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는 근대 힘있는 자들이 새롭게 부여한 서사
<글에 앞서>
저는 미술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합니다. 최근 센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라는 전시회를 다녀온 차,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르네상스에 대해 왜 하필 르네상스인가? 에 대한 의문으로 출발하여 그 구조를 해체하고 의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정리한 글입니다.
르네상스 인상주의까지라는 전시회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26년 2월 22일까지 관람가능합니다.
르네상스는 흔히 하나의 거대한 사건처럼 말해진다. 인류가 잠에서 깨어난 순간, 신에서 인간으로 중심이 이동한 결정적 전환, 서양 문명의 찬란한 출발점. 그러나 이 익숙한 서사는 너무 매끄럽다. 매끄럽다는 것은 대개 사후 편집이 잘되었다는 뜻이다.
르네상스는 특정 연도에 시작된 혁명도 아니고, 동시대 사람들이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고 자각한 사건도 아니었다.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유럽 여러 지역에서 불균등하게 일어난 변화들을, 훨씬 뒤에 하나의 이름으로 묶은 결과에 가깝다. 이 명명은 유럽이 이미 세계의 규칙 제정자가 된 이후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르네상스는 원인이라기보다 결과다. 유럽이 강대해진 뒤, 그 성공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에서 선택되고 정리된 기원 서사다.
‘신에서 인간으로의 이동’ 역시 선언적 전환으로 이해하면 오해가 생긴다. 르네상스 시기에도 신은 사라지지 않았고, 신앙은 여전히 강했다. 핵심은 신의 부정이 아니라 책임의 이동이다. 세계를 설명하고 판단하며 실패를 감당하는 주체가 점점 신학에서 인간의 이성, 경험, 계산으로 옮겨갔다. 흑사병과 전쟁, 상업의 확대와 항해는 신 중심 세계관이 실천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체험을 반복적으로 쌓았다. 중심은 반역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조용히 밀려났다.
예술은 이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가장 먼저 드러난 표면이었다. 정치나 신학은 위험했지만, 그림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실험장이었다. 원근법, 해부학, 자연 관찰은 기술 이전에 사고 훈련이었다. 세계는 인간의 시점으로 조직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시각적으로 반복 학습시키는 장치였다. 그래서 르네상스 예술은 “잘 그린 그림”이라기보다 “옳은 세계관을 전제한 그림”에 가깝다. 예술은 엔진이 아니라 조기 경보였다.
당시 유럽의 특수성은 우월성이 아니라 구조였다.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은 강대하지 않았다. 분열되어 있었고, 외부 문명에 대한 열등감과 의존을 동시에 안고 있었다. 이 불안정한 조건이 실험을 제거하지 않고 축적하게 만들었다. 분권적 정치 구조, 상업 도시 간 경쟁, 종교 권위의 균열이 겹치면서 변화는 한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은 채 쌓였다. 다른 문명권에도 유사한 전환은 존재했다. 차이는 질이 아니라 연결 방식이었다. 유럽에서는 이 변화들이 이후 과학혁명, 자본주의, 근대 국가, 군사력으로 직접 이어졌다.
르네상스가 인류사적 전환으로 격상된 이유는 결국 근대 유럽이 세계 질서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강대국은 언제나 자신의 과거를 인류 보편의 모델로 만든다. 르네상스는 유럽의 성공을 필연처럼 보이게 하는 기원 서사로 기능했다. 제국주의와 과학 중심 세계관을 정당화하기에 이보다 효율적인 이야기는 없었다.
유럽의 예술 작품이 유난히 많이 남아 있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 봐야 한다. 그것이 본질적으로 더 뛰어나서라기보다, 재료와 기후, 도시의 지속성, 같은 문명권 내부 전쟁이라는 조건, 그리고 무엇보다 보존과 기록의 기준을 유럽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것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위대하다고 판단된 것이 남도록 관리되었다.
‘르네상스’라는 이름 자체는 강력한 브랜딩이다. 재생, 각성, 진보라는 가치 판단이 이미 내장된 단어다. 이 이름은 교과서, 미술관, 학문 체계, 관광 산업을 통해 세계를 순환하며 반복 학습되었다. 반복은 검증을 대체했고, 르네상스는 논쟁 가능한 해석이 아니라 상식이 되었다. 다른 문화권의 전환들은 중심이 아니라 흥미로운 사례로 밀려났다. 이것이 브랜드가 완성되는 방식이다.
르네상스 이후 화풍이 급격히 달라진 이유도 여기서 설명된다. 르네상스 회화의 전제는 인간은 합리적으로 세계를 인식할 수 있고, 세계는 수학적 질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의 시선은 그것을 객관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원근법과 비례는 기술이 아니라 신념이었다.
이 전제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종교개혁 이후 진리는 하나의 해석으로 묶이지 않았고, 과학혁명 이후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게 되었다. 세계는 목적이 아니라 법칙으로 설명되었다. 정확한 재현은 가능했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는 확신은 사라졌다. 여기에 후원 구조가 교회와 귀족에서 국가, 시민, 시장으로 이동하면서 미술의 기능도 분화되었다.
바로크는 이 불안을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세계는 안정적이지 않고, 진리는 설득되어야 했다. 과장과 운동감, 연극성은 혼란한 세계에서 확신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각적 전략이었다. 로코코는 세계 설명 자체를 축소한 반응이었다. 우주와 진리 대신 취향과 쾌락이 중심이 된다. 신고전주의는 다시 질서를 호출하지만, 그것은 신의 질서가 아니라 국가와 시민의 질서였다. 낭만주의 이후에는 이성 자체가 의심의 대상이 되며, 화풍 변화는 가속된다.
결국 르네상스는 인간이 갑자기 깨어난 순간도 아니고, 서양이 본질적으로 우월하다는 증거도 아니다. 그것은 유럽이라는 불안정한 변방에서 일어난 인간 중심적 실험들이, 훗날 세계 권력이 되었을 때 기원으로 재편집되고 이름 붙여져 확산된 결과다.
그래서 르네상스의 의미는 인간 중심의 탄생이라기보다, 인간 중심을 정당화하는 세계사적 서사의 탄생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