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은 왜 낭만적인가?
roman에서 낭만, 그리고 로망까지
‘낭만’은 라틴어 romanus에서 파생된 roman에서 비롯한다.
중세 유럽에서 roman은 기사 이야기, 사랑, 모험, 상상력을 담은 서사를 가리켰다.
18~19세기에는 ‘romanticism’이라는 사조로 발전해 감정, 자연, 자유, 상상력, 개인성을 강조했다.
roman은 애초부터 이성과 규범을 넘어서는 감정적·상상적 움직임을 품고 있었다.
메이지 일본은 서구 개념을 단순히 음차하지 않고 시각적 의미를 창출하려 했다.
‘roman’을 ‘浪漫’으로 번역한 것은 그런 시도의 결과다.
浪(물결)과 漫(넘침)은 감정과 상상력이 넘실대는 이미지를 전달하며, roman의 본질을 동양적 정서로 재해석했다.
시각적으로는 동양적이고, 청각적으로는 서구적이다.
음과 의미를 동시에 살린 드문 번역 사례다.
대부분의 서구 개념 번역어는 의미 중심이었다.
철학(哲學), 경제(經濟), 자유(自由) 같은 단어는 발음을 버리고 한자 의미를 택했다.
‘浪漫’은 음차와 의미 번역을 동시에 구현한 독특한 예외다.
‘낭만’은 일본어를 거쳐 개화기 한국으로 유입됐다.
신문, 번역서, 문학 비평을 통해 전파되며 ‘낭만주의’, ‘낭만적’ 같은 문어적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어에서는 일본어 흔적을 벗어 던지고 서정적이고 이상적인 어휘로 정착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낭만’은 학술어를 넘어 일상어로 확장됐다.
오늘날 ‘낭만’은 현실을 벗어난 이상, 자유로운 감성, 아련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서구의 ‘romantic’이 한국어에서 한층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변형·확장된 결과다.
한국어에는 ‘낭만’과는 다른 뉘앙스의 ‘로망’도 존재한다.
낭만은 문어적이고 서정적이다. “낭만적인 사랑”, “낭만주의 문학”처럼 이상과 감정의 깊이를 드러낸다.
로망은 일본어 ロマン의 음차에서 온 표현으로, “내 로망은 북유럽 여행”, “인생 로망”처럼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욕망을 가리킨다.
‘로망’은 소비적이고 사적인 환상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낭만이 감정의 해방과 상상력, 이상을 이야기한다면, 로망은 그것을 개인적 소유의 대상으로 축소한다.
두 단어는 같은 어원(roman)을 공유하지만, 한국어에서 전혀 다른 결을 갖는다.
낭만은 시적이고 감상적이며 이상을 품는다.
로망은 구체적이고 개인적이며 현실적 욕망을 담는다.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문화적 맥락과 사용 방식의 차이로 전혀 다른 층위를 형성했다.
끝맺으며
낭만은 현실을 넘어서는 감정과 상상력의 언어다.
우리의 삶이 구체적이고 계산적일수록, 낭만은 그 바깥을 가리킨다.
낭만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다.
감정의 가능성과 상상의 자유를 확장하는 힘이다.
우리는 종종 낭만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간다.
그래서 더욱 낭만이 필요하다.
낭만은 현실을 무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 현실을 깊게 바라보고, 감각적으로 되살리는 눈이 된다.
낭만은 그래서 언제나 낭만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