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이 명확한 공간에서는 정리가 맞다.
글에 앞서
이 글은 리본을 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입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환경적인 이유로 리본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는 의도적으로 최소화하고, 리본을 떼는 행위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습니다. 물론 환경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자연 공간에 남겨진 쓰레기는 수거되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그 대상이 쓰레기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문제까지 개인의 몫으로 넘기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시각도 존재하며,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산에서 리본은 애초에 선의에서 출발합니다. 길을 잃기 쉬운 구간에서 방향을 알려주기 위한 표시였고, 누군가에게는 실제로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경험이 부족한 탐방객에게 리본은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기준점이 되기도 했고, 길 흔적이 희미한 구간에서는 임시적인 길 안내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점에서 리본이 무조건 무의미하거나 해로운 존재라고 단정하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리본이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관리되지 않은 채 누적된 리본은 오히려 혼란을 만듭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매달린 리본은 길을 명확히 안내하기보다 선택을 어렵게 하고, 공식 이정표와 충돌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목적을 상실한 리본, 특정 집단의 흔적으로 남은 표식은 길 안내보다 사적 표시의 성격이 강해집니다. 결국 리본은 그 자체로 도움이 되거나 해가 되는 존재가 아니라,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 표식입니다.
이 지점에서 늘 같은 질문이 반복됩니다. 리본을 떼어야 하는가, 아니면 떼지 말아야 하는가입니다.
리본을 떼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공공 산림 공간에서 시설물의 설치와 철거에 대한 권한은 개인이 아니라 관리 주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임의로 리본을 제거하는 행위는 제도적 절차를 건너뛰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며, 공공 공간을 개인의 가치 판단으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일부 탐방객에게 리본은 실제 길 안내 역할이나 심리적 안전장치로 작용해 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판단으로 리본을 제거하는 행위는 또 다른 위험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모든 공간에 동일하게 적용되기는 어렵습니다. 공공성의 밀도가 높은 공간에서는 판단의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최근 설악산국립공원의 사례는 중요한 참고가 됩니다.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는 출입금지구역과 샛길에 무분별하게 설치된 산악회 리본 약 2천 개를 최근 1년간 수거했습니다. 이 리본들은 길 안내를 목적으로 설치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샛길 출입을 유도하고 자연 훼손과 안전사고 위험을 키우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국립공원 측은 이를 공식적으로 수거하는 동시에, 응급 상황에서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하도록 관리 주체가 통제하는 ‘양심리본’을 제작해 대체했습니다. 이는 리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공공성이 훼손되는 공간에서는 사적 리본이 정리 대상이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 사례입니다. (하단 기사 링크 참조)
이 논리는 쉼터와 정상석, 정상 표지가 설치된 공간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쉼터는 누구나 그 기능을 즉시 인지할 수 있는 공공 시설입니다. 데크와 벤치, 정자는 길을 표시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모든 탐방객이 잠시 머물러 쉬도록 설계된 장소입니다. 정상석 역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위한 표식이 아니라, 해당 산의 최고점을 공적으로 표시한 시설입니다. 정상은 이미 목적지가 명확히 확정된 공간이며, 길 안내 기능이 필요한 지점이 아닙니다.
이처럼 기능과 의미가 이미 분명하게 주어진 공간에 다수의 개인 리본이 집중되어 있다면, 그 리본은 더 이상 안전 보조 수단이나 길 안내물로 기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공 공간의 성격을 흐리고, 사적인 흔적이 공적 상징을 덮는 결과를 낳습니다. 실제로 정상석 주변을 둘러싸듯 매달린 리본이나 쉼터 기둥에 빽빽이 묶인 리본을 길 표시로 인식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그 쉼터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정상이라는 판단은 누가 내리는가”라는 반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쉼터나 정상석은 개인의 주관적 해석으로 성립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관리 주체가 설치하고, 모든 탐방객이 동일한 방식으로 인지하도록 설계된 공공 시설입니다. 그 용도와 의미는 경험의 많고 적음과 무관하게 공유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적 통념은 개인 취향이 아니라, 공공성의 표현으로 작동합니다.
기준이 법령 조항처럼 세세하게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공간의 성격까지 불확정 상태에 놓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공공성이 명확할수록 판단의 여지는 줄어듭니다. 설악산 사례가 보여주듯, 관리 주체 역시 공공성이 훼손되는 지점에서는 사적 리본을 정리 대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주장은 분명합니다. 모든 리본을 무차별적으로 제거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개인이 관리 주체를 대신해 임의로 판단자가 되자는 주장도 아닙니다. 그러나 쉼터, 정상석, 출입금지구역 등 공공성이 명확하고 기능이 이미 확정된 공간에서는 리본은 떼는 것이 맞습니다. 이는 감정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 공간의 성격과 안전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통념의 문제입니다.
권한은 분명히 관리 주체에 있습니다. 그러나 기준이 장기간 공백 상태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공공성이 분명한 공간마저 사적 흔적으로 덮이도록 방치하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책임 회피에 가깝습니다. 이 문제를 개인의 월권이나 도덕성 싸움으로만 몰아가는 순간, 핵심은 흐려집니다.
리본을 떼는 사람과 남겨두는 사람 사이의 갈등은 결국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갈등은 공공 공간에서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정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공공성이 명확한 공간에서만큼은, 이미 사회적 통념과 제도의 판단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관련기사를 링크해 놓았습니다.
해당 안건에 대한 국립공원의 공식 답변입니다.
답변 내용
1. 안녕하십니까? 국립공원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 감사드리며, 귀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2. 귀하께서는 「개인 부착 리본에 대한 관리 기준 및 수거 가능 여부」에 대하여 문의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3. 귀하께서 질의하신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드립니다.
가. 국립공원 내 개인이 설치한 리본(사적 시그널)은 공식 안내 및 표지로 인정될 수 없습니다.
나. 또한, 개인이 임의로 설치한 리본은 수거(제거) 대상임을 알려드립니다.
다. 이러한 리본은 공단 직원 이외 자원봉사자, 일반 탐방객이 자발적으로 수거할 수 있습니다.
라. 개인이 임의로 리본을 수거한다고 하여 자연공원법(국립공원의 보전과 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법률)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마. 위의 ‘가~라’ 답변 내용은 국립공원 관리에 있어 적용되는 기준으로 그 외 일반 산림지역 등의 기준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