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ll Me under, I want you
드림 시어터의 Pull Me Under 는 일반적인 구조의 곡이 아니다. 곡은 긴장을 끝까지 밀어 올리다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는 듯 하다가 딱 멈춘다. 이는 미완이 아니라, 마지막을 정리하기 위해 이동해야 하는 길 전체를 제거하고 충격을 선택한 결정이다. 곡이 멈추는 순간 청자는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그대로 떠안고 남는다. 마무리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마무리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완성한 것이다.
Pull Me Under: Images and words 수록, 1992년 발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이며, 앵콜이나 마지막곡으로 자주 연주되는 곡. 처음 들었을 당시 플레이어가 고장 난줄 알았다.
이 발상은 뿌리를 갖고 있다. 1969년 비틀즈의 I Want You (She’s So Heavy)는 페이드아웃 규칙을 거부했다. 비틀즈는 점차 사라지는 흐름 대신, 물리적 절단을 선택했다. 이 정지감은 시대적 문법을 끊는 방식이었고, 음악적 구조를 해체하는 선언이었다.
I Want You (She’s So Heavy): 비틀즈의 최고앨범중에 하나인 Abbey Road 수록, 1969년 발표. 곡이 갑작스레 끝나고 '어 뭐지' 라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다음 곡으로 바로 빠져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곡은 머지 않아 Here comes the Sun 이 흐른다. 곡의 멈춤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따스한 곡이 흘러나온다.
다만, 발매 당시 LP에서는 I Want You는 A 사이드의 마지막곡이었다. 즉 다음 곡인 Here Comes the Sun을 듣기 위해서는 레코드를 뒤집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는 물리적 행동이 필요했는데, 이때 당시의 청자들은 레코드를 뒤집으며 무슨생각을 했을까?
Pull Me Under 의 멈춤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뒤에 완충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곡의 종반을 향해가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곧바로 소리를 끊는다. 여력은 남고 해소는 오지 않는다. 그 멈춤이 곡의 끝이 아니라, 곡이 만든 압력의 마지막 파동이 된다.
마이크 포트노이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 엔딩이 비틀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기술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 의도였으며, “예상되는 정상적 엔딩 대신 잘라버리는 방식이 곡의 본질과 맞았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방법을 다시 사용하지 않았다. 절단은 기술이 아니라 충격적 선언이었다.
재사용하면 그 곡은 필연적으로 Pull Me Under의 그림자 아래 놓이게 된다.
단 한 번만 유효한 방식이었고, 그래서 한 번으로 충분했다.
비틀즈와 드림 시어터는 급작스러운 멈춤을 완성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결말을 제시했다. 완성되지 않은 채 끝난 상태가 곧 완성이다. 다만 이 방식은 그 자체가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반복하는 순간 그 충격의 그늘에 놓인다.
때로는 완벽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을 완성시키보다는 새로운 형식의 구조를 제시하는 것도 하나의 해법이 충분히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