밍은 조리원 커뮤니티에서도 풀기 어려운 고난도 문제였다.

 "딸꾹질하면 뭐 먹여? 모유 다 먹고 딸꾹질하면 난감해."

 "끓인 물 먹여도 되나?"

 "저는 그냥 분유 먹여줘요. 아직 끓인 물은 안될 것 같아서요."

 "일단 쉬하진 않았는지 확인해보고 몸 따뜻하게 해줘 보고요."

 "유안이는 무조건 젖 물려야 멈추는 애. 다른 건 안 통해."

 "유축한 거 줘도요?"

 "모유 다 빨아먹고, 트림시킬 땐 트림 안 하다가 딸꾹질하면서 다 개워내. 항상 개워내. 매 끼니마다."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걸까요? 왜 그러지?"


 나에겐 딸꾹질만큼이나 어려운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나는 한동안 기저귀 갈아주는 타이밍 때문에 시윤이랑 씨름을 했다. 이건 마치 여러 가지 솔루션을 한꺼번에 적용해서 풀어야 하는 어려운 수학 문제와도 같았는데, 학창 시절 풀어왔던 그 어느 것보다 내게는 훨씬 어렵게 느껴졌다.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기존에 하고 있었던 기저귀를 벗겨내는 순간, 시윤이는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오줌을 쌌다. 방금 오줌을 싼 것 같아서 기저귀를 갈아주려던 것이었는데, 하루에 오줌을 몇 번이나 싸는 건지 자꾸 기저귀 갈아주는 타이밍과 오줌을 누는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면 녀석도 깜짝 놀라 동그란 토끼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당연히 쪼르르 나오던 오줌줄기는 덜컥 멈춰져 버렸다. 미안한 마음에 괜찮다며 어르고 달래며 기저귀를 갈아주다 보면 체온이 내려가서 결국 시윤이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젖은 옷이며, 젖은 이불도 치워야 하는데 아기는 딸꾹질을 하고 있으니 젖도 물려야 하고, 안되면 분유라도 조금 타 와서 먹어야 하니 평온했던 거실은 갑자기 찾아든 분주함으로 가득 찼다. 안 먹겠다며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고 저쪽으로 돌리는 아이를 겨우 달래서 몇 모금이라도 우유를 먹이고 나면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한바탕 소통을 치르고 난 뒤에는 그저 멍하니 몇 분 동안 방실거리는 아기 옆에 앉아있기 일쑤였다.


 그것도 경험이라고 몇 달이 지난 지금은 나름의 눈치라는 것이 생겼다. 왠지 아기가 이렇게 할 것 같은 느낌, 왠지 아기가 이걸 원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엄마만의 눈치이다. 딸꾹질을 멈추게 하는 비법, 기저귀를 빠르고 신속하게 갈아주는 비법처럼 육아의 잔 기술들이 늘어난 것도 물론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의 노하우라는 것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시윤이와 나와의 타이밍이 조금씩 맞아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아기가 자는 시간, 먹는 시간, 보채다 안겨있고 싶은 시간... 그런 우리들의 일상이 서로에게 맞춰져 가고 있는 요즘. 이제는 시윤이의 눈빛만 보아도 배가 고픈지, 트림을 하고 싶은지 느낌이 온다. 물론 그 느낌이 매번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세상에서 시윤이의 타이밍을 잘 알아맞히는 사람이 나라는 것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이가 커가는 동안 엄마와 아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시계가 하나 생겼다. 그 시계 속, 우리 둘만 아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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