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좇는 과거의 영광

그 시절의 영광의 반복은 불가능하다.

by 우주사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취임 이후, 일본 언론은 “강한 일본의 귀환”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이 말이 가리키는 ‘강함’은 언제의 일본을 뜻하는가. 1980년대의 경제 대국? 메이지 유신 이후의 근대화 신화? 아니면 전후 재건의 기적? 일본은 여전히 과거의 특정 시점을 참조점으로 삼아, 그 시절의 영광을 반복하려 한다. 문제는 그 영광이 더 이상 현재의 조건과 맞물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경제, 정치, 문화의 영역에서 과거는 신화처럼 작동하고, 일본 사회는 그 신화를 갱신하지 못한 채 반복한다. 영광은 기억 속에서만 빛나고, 현실은 그 그림자 속에 머문다.


영광의 기원: 전후 부흥과 고도성장의 신화

일본의 자기 인식은 메이지 유신 이후 형성된 근대화의 궤적에서 출발한다. 서구의 제도와 기술을 급속히 받아들이면서도 천황제와 집단주의라는 고유 질서를 유지한, 모순적이지만 기능적 구조. 이 모델은 패전 후 재건의 논리로 다시 호출되었다. 폐허 위에서 시작된 일본은 1950~1980년대 고도성장을 이루며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다.


이 시기의 성공 경험은 일본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되었다. 근면, 질서, 기술, 조화. 네 개의 덕목이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정신적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1979년 에즈라 보겔의 『재팬 애즈 넘버원』은 이 신화를 세계적으로 공인했다. 일본은 자신을 ‘성공의 모델’로 인식했고, 그 확신은 사회 전반의 무의식 속에 각인되었다.


그러나 그 영광은 특수한 조건 위에 세워진 결과였다. 냉전 구도 속 미국의 후원, 젊은 노동력, 제조업 중심의 세계 경제 구조. 이 조건들이 붕괴하자, 일본의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과거의 성공이 너무 강렬했기에, 그것이 일시적 구조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신화의 붕괴: 잃어버린 30년과 자의식의 공백


1990년대 초 버블 붕괴는 경제 위기라기보다, 정체성의 붕괴였다. 부동산 폭락, 은행 부실, 디플레이션의 고착. 정부는 재정 부양과 금리 인하로 대응했지만, 근본적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업은 투자를 줄였고, 가계는 소비를 멈췄으며, 경제는 침체를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잃어버린 10년”은 결국 “잃어버린 30년”이 되었다. 성장률은 제로에 가깝고, 생산성은 주요국에 뒤처졌으며, 인구는 감소했다. 문제는 경제보다 정신이었다. 청년 세대는 성장의 기억이 없고, 기업은 혁신보다 생존을 택하며, 정치는 변화보다 안정을 중시했다. 사회 전체가 ‘움직이지 않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소모했다.


문화 역시 피로했다. 1980년대 일본 대중문화는 세계를 매혹시켰지만, 그 이후 새로운 상상력은 등장하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패션, 음악은 과거의 양식을 재활용하며 자가 복제에 머물렀다. 일본은 여전히 문화의 소비 강국이지만, 문화의 생산자로서의 창의성은 정체되었다.


그 결과, 일본 사회에는 세 가지 감정이 자리 잡았다. 상실감, 향수, 불안. 상실감은 과거를 미화하고, 향수는 현재를 무력화하며, 불안은 변화를 차단한다. 일본은 성장 없는 안정을 유지하려는 체제적 본능에 갇혀 있다.


영광의 반복 충동: 과거 모델의 재현 시도


다카이치 내각은 이러한 충동의 정치적 표상이다. 그녀의 ‘강한 일본’ 담론은 1980년대 경제 대국의 이미지를 재현한다. ‘사나에노믹스’는 ‘아베노믹스’의 반복이며, ‘아베노믹스’는 다시 고도성장기의 재정 확대 논리를 참조한다. 정치가 과거의 성공 공식을 다시 꺼내드는 이유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능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경제정책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여전히 제조업 중심 구조에 매달린다. 자동차, 전자, 소재 산업은 더 이상 성장 동력이 아니지만, 산업 패러다임 전환은 더디다. 디지털 플랫폼과 AI,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후발주자로 밀려났다. 일본은 여전히 ‘만드는 것’의 미덕을 붙잡고 있지만, 세계는 이미 ‘연결하는 것’의 경제로 이동했다.

문화 영역에서도 회귀는 집요하다. ‘쇼와 레트로’ 열풍, 버블기 감성의 드라마 리메이크, 복고풍 광고. 과거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불확실한 현실로부터의 도피처가 되었다. 일본은 미래를 상상하는 대신, 기억을 소비한다.

이 반복 충동은 일본이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지 못하게 만든다. 혁신은 위협으로, 변화는 위험으로 인식된다. 결국 일본은 과거를 지키려다가 과거마저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


영광의 해체와 갱신의 조건

이 순환을 끊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과거의 논리를 해체하는 일이다. 고도성장은 특정한 시대적 산물이었다. 그것을 재현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근면과 질서, 집단 조화는 여전히 의미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해답이 되지 않는다.


둘째, ‘새로운 일본다움’을 재정의해야 한다. 지방 분권, 지역 재생, 미니멀리즘, 지속가능성. 이미 일본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가치들이 자라나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국가 서사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개별 사례는 있지만, 이를 엮어 미래의 정체성으로 전환하는 서사가 부재하다.


셋째, 성공의 언어를 바꿔야 한다. GDP, 성장률, 수출 경쟁력은 더 이상 일본의 현재를 설명하지 못한다. 인구 감소와 저성장이 구조화된 사회에서, 존속 가능성·사회적 신뢰·삶의 의미가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일본이 이 언어로 자신을 다시 규정할 때, 비로소 ‘현재’를 긍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세대 간 단절을 해소해야 한다. 고도성장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는 서로 다른 일본을 살고 있다. 젊은 세대는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지 않으며, 그 반복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 세대가 스스로의 언어로 일본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 구조는 그 목소리를 차단한다.


기억에서 미래로


과거의 영광은 일본의 자산이자 족쇄다. 그것은 자긍심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상상력을 가두는 틀이다. 일본은 여전히 과거의 성공 경험에 갇혀 있으며,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영광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고, 현실은 그 잔광 속에 머문다.


진정한 부활은 반복이 아니라 재구성이다. 일본이 좇아야 할 것은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그 영광을 가능하게 했던 창조적 에너지다. 메이지 유신은 서구를 모방했지만 그대로 복제하지 않았다. 전후 재건 역시 폐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 그 창조의 잠재력은 여전히 일본 안에 있다. 다만 그것은 과거를 모방할 때가 아니라, 과거를 비판할 때 드러난다.


일본이 스스로의 신화를 해체하고, 새로운 언어로 자신을 다시 규정할 때, 세계는 비로소 일본의 다음 장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강한 일본”이 아니라, “새로운 일본”이다. 문제는 그 전환을 감행할 용기다. 지금까지의 징후로 볼 때, 그 답은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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