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 취향의 총합이 실현된 섬

걷고, 수영하고, 야영하며, 맛보다.

by 우주사슴
나의 취향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

나는 풍광의 감상을 삶의 리듬처럼 여긴다. 능선을 타며 걷는 일, 이따금 바다에 온몸을 맡기는 일, 짐을 짊어지고 낯선 곳에 텐트를 치는 일은 나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사유와 체온의 균형을 맞추는 방식이다. 거기에 하루를 정리해 주는 술 한 잔과 제철 해산물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울릉도는 이 모든 취향이 동시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드문 공간이었다. 산은 깊고 바다는 맑았으며, 길은 짧지 않되 몰입을 방해하지 않았다. 조용한 밤과 바람 많은 봉우리, 바닷바람에 간을 맞춘 식사와 느릿한 대중교통. 이 섬은 단지 ‘갈 곳’이 아니라, 나의 내면적 관심사와 외부 환경이 조화롭게 겹쳐지는 장소였다.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른 일정

처음부터 정교한 계획은 없었다. 주요한 방향성만 잡아둔 채, 하루의 흐름에 따라 동선과 체류지를 결정했다. 울릉도의 구조는 이를 가능하게 했다. 큰길은 섬을 둥글게 한 바퀴 돌며 주요 지점을 연결하고 있었고, 버스만으로도 대다수의 지역을 충분히 이동할 수 있었다.


버스 정류장마다 설치된 에어컨이 가동되는 대기 공간은 생각보다 훌륭한 쉼터가 되었고, 짧은 구간을 걷다가 쉬고 다시 걷는 패턴이 여행에 내적인 리듬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울릉도를 소비하지 않고 응시하며, 특정 스팟에 집착하기보다는 순간순간 몰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로써 예상하지 못한 장소와 감정이 여행의 주인공이 되었다.


고요한 분지, 나리에서의 하루와 두 번의 깃대봉 방문

울릉도 유일의 분지 지형인 나리는 다른 지역과 뚜렷이 구별되는 정적인 풍경을 품고 있다. 사방을 산이 둘러싸고 있고, 그 안의 메밀밭은 바람에 반응하며 시간의 단면을 드러낸다. 분지 특유의 고요함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중한 침묵이었다.


이곳에서의 1박은 섬이라는 공간 속의 또 다른 ‘섬’에 머문 경험이었다.


깃대봉은 두 번의 오름으로 내게 두 개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첫 시도는 강풍으로 인해 야영을 포기했고, 그저 바람의 밀도만을 감각하는 체험과 울릉도의 밤의 모습을 담는 경험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오르니 전혀 다른 울릉도가 펼쳐졌다. 빛이 머무는 능선, 분지 너머로의 마을, 그리고 산등성이 위에서 내려다본 바다. 밤과 낮, 두 시간대의 깃대봉은 하나의 장소가 어떻게 이중적 얼굴을 지닐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남양 - 야영, 몽돌해변, 해수풀장, 하나로마트, 국보급 버스정류장의 5박자

남양해변은 물리적 조건과 여행자의 요구가 이상적으로 만난 공간이었다. 깨끗한 몽돌 해변은 시각적으로도 정갈했고, 그 자갈 위에 몸을 눕히는 순간 촉각의 기억으로 변했다. 해수로 채워진 무료 풀장은 일상의 체온을 식히는 데 더없이 적절했다.


이곳의 캠핑장은 무료였고, 해변과 인접해 있어 해가 지고 나서의 시간까지 자연 속에서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저녁이 되면 바람이 부드럽게 불고, 파도의 리듬이 일정하게 반복되며 술을 곁들인 사유의 공간이 열린다. 소주와 위스키는 말을 아끼게 만들었고, 그 침묵 속에서 울릉도의 밤은 더욱 또렷해졌다.

