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은 계속된다. 지금도,

우리모두 참가중이다.

by 우주사슴

오징어 게임일수도 있는 우리가 이미 참여하고 있는 게임에 대한 불편한 성찰에 돌입한다.


오징어 게임에 대한 중요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장르적 전통과 오징어 게임의 차별성


서바이벌 게임물은 오랫동안 인간 본성의 어두움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카이지나 아리스 인 보더랜드 같은 작품들은 극한 상황에서의 심리전, 룰 해석, 전략적 승부를 주요한 재미 요소로 삼는다.

관객은 등장인물의 기지와 승부욕에 몰입하며,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상상한다.

이때 고민의 초점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어떻게 이길 것인가”에 있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은 의도적으로 이 구도를 거부한다.

게임의 규칙은 단순하다. 술래잡기, 구슬치기 같은 유년기의 놀이가 무자비한 죽음으로 연결될 뿐이다.

룰을 해석하거나 탈출할 여지가 없다.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참가자 개인의 선택과 심리다.

“왜 이 게임을 해야 하는가”, “이 사람이 여기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2. 개인적 사연과 사회적 절망


오징어 게임이 설계한 잔혹성은 참가자들의 삶을 통해 극대화된다.

그들은 게임이 아니면 빚을 갚을 수도, 가족을 부양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극도의 빈곤과 부채 구조, 이주 노동자의 취약성, 노인의 무력감이 구체적 사연으로 제시된다.

이 게임은 단순한 살인 경연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최후의 선택지다.

이는 관객이 “내가 저 사람이었다면?”을 더 불편하고 절실하게 자문하도록 만든다.


3. 시스템의 얼굴: 내부자였던 주최자


게임을 설계하고 관람하는 VIP들은 처음에는 완전한 외부의 악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인 반전은 오일남이 단순한 관전자가 아니라 게임의 설계자이자 주최자라는 사실이다. 그는 참가자 번호 001번을 달고 게임에 들어가지만, 그것은 진정한 생존 경쟁이 아니라 참가자들을 더 가까이서 관찰하고 즐기기 위한 위장된 참여였다.

이는 황인호(Front Man)처럼 과거에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해 승리한 뒤 운영자가 된 사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황인호는 실제로 피해자에서 권력자로 편입된 인물이라면, 오일남은 처음부터 권력의 설계자였으며 스스로 참가를 선택해 그 안에서 절망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자였다.

이 설정은 시스템의 폭력성을 단순히 “남이 강요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쥔 내부자가 정당화하고 유지하며 심지어 즐긴 결과임을 드러낸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시스템의 폭력은 외부 음모가 아니라 우리 내부의 선택과 방관으로 만들어진다.

이 구조는 단순한 착취 구도가 아니라 훨씬 복잡한 책임의 문제를 던진다.
“누가 이 구조를 유지하는가?”
“우리도 이 시스템을 방관하거나 정당화하지는 않는가?”




4. 성기훈의 여정: 순수한 자, 복수를 꿈꾸는자, 그리고 초월자로

시즌 1에서 순수하고 유쾌한 생존자로 시작한 성기훈은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타인을 돕는 인간성을 보였으나, 참가자들의 죽음을 겪으며 냉혹해져 우승 후 죄책감에 노숙자로 전락한다.

시즌 2에서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게임 주최자 파괴를 목표로 삼아 전략적이고 냉철한 모습으로 변모하며, 프론트맨과의 대립 속에서 윤리적 타협까지 감행하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시즌 3에서는 신규 캐릭터의 서사를 위해 플레이어 역할이 다소 축소되어 비추어 지지만, 게임의 잔혹성을 통찰한 끝에 마지막 순간 희생적 구원자로 변모,

시즌 1의 순수, 시즌 2의 복수, 시즌 3의 초월적 희생이라는 성장 곡선을 완성한다.


5. 시즌3의 결정적 선택: 아이를 살리고 본인이 죽는다


시즌3의 핵심은 성기훈이 선택한 극단적 결말이다.

게임의 구조를 뒤흔들기 위해 그는 설계자와 맞서 싸운다.

그러나 단순한 권력 탈취나 복수에 머무르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성기훈은 갓난아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다.

이 장면은 구조를 깨뜨리는 방식으로서의 폭력적 혁명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근본적 회복을 상징한다.


시스템이 강요하는 경쟁과 죽음의 논리를 스스로 거부하며, 희생으로써 “게임의 규칙”을 파괴한다.

이 결말은 냉소적 구조 비판을 넘어서,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택”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6. 희망과 인간다움의 자각


제작진이 전달하고자 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희망과 인간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관객을 안전한 관찰자 위치에 두지 않는다.

“너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겠는가?”를 반복적으로 묻는다.

참가자의 절망을 보여주고, 설계자의 유혹을 이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에 성기훈이 내린 선택을 통해

“너는 인간으로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권력의 구조를 완전히 부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개인의 결단은 가능하다.

오징어 게임이 제안하는 희망은 구조적 낙관이 아니다.

오히려 구조의 냉혹함을 인정한 뒤에도, 인간으로서의 책임과 연대, 희생을 잊지 않는 윤리적 희망이다.


7. 플랫폼 자본주의의 역설


이 작품을 전 세계에 유통한 것은 넷플릭스라는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플랫폼이다.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이중적이다. 자본주의를 고발하는 이야기가 자본주의적 상품으로 소비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이 불편한 역설은 오징어 게임의 메시지를 무력화시키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플랫폼을 통해 이 이야기가 전 세계로 퍼졌다는 사실은 비판적 사유를 공유하게 만들고, 시스템을 성찰하게 만드는 역설적 통로가 된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적 소비를 통해 자본주의의 폭력을 고발한다. 그 이중성을 자각하는 것은 이 이야기를 소비하는 우리의 책임이기도 하다.

8. 구원이란 무엇인가


성기훈의 선택이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구원이다. 그의 죽음은 게임의 구조를 완전히 없애지 못한다. 시스템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는 경쟁과 배신의 규칙을 거부하고,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키며 죽었다.

구원이란 구조의 해방이 아니라, 그 구조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선택이다. 희생을 감수하고 타인을 살리는 윤리적 결정이다. 성기훈은 죽음으로써 자신을 구원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렇다.
“우리는 이 게임을 끝낼 수 있는가?”
“우리도 설계자가 될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가?”
“우리는 누구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희생할 수 있는가?”




9. 결론


오징어 게임은 단순한 서바이벌 스릴러가 아니다.

현대 사회의 폭력성, 불평등, 권력의 재생산 구조를 냉정히 폭로하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다움과 희망을 붙잡을 수 있는지 묻는 작품이다.

성기훈의 최종 선택은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며,

시청자 각자에게 이 게임 안에서의 자신의 책임과 가능성을 성찰하도록 강제한다.


이 불편하지만 중요한 질문이야말로 오징어 게임이 우리에게 남기는 진정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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