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와타시(私)’다.

와타시와 보쿠의 그 사이 어디쯤일지도.

by 우주사슴

나는 일본어를 사용할 때 1인칭 대명사 선택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해 왔다. 일본어에는 ‘와타시(私)’, ‘보쿠(僕)’, ‘오레(俺)’ 등 다양한 1인칭 대명사가 존재하며, 각 대명사는 단순한 ‘나’라는 의미를 넘어서 화자의 사회적 태도, 성별, 관계성, 그리고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은 일본어 사용자에게 자신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매우 세밀한 선택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외국인 화자로서 이러한 선택이 자유롭지 못했고, 결국 나의 1인칭 대명사 사용은 현실적인 제약과 고민의 산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대화 상황에서 ‘와타시(私)’만을 사용한다. 이 선택은 단순한 습관이나 기호가 아니다. ‘와타시’는 일본어에서 가장 표준적이고 중립적인 1인칭 대명사로서, 남녀 모두가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인 다양한 상황에서 폭넓게 사용한다. 나는 ‘와타시’를 통해 나를 특정한 사회적 이미지에 묶지 않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해석을 유발하지 않으려 한다. 즉, ‘와타시’를 사용함으로써 내 언어가 상대에게 나의 성격이나 사회적 태도에 대한 지나친 단서를 제공하지 않게 하며, 의도하지 않은 선입견과 거리감을 방지하고자 한다.


‘보쿠(僕)’는 일본어에서 주로 남성이 사용하는 부드럽고 겸손한 1인칭 대명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내가 일본어를 잘 몰랐을 때에는 누군가 자신을 ‘보쿠’로 칭하면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보쿠’의 사용이 단순한 언어 실력을 넘어 사회문화적 맥락과 깊게 결부되어 있음을 깨닫고 특히 외국인 화자로서, ‘보쿠’를 모든 상대와 모든 상황에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지속적인 의문과 불확실성을 느꼈다. 이 의문은 단지 언어적 차원을 넘어서 내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식될지, 그리고 내 표현이 상대에게 어떤 이미지를 심어줄지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나는 ‘보쿠’를 사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그 자리를 ‘와타시’가 대신하게 되었다.


‘오레(俺)’는 나의 선택지에 아예 포함되지 않았다. ‘오레’는 강한 남성적 어감과 친근함, 때로는 거칠고 자신감 있는 뉘앙스를 갖고 있다. 이는 일본어 사용자들 사이에서 가까운 친구나 가족, 친밀한 관계에서 주로 쓰이는 비공식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나는 ‘오레’를 통해 상대에게 전달될 수 있는 강렬한 캐릭터성과 거리감을 의식적으로 회피한다. ‘오레’를 사용하면 상대방이 나를 특정한 이미지로 규정하거나, 지나치게 친근하거나 무례한 사람으로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대화 상황에서는 ‘오레’를 쓰지 않으며, 다만 혼잣말이나 내면 독백을 인용할 때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정도다. 이때는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 솔직한 내면의 언어를 표현하는 자유로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오레'를 사용함으로써 이 사람은 무조건적인 '와타시'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 구라 나는 인상도 동시에 부여한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내가 좋아서’ 혹은 ‘내가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내린 결정이 아니다. 오히려 ‘보쿠’를 사용하기 어려운 외국인 화자로서의 현실적인 한계와, ‘오레’를 사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이미지 문제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와타시’라는 선택에 머무르는 것이다. 즉, 일본어 1인칭 대명사 사용은 나에게 있어 자유로운 자기표현보다는 외부 상황과 내면의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복잡한 영역이다.


‘와타시’라는 대명사를 사용함으로써 또한 잃을 것이 없다.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단계에 이르러 보니, ‘보쿠’라는 표현이 꼭 필요하거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보쿠’를 쓴다고 해서 내 언어 실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거나, 내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와타시’라는 무난한 대명사 하나로도 충분히 내 생각과 태도를 표현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혼란이나 오해를 줄이게 된다.


결국 나의 일본어 1인칭 대명사 사용은 단순한 어휘 선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사회적 태도와 관계 설정, 언어적 자기 이미지 관리, 그리고 내면의 솔직함과 같은 복합적인 요소들이 뒤섞인 결과물이다. 나는 언어를 통해 나를 드러내고 관리하지만, 동시에 외국인 화자로서의 제약과 문화적 차이 앞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나는 ‘와타시’를 선택하며, 그것이 내가 일본어를 쓰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임을 받아들인다.


참고: 일본어 주요 1인칭 대명사


와타시(私): 표준적이고 중립적이며, 남녀 모두 공식적·비공식적 상황에서 폭넓게 사용한다.


보쿠(僕): 주로 남성이 사용하며 부드럽고 친근하며 겸손한 뉘앙스를 지닌다. 비교적 캐주얼한 상황에 적합하다.


오레(俺): 남성적이고 친근하면서도 거칠고 자신감 있는 뉘앙스를 가진 비공식적 대명사로, 주로 가까운 사이에서 쓰인다.


일본어 1인칭 대명사는 단순한 ‘나’가 아니라 화자의 사회적 태도와 관계성, 정체성을 보여주는 복합적인 언어적 기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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