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지 않지.
나는 INTJ다. 흔히 ‘인류의 2%’라고 불리는 유형. 희소성이라는 단어는 묘하게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어딘가 특별한 설계도를 갖고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랄까. 하지만 금세 알게 되었다. 드물다고 해서 곧바로 ‘고유하다’는 뜻은 아니란 걸. INTJ라는 이름 아래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나와 같지는 않다.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존재할까?’ 이건 꽤 오래된 내 질문이다. 세상을 구조적으로 바라보고,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생각을 퍼즐처럼 조립해가는 누군가가 있는지 궁금했다.
회사 등 비즈니스 관계에 사람들 중에는 전무했다. 이 사람들도 회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본인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닌, 열심히 근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나마 회사 밖의 커뮤니티 네트워크에서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분명 탁월했고, 나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족속이구나라는 인상을 받을 수는 없었다. (물론 온라인 상에는 INTJ 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만나 보지 않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지양한다.)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같은 유형이라 해도, 각자가 가진 세계의 결은 다를 수밖에 없구나.
MBTI가 틀렸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코드가 꽤 쓸모 있는 지도라는 걸 인정한다. 다만, 그것을 통해 일반화 할수 없다.
성향은 기질일 뿐이다. 철학은 선택의 문제고, 가치는 축적의 결과다.
MBTI는 누군가를 설명하는 하나의 키워드일 수는 있지만, 그 누군가를 대체할 수는 없다.
나는 여전히 매일 갱신되는 문장이고, 그 문장의 저자이자 독자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이렇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는 일. 철학과 기술, 예술과 과학, 안전과 불확실성, 음악과 구조화된 시스템.
하나의 확실한 답보다, 답과 답 사이의 여백에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는 일이 더 즐겁다.
이런 탐구는 때때로 괴롭지만, 그만큼 자유롭다. 그리고 솔직히, 꽤 재미있다.
니체는 말한다. “아모르 파티 Amor Fati,네 자신이 되어야 할 운명을 되라.”
이 말이 멋지게 들리는 건, 그 안에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내가 누구인지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더 나다운 문장을 써보려 애쓴다.
지금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은, 같은 MBTI가 아니라 비슷한 리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 구조를 바라보되, 그 안의 윤리를 함께 고민하는 사람
– 현실을 살아내면서도 의미를 놓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
– 삶을 설계하면서 동시에 그 설계를 유연하게 해체할 줄 아는 사람
– 속도보다 방향을, 기능보다 본질을 중시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면 반가울 것이다. 하지만 꼭 만나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사람을 만나도 분명히 나와 다른 결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의 여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탐구한다. 너무 심각하지 않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INTJ라는 의문점에서 출발했지만 이 여정은 훨씬 더 넓고, 어쩌면 더 유연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나는 나 자체로의 과정이다. 정리된 정체성이 아니라, 매일 갱신되는 삶의 스크립트다.
그리고 그걸 쓰는 일, 나는 제법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