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마블 안의 서울,서울,서울

보드판 위 자본주의의 경험의 축적

by 우주사슴

<게임고유명사는 부루마블이나, 블루마블로 적겠습니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주사위를 굴려본 보드게임, 블루마블.


세계의 도시를 여행하며 땅을 사고 빌딩과 호텔을 세워 상대를 파산시키는 이 게임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한국 사회가 자본과 도시에 대해 품고 있는 가치관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문화적 텍스트다. 특히 ‘서울’이라는 칸이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지명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블루마블이라는 이름이 전하는 것


먼저 이름부터 살펴보자. ‘Blue Marble’이란 말은 1972년 NASA의 아폴로 17호가 찍은 지구 사진에서 유래했다. 파란 구슬처럼 보이는 지구의 이미지를 담아, 인류 공동체적 시각과 환경적 상징을 내포한 단어다. 하지만 보드게임 블루마블에서 이 이름은 그런 이상주의적 의미가 아니라, 지구 전체를 하나의 무대이자 소유의 대상으로 환원하는 자본주의적 시선을 드러낸다.


게임판에는 전 세계 도시들이 나열된다. ‘세계 여행’이라는 테마를 빌려왔지만, 그 구조는 매우 직설적이다. 주사위를 굴려 땅을 사고팔며, 빌딩과 호텔을 올려 통행료를 받아내고, 상대를 파산시켜야 승리한다. 이는 모노폴리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온 규칙으로,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투자하고 독점하는 시뮬레이션이다.


서울은 왜 게임의 끝판왕인가


이 게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칸이 바로 ‘서울’이다. 블루마블에서 서울은 최고가의 땅, 가장 비싸고 가장 높은 통행료를 받는 ‘끝판왕’ 자리다. 이 설계는 단순한 재미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게임이 제작된 1980년대 한국 사회의 경제적·문화적 상징을 반영한다.


당시 한국은 산업화와 수도권 집중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였다. 서울은 곧 발전과 부의 상징이자, 한국인의 국가적 자부심을 대변했다. 제작자는 세계를 여행한다는 테마 속에서도 서울을 최고가 칸으로 배치함으로써, 이 국가주의적이고 수도 중심적인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이식했다.


플레이어는 서울을 소유하면 게임의 주도권을 쥔다. 그것은 단순한 승리 전략이 아니라, ‘서울을 가진 자가 성공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놀이의 규칙으로 학습하게 만든다.


놀이가 반영하는 현실의 위계


더 흥미로운 점은 이 게임이 설정한 구조가 단지 과거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블루마블의 서울 칸은 더욱 사실적이고 적나라해졌다.


1980년대에도 서울은 많은 이들에게 꿈의 공간이었지만,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그 장벽이 훨씬 더 높아졌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블루마블이 만들어질 당시 상상했던 ‘서울=최고의 투자처’라는 구조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뿐 아니라, 더 날것의 현실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블루마블의 게임판은 단순히 옛날식 자부심을 담은 놀이가 아니라,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수도권 집중을 적나라하게 재현하는 은유적 지도(map)가 된다.


게임 속 서울을 소유하는 대리만족


하지만 블루마블이 단순히 현실의 위계를 재현하는 데서 멈춘다면, 그저 냉정한 풍자나 반영일 것이다. 문제는 이 게임이 제공하는 심리적 보상이다.


현실에서는 서울의 집을 가지기 어렵다. 1980년대에도 쉽지 않았고, 지금은 더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게임 속에서는 가능하다. 주사위를 잘 굴리고 돈을 모으면 누구나 서울을 살 수 있다. 심지어 상대를 파산시킬 수도 있다.


이 순간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강력한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현실에서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을 ‘획득’할 수 있다는 쾌감


경제적 질서를 내 손으로 통제한다는 환상


‘서울의 주인’이 되어보는 잠정적 권력감


이러한 대리만족은 놀이의 중요한 기능이자 매력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효과는 이중적이다.

현실의 구조적 문제—수도권 집중, 부동산 불평등, 기회의 편중—을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서울이 최고인 건 맞지. 현실에서 못 가지면 게임에서라도 가져보자.”

놀이의 위로는 곧 체념의 통로가 된다.


자본주의적 규칙과 체념의 내면화


블루마블의 규칙은 자본주의적 질서를 놀이로 포장한다. 세계의 도시는 문화나 역사적 맥락 없이 투자 대상으로 환원된다. 빌딩과 호텔을 올리고, 통행료를 받아내며, 승자는 독점한다. 그리고 그 독점의 정점이 서울이다.


플레이어는 웃으며 주사위를 굴리지만, 사실상 이 게임은 자본주의적 위계질서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만든다.

‘서울은 가장 비싸야 하고, 서울을 가진 자가 승리한다’는 전제는 의심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내면화한다.


마무리하며


블루마블은 세계를 여행하는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소유하고, 투자하며, 궁극적으로 독점하는 행위를 시뮬레이션한다. 서울이라는 칸은 단순한 한국의 수도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승리의 가장 응축된 상징이다.


우리는 왜 서울이 가장 비싼 칸이어야 한다는 설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까? 혹은 그렇게 배우도록 학습되었을까?


블루마블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한국 사회가 품고 있는 욕망과 불평등을 놀이의 규칙으로 재현하고, 그것을 너무나 당연한 질서로 만들었다.


주사위를 굴리며 즐거워하는 그 순간, 우리는 ‘서울을 가진 자가 승리자다’라는 현실의 메시지를 되새긴다. 그리고 그 현실은, 게임판 너머의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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