독도 – 오직 한 번으로 충분한, 그러나 분명히 와볼 만한 곳


독도는 상징성과 거리감, 그리고 접근성으로 인해 쉽게 올 수 없는 장소다. 배를 타고 가는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파도와 바람을 뚫고 도달하는 경험이며, 그것은 ‘섬’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감각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독도는 그 특수성과는 별개로, 여행지로서의 체류 시간이나 경험의 밀도 면에서는 오히려 간결하다. 입도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관람 동선도 제한적이며, 독도의 환경 자체도 오랜 머묾보다는 짧은 응시를 전제로 한 구성이다.


입도 허가가 언제나 보장되지 않는 점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무게감을 만들어주지만, 실제로 발을 디뎌본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한 번이면 족하다”는 판단이 든다.


이는 실망이 아니라, 오히려 단회적 경험의 정당화다. 독도는 ‘여러 번 가야 할 곳’이라기보다 ‘한 번쯤은 분명히 가볼 만한 곳’이며, 물리적으로 닿아본 그 순간 이후에는 기억 속의 자리로 차분히 옮겨가는 섬이다.


그 존재는 늘 상징적으로 가까이 있어야 하지만, 여행자로서는 굳이 반복할 이유가 없다는, 조금은 독특한 거리의 미학을 가진 공간이다.

울릉도의 식탁 – 바다를 먹는다는 것의 실감

울릉도는 식사의 질감 자체가 다르다. 꽁치물회와 오징어물회는 물속의 식감과 회의 탄력, 그리고 양념의 산미가 만나 독특한 조화를 이루었다.


따개비칼국수는 보기에는 수수하지만 국물의 깊이에서 감탄이 나왔고, 오징어내장탕은 생소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깊은 맛으로 기억된다.


오삼불고기는 육해의 교차점에서 울릉도의 입체적인 식재료 구성을 보여주었으며, 독도소주는 부드럽고 깔끔했고, 호박막걸리는 색과 향의 농도가 인상적이었다.


식후에 마신 호박식혜는 디저트 이상의 경험이었다. 이 모든 음식은 하나의 공통된 조건, 즉 ‘섬에서 지금 먹어야만 가능한 맛’이라는 조건을 공유하고 있었다.

물가와 환대 – 섬의 경제가 지닌 정직함

서울 대비 물가는 대략 20%가량 높았다. 그러나 이는 수송과 자원의 조건을 감안하면 결코 부당하지 않았다. 특히 밑반찬의 다양성과 정성, 전반적인 친절한 응대는 가격 이상의 가치를 느끼게 했다.


술값은 내륙과 거의 차이가 없었고, 식당이나 숙소에서 바가지의 기운은 감지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섬의 사정을 잘 설명했고, 특별한 요구 없이도 정갈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관광객 상대’라는 태도보다, ‘섬사람’의 자세가 더 자주 느껴졌다. 그것은 이 섬이 곧 자기 자신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울릉도는 아직 다 열리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울릉도의 외곽 일부, 몇 개의 봉우리와 해변만을 맛본 탐색이었다. 성인봉은 여전히 미지의 지점으로 남아 있고, 동쪽 해안의 비경도 걷지 못했다. 비 내리는 날의 울릉도, 혹은 완연한 가을의 울릉도는 또 어떤 얼굴일까.


나는 다시 이 섬을 찾을 것이다. 준비된 계획보다는 열린 여백으로. 풍광은 계절마다 달라질 테고, 걷는 나의 감정도 다를 것이다. 울릉도는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 다만 그 변화의 자리로 스스로를 내어주는 섬이었다.


여운

이 여행은 특정 장소를 방문했다는 사실보다, 특정한 내면의 결이 그 장소에 응답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울릉도는 내게 이상적인 취향의 목록을 실현시켜 준 섬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취향의 경계를 부드럽게 밀어내며, 새로운 감각의 빈틈을 만들어준 섬이었다.


이 섬은 ‘기억’이 아니라 ‘여운’으로 남았다. 그래서 그 여운은 나를 또다시 그곳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2025년 7월 27일부터 7월 30일까지의 기억

함께해 준 @space_paghetti 광진구 스페이스 파게티 사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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