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가 들리지 않았던 남자와, 들리게 된 남자
그리고 이 이야기는 한 사람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1986년, 투어 중 사고로 클리프 버튼이 세상을 떠났을 때, 메탈리카는 단순히 베이시스트 한 명을 잃은 게 아니었다. 밴드가 한동안 의지해왔던 "작곡과 방향성에 영향을 주던 존재"를 잃었다는 회고가 반복된다.
그 이후 들어온 제이슨 뉴스테드가 겪은 시간과, 2000년대 이후 합류한 로버트 트루히요가 얻은 위치는 단순한 멤버 교체가 아니라 “밴드가 스스로를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해왔는가”의 역사다.
제이슨 뉴스테드는 기능으로 들어왔고, 로버트 트루히요(현 베이시스트) 는 조건으로 들어왔다.
우선 클리프 버튼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종종 “클리프는 전설이었다”는 말로 정리를 끝내지만, 그 말은 본질을 가린다. 클리프 버튼의 부재가 남긴 건, 저역음대가 비는 문제가 아니라 의견이 오가고 조율되던 축 하나가 통째로 빠졌음을 의미했다. 라스 울리히가 클리프가 밴드의 화성 멜로디 감각에 영향을 줬다고 회고한 것처럼, 그의 존재는 단순한 연주자가 아니라 사운드 구성의 한 축이었다.
상실을 겪은 조직은 종종 한 가지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통제 가능한 것부터 통제하는 방식이다. 메탈리카에게 그 통제 대상은 리듬과 구조, 그리고 사운드였다. 그 결과로 나온 4집은 더 건조하고, 더 촘촘하고, 더 차갑다. 그리고 그 차가움은은 상실감일 것이다.
이때 제이슨 뉴스테드는 합류한다. 그는 “클리프의 대체자”가 아니었다. 그럴 수도 없었다. 대신 그는 밴드가 멈추지 않기 위한 기능적 장치였다.
제이슨과 함께 발표한 ...And Justice for All(1988)이 ‘명반’으로 남는 동안, 같은 앨범이 “베이스가 실종된 앨범”으로도 유명하다. 프로듀서 플레밍 라스무센은 최종 믹스를 들었을 때 “베이스가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고, 왜 그렇게 됐는지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 발언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제작 과정의 구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라스무센은 “자신이 최종 믹스를 한 게 아니며, 라스와 제임스가 결정한 영역”이라는 취지로 말한다. 즉, ‘베이스가 들리지 않는 결과’는 연주자의 문제라기보다 의사결정 축의 문제로 수렴한다.
이상한 건, 베이스가 “연주되지 않은” 게 아니라 “지워진” 것처럼 들린다는 점이다. 관련 인터뷰를 인용한 기사들은 제이슨의 연주가 기타와 리듬적으로 아주 잘 결속돼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니까 ‘실력 부족’이 아니라, 클리프 이후 재편된 시스템 안에서 베이스가 차지한 지위 그리고 음역대가 문제였던 셈이다.
여기서 인간관계가 정말 작용했냐고 물으면, “영향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밴드 내부 분위기가 거칠었다는 회고가 있고, 라스무센은 (추측임을 전제로) 제이슨의 “반응을 끌어내려는 심리”가 있었을 가능성까지 언급한다. 이건 “확정 판결”이 아니라 당시 정서의 방향을 보여주는 단서다.
한편 제임스 헷필드는 훗날, 이 사건이 특정 개인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투어와 스튜디오를 오가며 귀가 혹사당한 상태였고, 고음역을 올리는 과정에서 저음역이 사라지는 결과가 나왔다는 설명이다. 이 설명은 기술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중요하다. 의도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는 새 멤버의 존재감이 사라진 형태가 되었고, 의도와 결과 사이의 간극이 밴드 내부 권력 구조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이슨이 떠난 이유를 “Justice의 베이스 레벨 다운”으로만 설명하면 간단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결정적으로 그는 그 이후에도 오래 밴드에 남아 투어와 작업을 이어갔다. “정말로 떠나게 만든 것”은 한 장의 사운드 믹스가 아니라, 내부에서의 자율성과 외부로의 출구가 얼마나 허용되는가에 더 가까웠다.
제이슨은 훗날 Justice 믹스 당시를 떠올리며 강한 감정을 드러냈다(“livid”). 이 표현은 단지 볼륨 노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 밴드에서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의 표면화처럼 느껴진다. 제이슨은 베이시스트로서의 역할에 고정되었고 타 음악 활동은 제한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가 떠난 뒤, 밴드는 한 번 무너질 뻔한 시간을 거친다. 제임스가 번아웃과 피로를 언급하는 회고는, 그 시기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던 밴드”의 시간이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중요한 건 바로 여기서 밴드가 학습한다는 점이다.
로버트 트루히요의 합류는 “제이슨의 대체”가 아니라, 메탈리카의 체질 변화 위에서 일어났다. 이때의 메탈리카는 더 이상 누군가를 억누르는 방식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운 상태였다. 제임스의 번아웃 회고가 말해주는 것은, 그 시기의 메탈리카가 ‘버티는 조직’이었고, 그래서 다음 단계로 가려면 운영 방식이 바뀌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흥미롭게도 라스무센이 “클리프와 제이슨은 완전히 다른 타입”이라고 말한 대목은, 클리프 이후 밴드가 찾던 베이시스트의 모습이 얼마나 흔들렸는지도 보여준다. 어떤 밴드는 상실 뒤에 ‘대체’를 찾지만, 어떤 밴드는 상실 뒤에 ‘시스템’을 바꾼다. 메탈리카는 후자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기능형 베이시스트를 또 데려오면, 같은 비극이 반복될 가능성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로버트는 완성된 커리어와 정체성을 가진 인물로 합류한다. 이 점은 “소모품이 되지 않는 전제”를 만든다. 제이슨이 밴드 내부에서 ‘의견을 내는 존재’로 성장할 시간을 잃었다면, 로버트는 처음부터 의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들어온 셈이다. 밴드는 그를 허용한 게 아니라, 그를 허용하지 않으면 존속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해 있었다.
그 결과, 같은 메탈리카여도 베이스가 차지하는 자리의 온도가 달라진다. 제이슨의 시대가 ‘구조의 극단화’ 속에서 베이스가 희생된 시대였다면, 이후의 메탈리카는 라이브와 그루브의 비중이 커지며 저음역이 음악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요소가 된다.
제이슨 뉴스테드의 시대는 메탈리카가 “기타와 드럼 중심으로 간다”는 선언을 음향적으로 실현한 순간이었다. 그 선언이 명반을 만들었을지 몰라도, 동시에 한 사람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음은, 단순한 믹스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불안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핵심 축은 더 커지고, 주변 축은 더 얇아진다.
반대로 로버트 트루히요의 시대는 메탈리카가 “이제는 누군가를 보이지 않게 만들면서 지속할 수 없다”는 학습의 결과로 읽힌다. 즉 로버트가 허용된 것은 로버트 자체때문이 아니라, 메탈리카가 더 이상 예전 방식으로는 존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고, 생존이 걸리면 조직은 결국 배운다.
클리프 버튼의 죽음은 메탈리카를 더 강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더 경직되게 만들었다는 해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제이슨 뉴스테드는 그 경직의 시기에 들어와 침묵으로 버텼으나, 결국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떠났다. 로버트 트루히요는 그 경직이 한 번 무너진 뒤, 존중이 필수가 된 시대에 합류했다.
이것은 한 밴드의 성장통의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