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야말로 열망을 만들고, 기억을 깊게 만들었다.
음악을 듣는 것은 단순히 음원을 재생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종종 ‘좋아하는 노래’를 말할 때, 실제로는 ‘그 노래를 어떻게 만났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노래가 내 마음에 각인되는 이유는 멜로디나 가사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찾아 헤맨 시간, 상상으로 메운 공백, 그리고 마침내 귀로 확인하던 순간의 감정에 달려 있지 않을까
내게 오아시스의 ‘왓에버(Whatever)’는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한 곡이 아니다.
그 곡을 둘러싼 결핍과 상상, 기다림과 발견의 기억이 모두 녹아 있는 하나의 시절이다.
9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때 한국에서 해외 밴드의 음반을 사면 꼭 들어 있던 것이 있었다.
평론가가 쓴 해설서.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안내서이자 해석의 틀이었다. (물론 그 틀에 갇힌다는 맹점도 있었다.)
단순히 가사를 번역하거나 광고문구를 나열하는 종이가 아니었다. 그 밴드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당대 평론가들이 어떻게 평가했는지, 앨범이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주었다. 특히 오아시스 1집 Definitely Maybe,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의 한국 라이선스반에도 그런 해설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읽으며 음악을 해석하는 법을 배웠다. 곡을 듣으며 그 글을 읽는 것은, 소리를 상상하게 만드는 의식과도 같았다.
당시 해외 발매와 한국 라이선스 발매 사이에는 몇 달에서 수 년까지의 시차가 있었다.
처음엔 어렸을 때라 시차가 있음을 알지도 못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그 간극 덕분에 해외 평론과 차트 성적, 투어 후기 같은 정보가 반영된 해설이 나올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 시간차는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한 발 물러나 관찰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해설서는 단순한 판촉물이 아니라 작은 평론의 형태를 띠었다. 앨범을 재생하며, 나는 이미 그 음악이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상상하고, 노랫말의 비유를 해석하며, 밴드의 이미지와 세계관을 내 방식으로 구성하게 되었다.
그것이 음악을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소유한다’는 감각이었다. (실제로 Tape 이나 CD 를 소유하긴 했다.)
그러던 중 해설서에서 특히 눈에 띈 문장이 있었다. ‘왓에버(Whatever)’라는 곡에 대한 극찬이었다.
오아시스의 명곡 중의 명곡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음반을 아무리 뒤져도 그 곡은 없었다. 1집에도, 2집에도 없었다.
왜 극찬을 하면서 트랙리스트에는 없는가. 알고 보니 ‘왓에버’는 1994년에 발매된 단독 싱글이었다.
풍성한 스트링 편곡과 노엘 갤러거의 희망적인 가사로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정규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당시 한국 시장에는 싱글 CD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대도시의 큰 레코드샵에도 있지 않았으며, 서울의 진짜 큰 대형레코드 샾에서 수입해 놓은 것을 물어 물어 찾아가야 했던 시절이었다. (재고 유무를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외 직구라는 개념이 널리 퍼져 있던 것도 아니었다. 라디오에서 가끔 흘러나올때 그 라디오를 들어야 하는 그 기적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무슨 비밀의 음악을 찾아 헤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해설서는 내 마음에 불을 질러놓고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내주지 않았다.
그 불은 나를 한동안 괴롭혔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핍이 내 안에서 곡의 신화를 키웠다.
듣지 못한 음악이야말로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법이다. 아무리 상상해도 닿을 수 없었던 노래.
그만큼 내 머릿속에서 더 화려하게 재구성되었다.
그러던 무렵, 한국에도 본격적인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모뎀 연결을 넘어 초고속 인터넷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냅스터와 소리바다 같은 P2P 서비스가 나타났다.누구나 음악 파일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고, 나처럼 오랫동안 갈증을 느낀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혁명이었다.
처음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스피커에서 울리는 스트링의 장중함.
리암 갤러거 특유의 거친 목소리. 해설서 속 문장들이 내 귀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왜 그렇게 극찬했는지’가 귀에 와서 박혔다. 평론가들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는 걸 직접 깨달았다.
그동안 머릿속에서 상상만 하던 곡이 현실이 되는 순간, 말로 다 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 순간을 위해 참았던 기다림이 보상받는 듯했다. 노래 한 곡이 이렇게까지 큰 해방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렇게 오랫동안 갈구하고 상상하며 기다린 곡은 내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지금처럼 모든 음악이 스트리밍으로 즉시 들을 수 있는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쉽게 잊힌다. 반면, 어렵게 찾고 갈망했던 곡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왓에버는 내게 단순한 오아시스의 한 곡이 아니다. 그 시절의 갈증과 상상, 발견의 기억이자 내 청춘의 일부다. 나는 지금도 그 곡을 들으면 당시의 공기와 방의 냄새,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까지 떠올린다.
해설서라는 느린 매체는 곡을 신화화했다. 인터넷이라는 기술은 그 신화를 해소했다.
기술은 갈증을 해소했지만, 결핍이야말로 기억을 깊게 만들었다.
지금은 불편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비효율이 만들어낸 감상의 밀도는 대체할 수 없다.
왓에버를 찾아 헤매던 나의 90년대 후반의 기억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소중하다.
그 곡을 찾기 위해 들였던 시간, 상상했던 장면들, 실패하고 실망했던 순간들까지도 나를 형성했다.
내가 열망했던 것은 단순히 ‘Whatever’라는 곡이 아니었다.
그 곡을 찾아 나선 나 자신이었고, 음악을 해석하고 상상하고 기다리는 태도였다.
아마 지금도 나는 그런 방식으로 음악을 그렇게 듣고 싶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곡을 듣는 일은 결국 나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조금은 불편하고 조금은 느리게, 그러나 더 깊이 음악을 소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