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들은 좋은 음악, 삶을 관통하다.

나의 자양분

by 우주사슴

10대에 음악을 듣는 경험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다.

청소년기는 가치관과 감수성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는 시기이며, 이때 접한 음악은 개인의 정서적 언어와 세계 인식을 구성한다. 음악은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에 머무르지 않고, 감정과 생각을 조직하는 방식, 세상을 해석하는 틀을 제공한다.


나는 10대 시절 비틀즈, 퀸, 브릿팝을 많이 들었다.


비틀즈의 A Day in the Life를 들으며, 단순한 사랑 노래를 넘어서는 실험적 구성과 감정의 단절감을 처음 접했다. 일상의 단편적인 묘사가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과 만나 불안과 경이의 감정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배웠다.


퀸의 Bohemian Rhapsody는 극적인 전환과 오페라적 구성이 록 음악이 전달할 수 있는 감정의 범위를 얼마나 넓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한 곡 안에서 진지함과 유머, 비극과 해방감을 넘나드는 이중성은

음악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확장시켰다. 복잡한 가사를 어떻게든 해석해 보려고도 했었다.


오아시스의 Wonderwall 은 리암의 거친 진심이 만들어내는 친밀함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라디오헤드의 Paranoid Android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도 생생하다.

복잡한 구조와 불길한 정서, 전자음과 록의 융합이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흔들었다.

한 곡이 여러 분위기와 사운드를 표현하며 세기말의 정서와 안드로이드라는 개념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감상의 폭을 변화시켰다.

같은 곡이라도 20대, 30대, 40대에는 다르게 들린다. 젊을 때는 감정이 직설적으로 다가왔다면,

어른이 되면서는 가사, 편곡의 의도, 제작의 맥락을 입체적으로 읽게 되었다.

10대에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곡을 많이 아는 것도 좋지만, 그 시간을 좋은 음악을 듣는 것이라는 게 중요하다. 결국 이 시기의 경험이 이후의 감상 방식을 결정한다.


음악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기억을 매개해 과거의 자아와 이어준다. 같은 음악을 들으면 당시의 고민과 감정이 되살아나며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가교가 된다. 음악은 시간을 관통해 자아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매개체가 되고, 삶의 변화를 자각하게 하는 동시에 변하지 않는 나를 확인하게 한다.

A Day in the Life를 다시 들을 때면 비틀즈의 위대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Bohemian Rhapsody는 프레디 머큐리의 감정을 이제야 알게 되는 듯하고,

Wonderwall은 아직도 Wonderwall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며,

Paranoid Android는 그때 당시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더 나아가, 어린 시절부터 좋은 음악을 계속 듣게 되면 남은 인생은 마치 복리처럼 점점 더 풍부해진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정으로 받아들이던 곡이, 경험과 시간이 쌓이면서 새로운 의미와 감정을 더해간다.

이 누적된 감상은 단순한 취향의 축적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세계를 확장하고 깊게 만드는 과정이다.

좋은 음악이 삶에 남긴 흔적은 반복될수록 더욱 입체적으로 빛나며, 그 의미는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된다.


10대에 좋은 음악을 많이 들었다는 것은 남은 생애를 좋은 음악을 아는 삶으로 만드는 일이다.

좋은 음악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이 내 마음속에서 의미로 재생산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시기의 경험은 이후 새로운 곡을 받아들이는 기준이 되며, 익숙한 음악을 거듭 새롭게 듣는 감수성을 가능하게 한다.


반복해 듣는 음악은 거부감 없이 마음에 쌓이고, 정서적 안정과 위안을 주며 나의 일부가 된다.

좋은 음악은 익숙함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발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내가 10대 시절부터 이런 좋은 음악들을 알게 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그 경험 덕분에 지금도 음악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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