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근원적인 두려움에 대해
기록적인 폭우는 단순한 기후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쌓아온 문명의 질서와 통제의 환상을 깨뜨리며, 우리가 실은 얼마나 많은 것을 ‘예측 가능하다’고 믿으며 살아왔는지를 들춰낸다. 이 순간 우리는 다시금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과 마주한다. 이는 생존의 불안이라기보다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자각, 그리고 그 불가항력 앞에 놓인 존재로서의 실감이다.
그 앞에서 우리는 묻는다.
이 혼란과 두려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말하게 된다.
“당장 뭔가를 할 수는 없지 않나.”
이 문장은 체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매우 중요하고 정직한 통찰이다.
무언가를 당장 해결하거나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조건 없는 통제 환상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놓음’의 행위다. 마음을 놓는다는 것은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즉각적 결과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은 층위의 실천 가능성을 여는 선택이다.
이때 다시 하나의 태도가 고개를 든다.
“그래도 뭘 해봐야지, 않겠는가.”
이 말은 어떤 낙관주의의 표현이 아니라, 절망 속에 생긴 실금 사이로 들어오는 미세한 빛과 같다.
행위가 가능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의미를 이어가야 한다는 감각 때문에 행동하려는 태도다.
이 ‘놓음’과 ‘실천’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묶여 있다.
먼저 놓아야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놓았기 때문에 실천은 비로소 자율적인 것이 된다.
이 태도는 고립된 개인의 내면 문제를 넘어, 문명 전체의 생존 전략이기도 했다.
실제로 인류는 과거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재난 속에서 단순히 대응한 것이 아니라, 의미를 구성하며 사회를 재설계해왔다. 아래는 그런 구체적 사례들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대홍수 신화와 관개 문명 (BC 2100년경)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반복되는 홍수는 대재앙이었지만, 동시에 인류가 농경 문명을 정교화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수메르인은 길가메시 서사시를 통해 재난을 기억하고, 제방과 수로를 만들어 자연의 파괴력을 통제 가능한 흐름으로 조율했다.
고대 이집트의 ‘닐로미터’와 세금 제도 (BC 1500년경)
나일강의 범람은 파괴이자 축복이었다. 이집트는 수위 측정 장치인 닐로미터를 통해 자연의 주기를 읽고, 곡물 생산량을 예측하여 세금을 매겼다. 이는 자연을 읽는 기술과 행정의 결합, 즉 과학과 제도의 초기적 형태였다.
조선의 의창제와 환곡제도 (1400년대)
조선은 기근과 홍수 등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해 지방에 공공 곡물 창고를 설치하고, 평시에 비축해두었다가 재난 시 무상 혹은 저리로 제공했다. 이는 단순한 구호를 넘어, 공공성과 연대의 제도화였다.
에도시대 일본의 스미다가와 정비 사업 (1600년대)
에도는 반복된 대홍수로 고통받았으나, 도쿠가와 막부는 하천 구조 자체를 바꾸는 공사를 벌여 도시를 보호했다. 이는 재난을 통한 도시 구조 재설계이자, 정치 권력의 정당성 확보 방식이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이후의 도시계획 (1755년 이후)
쓰나미와 대지진으로 파괴된 리스본은, 근대 유럽에서 최초로 ‘방재’를 염두에 둔 도시로 재건되었다. 이는 자연재해를 계기로 종교 중심 세계관에서 과학적, 계몽적 세계관으로 이행한 분기점이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하나의 통찰로 수렴된다.
인류는 당장 모든 것을 바꾸지 못해도, 결국엔 변화된 조건 속에서 의미를 재구성하는 쪽을 택해왔다.
마음을 놓고, 다시 해보며, 때로는 멈추고, 다시 설계하는 방식으로.
결국 기록적인 폭우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무엇을 지금 하지 못해도 괜찮은가?
무엇은 포기하고, 무엇은 기억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래도 나는 무엇을 해보려 하는가?
당장은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고 느끼는 이 순간조차,
그 ‘놓음’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깊은 실천의 예비 동작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실천은 늘처럼 아주 작고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시작된다.